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쎄시봉 ‘웨딩케이크’
“걸핏하면 노랫말을 인용하고 그걸로 인생도 구겼다 폈다 하면서 정작 그 가사를 쓴 사람의 이름은 왜 안 밝힙니까.” 솔직히 노래채집가도 그게 마음에 걸린다. 해명이 될지,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시의 주인은 시를 쓴 사람이 맞아도 그림의 주인은 화가가 아니라 그림의 소유주다. 그렇다면 대중이 기억하는 노래의 주인은 누구인가. 작사가나 작곡가보다는 노래를 처음 취입한 가수거나 무대에서 노래를 제대로(확실히) 불러 자신의 노래로 각인시킨 사람이 아닐까. 모름지기 사람이 살아야 집으로 인정받듯 누군가 불러야 살아 있는 노래로 대우받는다. 안 부르는 노래는 악보에 불과하다. 고작해야 먼지 쌓인 서가에 갇힌 책, 혹은 누구도 찾지 않는 흉가나 다름없는 신세다.
‘누구의 노래일까’는 누구의 노래일까. 기록을 살펴보니 1980년 TBC세계가요제 국내예선에서 가수 민해경이 처음 이 노래로 신고식을 했다. 해마다 10월의 마지막 밤을 달구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이용 ‘잊혀진 계절’ 중)의 작곡가 이범희의 공식데뷔곡이기도 하다. 내가 주목하는 건 이 노래의 작사가 박건호(1949∼2007)다. 그는 ‘잊혀진 계절’을 비롯해 조용필의 ‘모나리자’,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 등 무려 3000여 곡의 가사를 썼다. 이분이 쓴 책 ‘오선지 밖으로 튀어나온 이야기’에 작사가의 애환이 보인다. ‘누구의 노래일까’를 녹음하면서 자신의 오리지널 가사를 작곡가가 입맛대로(?) 바꾸는 걸 보고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는 거다. 구체적으로는 ‘꺼지지 않는 한줄기 작은 빛은’을 ‘꺼지지 않는 마음 한줄기 빛이어라’로 바꾼 정도다. “비슷한데 뭘 그래.” 그러나 아 다르고 어 다른 게 예술가의 자존심이다. 불과 몇 글자 때문에 ‘누구의 노래일까’는 하마터면 지하실의 멜로디로 남을 뻔했다.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피땀 흘려 만든 곡과 가사를 허락 없이 누군가 제멋대로 개조해 발표한다면 그야말로 화날 일이다. 작곡할 때 쓰는 대위법이나 화성법보다 훨씬 강력한 음악저작권법이 그래서 생겨났을 거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배운 노래 중 다수가 외국곡이라는 건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깊은 산 속 옹달샘’은 독일에서, ‘떴다 떴다 비행기’는 미국에서, ‘반짝반짝 작은 별’은 프랑스에서, 심지어 ‘퐁당퐁당’은 일본에서 왔다는 걸 알았을 때 ‘세상은 넓고 노래는 많다’기보다는 ‘그 많은 한국의 창작자들은 어디로 숨었을까’란 아쉬움이 더 컸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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