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 ‘안네의 일기’ 읽고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글쓰기는 나만의 내밀한 세계
그 속에서 진정한 자유 느껴
이른 나이에 ‘별의 시간’ 만나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었다
“한 편의 비디오. 당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비디오테이프로 영화를 보던 시절, 테이프를 틀면 가장 먼저 이런 멘트가 나왔다. 비록 영화 한 편이지만,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어디 영화만 그런가. 음악도 그렇다. 여기 음악 한 곡에 인생이 완전히 바뀐 사람이 있다.
1965년,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 당시 스물세 살로 경영학도였던 길버트 캐플런(1941∼2016)은,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의 지휘로 아메리칸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제2번 ‘부활’을 들었다. 이 세상의 소리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크고 장대한 음향이 카네기홀을 가득 메우는 순간, 그는 마치 수만 볼트의 전기가 온몸을 뚫고 지나가는 것 같은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말러의 ‘부활’을 듣고 깊이 감동한 캐플런은 직접 이 곡을 지휘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게 되었다. 어렸을 때 피아노를 3년 동안 배운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음악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지만, 마흔이 넘은 나이에 지휘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공부를 한 끝에 1982년 소원이던 ‘부활’을 지휘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것으로 끝낼 생각이었다. 어쨌든 소원을 풀었으니까.
그런데 그 후 그에게 여기저기서 제의가 들어왔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부활’만 전문적으로 지휘하는 아마추어 지휘자로 활동했다. 만약 캐플런이 ‘부활’을 듣지 않았더라면 그의 인생은 어땠을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우연히 ‘부활’을 들었고, 그것이 전환점이 되어 금융 잡지사를 운영하는 경영인으로서는 매우 이색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
어떤 음악이나 시, 영화, 그림, 책과의 조우가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경우가 있다. 나 역시 그랬다. 나는 책을 읽고 인생이 바뀌었다. 내 인생을 바꾼 책. 얼마나 거창한 책일까 궁금할 것이다. 하지만 그 책은 한 편의 감동적인 소설이나 역경을 이겨낸 위인들의 전기 혹은 세상을 바꾼 사상가들의 저서처럼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책의 제목은 ‘안네의 일기’. 나치를 피해 은신처에서 살았던 안네 프랑크라는 유대인 소녀의 일기장이었다.
인생의 의미를 알 정도로 세상을 오래 산 것도 아닌, 이제 겨우 아동기에서 벗어난 풋과일 같은 사춘기 소녀의 일기가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니, 이해가 안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짧지 않은 시간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안네의 일기’만큼 충격적으로, 그리고 ‘안네의 일기’만큼 전폭적으로 내 삶의 전환점이 되었던 책은 없었다.
역사가 기원(紀元·BC)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것처럼, 나의 삶은 ‘안네의 일기’를 읽기 전과 읽은 후로 나뉜다. 이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어린아이가 갑자기 어른이 된 듯한 느낌, 순진무구한 동심의 세계에서 갑자기 세상 모든 희로애락(喜怒哀樂)의 비밀을 알아버린 어른의 세계로 들어선 기분이라고나 할까. ‘백설공주’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동화가 갑자기 유치해 보이고, 뜻도 모를 낭만파 시인의 시를 읽으며 삶의 슬픔이니 운명이니 비애니 하는 말들을 주워섬기기 시작한 때가 바로 그때였다.
그때 내 몸에는 서서히 이차성징이 나타나고 있었다. 어쩌면 나의 무의식이 이런 신체적 변화에 걸맞은 정신적 변화를 필요로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안네의 일기’와의 만남은 내 삶의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게는 어떤 방식으로든 아동기에서 청소년기로 넘어가는 통과의례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일기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안네는 예술적 감수성이 매우 풍부한 소녀였다.
‘키티’라고 이름 붙인 자신의 일기에서 그녀는 그 나이 또래 소녀들이 느끼는 내밀한 감정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세밀하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특히, 이성에 대한 감정과 성적인 호기심에 대한 솔직한 고백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안네가 은신처에 함께 살게 된 페터라는 소년과 풋풋한 사랑의 감정을 나누는 대목을 읽으며 금지된 장난을 즐기는 것 같은 짜릿한 흥미를 느끼기도 했다.
그의 일기는 내 안에 잠자고 있는 성적(性的) 정체성으로서의 여성성에 불을 지폈고, 이런 내 몸의 변화가 요구하는 것만큼의 정신적 혼란을 겪으며 나는 사춘기를 보냈다.
‘안네의 일기’를 읽고 나서 나도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나도 안네처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나만의 내밀한 세계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열심히 글을 썼던 것 같다. 글쓰기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나만의 세계였으며, 나는 그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느꼈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글을 쓰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평생 글 쓰는 것을 업으로 삼는 글쟁이로 살아가고 있었다.
미래에 운명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결정, 행동 또는 사건을 은유할 때 ‘별의 시간(Sternstunde)’이라는 말을 쓴다. 나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별의 시간’을 만났고, 이것이 내 인생에 가장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