김병종 작가는 자택 서재의 책상에 앉아 “여기에서 ‘시화기행’을 주로 썼다”며 “보람이 컸던 시간들”이라고 했다.  이우람 작가 제공
김병종 작가는 자택 서재의 책상에 앉아 “여기에서 ‘시화기행’을 주로 썼다”며 “보람이 컸던 시간들”이라고 했다. 이우람 작가 제공

■ ‘시화기행’ 2년여 여정 끝낸 김병종 작가

그리고 쓰는 열망 주체못해
두가지 일 함께하는 건 숙명

“그림으로 위로를 받고 싶다
화사한 색감으로 그려달라”
故이어령 선생, 말년에 당부

9월 대부도 리조트서 개인전
내년상반기까지 책 8권 출간


“이제 다시 본업인 그림 그리기가 주축이 되는 삶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소년 시절부터 해 온 글쓰기도 평생 지속할 것입니다. 글이 그림이 되는 순간, 그림이 글이 되는 찰나를 잡아채는 꿈을 아직도 꿉니다. 두 날개를 꽉 붙잡고 살아갈 것입니다.”

김병종(68) 작가는 일을 마친 게 아니라 새로 시작하는 듯 설레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경기 과천의 자택 겸 작업실 ‘송와(松窩)’에서 최근 만난 그는 앞으로의 그림과 글 작업 계획을 줄줄 읊었다. “제 호가 단아(但兒)인데, 아침의 아이라는 뜻이에요. 저는 아직도 나비를 쫓는 소년이지요. 니체의 말처럼 저에게 세상은 아름다운 사냥터입니다.”

그는 지난 12일 문화일보 연재 ‘김병종의 시화기행’을 끝냈다. 미국과 유럽을 여행하며 직접 몸으로 느낀 예술 이야기를 시와 글, 그림으로 함께 풀어낸 것이었다. 독자들의 성원이 커서 당초 예상 기간을 넘겨 2년여의 여정이 이어졌다.

“코로나19가 발발해 여행길이 막혔을 때 시작해 그 끝이 보이는 시점에 마감했네요. 독자들께서 전화와 문자로 격려를 자주 해 주셨는데, 특별히 고 이어령 선생님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서울‘사랑의교회’에 걸린 김병종 작가의 52m 벽화 ‘바람이 임의로 불매- 송화분분’. 사랑의교회 제공
서울‘사랑의교회’에 걸린 김병종 작가의 52m 벽화 ‘바람이 임의로 불매- 송화분분’. 사랑의교회 제공

신문에 ‘시화기행’이 게재된 날이면 이 선생이 어김없이 전화를 줬다고 한다. 글과 그림에 대한 느낌을 상세히 전했다. “어른의 병이 깊어지면서는 그림을 화사한 색감으로 그려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아픈 당신이 그림으로 위로를 받고 싶으시다고. 선생이 세상을 떠나시니 한밤중에도 저에게 전화를 걸어 장시간 광대한 사유를 펼치셨던 그 음성이 그립습니다.”

김 작가는 3층 서재를 안내하다가 커다란 책상을 바라보며 “여기서 주로 시화기행을 집필했다”고 소개했다. 서울대 미대 학장을 지낸 그는 “대학원 학생들이 와서 이 책상에서 함께 공부했다”고도 했다. 이어령 선생이 자택 서재에서 자신의 긴 책상을 어루만지며 “여기서 모든 걸 다 한다”고 했던 것이 떠올라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신문 연재를 벗어난 김 작가의 화업은 어떻게 펼쳐질까. “오는 9월에 ‘아일랜드 더 헤븐’에서 개인전을 합니다. 예술 섬인 일본의 나오시마(直島)에 비견할 만한 조건을 갖춘 리조트입니다.”

아일랜드 더 헤븐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경기 안산 대부도의 아일랜드CC 안에 짓고 있다. 일본 건축가 이타미 준(伊丹潤)이 지은 방주교회가 있고, 한국 건축가 배병길이 설계한 건물들이 미술관 외양으로 바닷가에 자리했다.

“아일랜드 그룹의 권모세 회장과 이성덕 이사장이 김병종 남원시립미술관을 다녀온 후 리조트에 제 이름의 미술관을 짓고 싶어 하더군요. 저는 풍광을 살린 ‘미술관 없는 미술관’을 이야기했습니다. 인공적인 건물을 지어 어두운 공간에 작품을 몰아넣기보다는 바람과 햇볕이 통하는 주거 건물과 밀착한 미술관을 지향하자고요.”

그래서 관람객들이 작품 안내 브로셔를 들고 숲길과 바닷가의 건물들을 찾아다니며 그 속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전시가 열리게 됐다는 것이다. “건축주가 천 년 명작이라고 자부할 만큼 견고하고 우아한 건물 여기저기에 생명을 주제로 한 200호, 300호짜리 대작들이 걸립니다. 미술관 없는 미술관 개념의 전시는 우리나라에 유례가 없는데요, 저도 무척 기다려집니다.”

그는 개인전 준비를 하며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가 요청했던 대형 벽화(0.9×55.2m)를 제작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송화분분’이라는 제목의 그림은 봄날 바람에 날려가는 송홧가루를 통해 생명의 근원과 창조의 신비를 담은 것이다. 성경 구절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요한복음 3장 8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교회의 ‘기도와 묵상의 길’에 걸린 그림과 관련, “ 사람들이 그림 앞을 조용히 걸으며 조용히 생각에 잠기길 바란다”고 했다.

김 작가는 책 ‘성경 오딧세이아’, ‘바람이 임의로 불매’를 곧 출간할 것이라고 전했다. 성경과 신앙에 대한 묵상집으로, 필생의 과제였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다.

“미술계 선배들께선 그림만 그리지 왜 글을 써서 에너지를 분산시키느냐고 질책을 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쓰고 그리는 두 가지 일을 함께하는 숙명을 타고났기에 스스로 주체할 수 없습니다.”

그 숙명에 순응해 밤새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결실로, 내년 상반기까지 두 개의 전시와 함께 8권의 책이 나온다. 사람과 풍경, 예술, 여행 이야기가 섞인 에세이집과 함께 ‘시화기행’ 뉴욕, 더블린, 도쿄, 베이징 편이 잇달아 나올 예정이다. ‘화홍산수’, ‘송화분분’, ‘풍죽’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화집도 한정판으로 묶인다. “일본 출판 명가인 고단샤(講談社)에서 펴내는 화집들에 뒤지지 않는 유려하고 격조 있는 화집을 만들고 싶습니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장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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