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우석의 푸드로지 - 스테이크

소금·후추로 시즈닝한뒤 조리
굽는 과정 따라 맛도 천차만별
과학자·요리사 연구의 결과물

잔열로 익히는 ‘레스팅’ 중요
고기 맛 극대화 ‘숙성’이 좌우

‘안심’ 덜 익힐수록 부드럽고
‘등심’은 더 익히는 것이 좋아
한우 구울땐 미디엄 이상으로


위 큰 사진은 포터하우스 스테이크. T 자 모양의 뼈 양쪽이 안심과 등심 부위다. 작은 사진 위부터 리스토란테 에오의 샤토브리앙, 라그릴리아의 채끝등심 스테이크, 라칸티나의 안심스테이크, 서지의 한국식 모둠 스테이크.
위 큰 사진은 포터하우스 스테이크. T 자 모양의 뼈 양쪽이 안심과 등심 부위다. 작은 사진 위부터 리스토란테 에오의 샤토브리앙, 라그릴리아의 채끝등심 스테이크, 라칸티나의 안심스테이크, 서지의 한국식 모둠 스테이크.
2년 넘게 끌어온 지긋지긋한 거리두기가 완전 해제됐다. 소외됐던 ‘사적 모임’이 봇물 터지듯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곧 5월이라 가족 행사니 결혼식도 많다. 스테이크 먹을 기회도 덩달아 늘었다. 스테이크는 값비싼 외식 메뉴의 대명사요, 양식의 대표 메뉴다.

스테이크(steak)란 무엇인가. 고기 조각을 큼지막이 잘라 불에 구운 것이다. 이 어색한 모음 배치는 이 이름이 바로 노르드어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불에 구운 음식(roast)’이란 뜻인 노르웨이 고어 ‘스테이크(steik)’에서 기원한다. 주로 소고기를 쓰지만 돼지고기나 양고기, 연어 등 생선의 경우에도 스테이크라 부르기도 한다.

우린 그저 구운 고깃덩어리를 잘라 먹으면 되지만 그 안에는 굉장한 과학지식이 녹아들었다. 숙성, 마이야르 반응, ATP, 글리코겐, 레스팅 등. 차차 설명하겠지만 스테이크 전문가가 되지 않을 요량이면 그냥 흘려들어도 된다. 다만 좀 더 고기를 맛있게 먹기 위해 과학자와 요리사가 연구해 낸 결과들이니 고맙게 생각하고 잘 먹으면 된다.

미국 애니메이션에서 배고픈 주인공이 따뜻한 집에서 두꺼운 스테이크를 썰어 먹는 것을 상상하는 장면이 가끔 등장하는데, 그만큼 맛있고 비싼 요리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반면 미국 서부영화에 꾀죄죄한 차림으로 등장해 스테이크를 먹고 있는 총잡이는 그리 부러워할 게 없다. 서부시대 카우보이들은 곡물이 오히려 귀하니 별수 없이 스테이크를 먹었다. 대개 상품으로 팔 수 없는 병든 소나 사고로 죽은 소를 잘라 먹은 것이다.

반면 18세기 영국에서는 런던에 ‘비프스테이크 클럽’이 유행하면서 스테이크가 고급요리로 자리매김했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도 사교모임이나 만찬에 스테이크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뉴욕을 중심으로 스테이크하우스가 유행했다. 귀한 소고기를 잘라 구워 먹으니 태생부터 고급요리일 수밖에 없다.

스테이크를 주메뉴로 먹는 미국이나 호주와는 달리, 유럽에서는 스테이크를 다양하게 차리는 코스 메인 메뉴 중 하나로 생각한다. 그래서 부드럽고 맛이 진하게 요리한다. ‘미국식’에 비해 마블링이 많은 부위를 사용하기도 한다. 미국식은 식사 내내 커다란 스테이크만 먹어야 하기 때문에 느끼하고 물릴까 봐 진한 맛으로 조리하지 않는다. 대신 부드러워야 하니, 애써 숙성을 시키거나 살짝 덜 익혀 먹는 걸 선호한다.

스테이크 조리법은 포스트잇에도 적을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고기를 잘라 소금과 후추 등으로 시즈닝한 다음 굽고 소스를 얹어 접시에 내면 된다. 조리법은 쉽지만 그래서 더욱 맛있게 하기 어려운 요리다. 요리사의 실력이 단번에 드러난다. 시즈닝의 구성과 시간 조절도 다양하고 소스, 가니시(곁들이는 채소나 곡물)도 천차만별. 좋은 고기를 써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중에서도 굽는 과정이 스테이크의 맛을 좌우한다.

스테이크를 익히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주로 팬과 그릴(직화)에 굽는다. 보편적으로 유럽에선 팬, 미국에선 그릴을 쓴다. 식당에서는 팬 대신 철판에 굽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직화로 겉면을 먼저 구워 불향을 낸 다음 속을 익히기 위해 다시 오븐에 넣는 복합 방식도 있다.

스테이크를 익힐 때 중요한 작업은 레스팅(resting)이다. 겉은 뜨겁게 익어 가고 있지만 속은 아직 차가운 상태일 때 그대로 더 익히거나 멈추면 조리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 과학적 원리로 열은 항상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이동하니, 고깃덩이 중심부로 열과 함께 수분이 모인다. 이때 불을 끄고 가만 내버려 두면 표면이 식으면서 속에 있던 잔열과 육즙이 다시 표면으로 돌아온다. 이 작업을 레스팅이라 한다. 주로 숯 그릴에 직화로 구웠을 때 필요한 과정이다.

스테이크 조리에서는 두 가지 어려운 단어를 더 기억해야 한다. 마이야르 반응과 숙성(aging)이다. 이 두 가지 기술이 고기를 더 맛있게 한다. 마이야르 반응은 프랑스의 화학자 루이 카미유 마이야르가 1912년 발견한 화학 반응. 고기와 크게 상관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의 연구 덕분에 요즘 사람들이 100년 넘도록 잘 먹고 있다. 이론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식품 내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열을 받을 때 일어나는 맛의 변화와 갈색으로 변하는 갈변(褐變), 그리고 소위 ‘불향’의 생성 등에 대한 것이다. 다른 말로는 ‘아미노 카르보닐 반응’이라고도 하는데 이것까지는 몰라도 된다. 필자도 쓰고 나서 바로 잊어버릴 작정이다.

당류의 갈변(캐러멜라이즈)과는 결이 다른 마이야르 반응은 120도 이상 고온(180도가 최적)에서 식품에 감칠맛이 생기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두꺼운 고기의 겉면을 바싹 익히면 색이 진해지면서 바삭해지고 감칠맛이 살아나는데 이 현상을 마이야르 반응이라 한다. ‘고기는 타야 맛있다’는 말이 허언은 아닌 셈이다.

고기를 맛있게 구워 내는 것이 마이야르의 역할이라면, 생고기에 맛이 들도록 하는 것은 숙성의 몫이다. 과학적으로 싱싱한 고기는 맛이 없다. 막 도축한 고기는 ‘사후 경직’ 탓에 부드럽지 않다. 게다가 아직 맛이 옅다. 도축 후 가축의 근육 내 효소는 활동이 멈춘 체세포를 작은 분자로 변환시키는 작용을 한다. 이때 단백질이 감칠맛(savory)의 근원인 아미노산으로 분해된다. 글리코겐과 ATP 등은 각각 포도당과 이노신산으로 변화한다. 근섬유는 약해져 한층 부드러워진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맛이 좋아진다’는 얘기다.

보통은 도축 후 2주 정도가 지나면 고기에 맛이 들기 시작해 3주가 되면 그 맛이 최고치에 이른다고 본다. 숙성처리는 크게 습식법(Wet aging)과 건식법(Dry aging)으로 나누는데 습식은 진공 포장한 상태로 촉촉하게 숙성하는 방식이고, 건식은 고기에 열을 가해 발효시키는 것이다. 건식 숙성육은 다소 퍽퍽하고 육즙이 모자란 대신 굉장히 진한 육향을 품게 된다.

굽기 정도(doneness)도 맛에 영향을 미친다. 소고기는 사실 40도 정도에 이르면 익는다. 붉은 육즙이 보이더라도 설익은 것이 아니다. 접시에 담겨 나온 스테이크의 중심부 온도가 40도대면 레어, 60도대는 미디엄, 70도가 넘어가면 웰던이다. 미국 스테이크하우스의 경우에는 좀 더 복잡해 블루레어, 레어, 미디엄 레어, 미디엄, 미디엄 웰던, 웰던까지로 세분한다.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살코기 위주 안심의 경우 덜 익힐수록 부드럽고, 기름이 많은 등심 부위는 좀 더 익혀야 맛이 좋다. 지방층이 빽빽한 우리 한우나 일본 와규(和牛)로 스테이크를 구울 때는 미디엄 이상으로 익혀 기름 맛을 즐기는 것도 좋다. 식생활의 변화에 따라 예전에는 어디를 가든 웰던 일색이던 한국인도 최근에는 미디엄 이하로 구워 낸 것을 찾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이제 ‘부위’가 남았다. 부위에 따른 스테이크 구분법은 보통 미국과 유럽의 기준을 따른다. 갈비뼈 위 등심 부위를 립아이(rib eye), 안심은 텐더로인(tenderloin)이나 필릿(fillet)이라 한다. 갈비뼈를 그대로 붙여 잘라 낸 스테이크는 도끼 모양을 닮았다고 토마호크라 부른다. 허리에서 엉덩이 쪽에 기름이 많이 박힌 채끝 등심은 스트립(strip) 혹은 설로인(sirloin)이라 부르는데 이 부위로 뉴욕 스트립 스테이크를 만든다.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T 자 모양 뼈 양쪽으로 채끝살과 안심이 나뉘도록 정형하면 티본 스테이크, L 자 모양으로 정형하면 엘본 스테이크가 된다. 끄트머리 부분의 포터하우스(porterhouse)에는 채끝살이 더 크게 붙어 있다. 이런 스테이크는 안심과 등심을 동시에 맛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크기도 커 대식가들에게 호평받는다. 이 외에도 소 대가리 쪽 목심을 사용한 척아이롤, 유선형 부채 모양으로 펴낸 플랫 아이언 등이 있다, 샤토브리앙(Chateaubriand)이란 이름도 있는데 프랑스 귀족 프랑수아 샤토브리앙의 요리사가 주로 해줬다는 일화에서 유래했다. 재료로는 텐더로인을 쓴다.

조리는 간단하다지만 알고 보면 엄청난 과학적 지식이 스테이크 접시에 침투해 있다. 과학자와 요리사에게 감사해하며 그저 고기를 잘라 먹는 순간은 행복할 수밖에 없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리스토란테 에오 = 이탈리안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코스를 주문하면 연어알을 올린 안심스테이크 샤토브리앙을 맛볼 수 있다. 숙성시킨 안심은 철쭉처럼 진홍색을 낸다. 맛은 더욱 진하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108 더현대 서울 6층. 런치 8만5000원.

◇엔그릴 = 빙글빙글 돌아가는 N서울타워 꼭대기 레스토랑이다. 한우 스테이크를 판다. 텐더로인 덩어리를 통째 구워 내 썰어 준다. 잘 숙성된 안심의 진하고 보드라운 맛은 육식의 끝판을 보여 준다. 코스만 운영하는데 스테이크는 평일 디너에만 판다. 서울 용산구 남산공원길 105.

◇라칸티나 = 이탈리안 레스토랑 노포에서 맛보는 안심 스테이크, ‘피레또 디 만조 아이 풍기’. 부드럽고 진한 맛의 스테이크에 버섯크림을 더해 감칠맛을 폭발시킨다. 레어로 주문하면 육즙을 가득 품은 살이 툭 터지며 입안에 진한 육향을 선사한다. 서울 중구 을지로 19 삼성빌딩. 3만7000원.

◇라그릴리아 = 설로인이라 불리는 채끝등심 스테이크와 안심, 부채살 스테이크를 판다. 두툼한 고깃덩어리를 정육면체로 썰어 철판 위에 올려 낸다. 기름진 등심 부위지만 느끼하지 않고 고소하다. 안심을 선택하면 5000원을 더 내야 한다.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11. 2층. 3만3000원.

◇서지 = 한국식 스테이크다. 소고기를 양파와 햄, 베이컨과 함께 철판에 볶아 먹는데 이를 모둠 스테이크라 부른다. 고기만 덩그러니 놓인 게 아니라 느끼하지 않게 즐길 수 있다. 달착지근한 소스도 기막히게 어우러진다.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84길 11-5. 4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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