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당국 낙점 받고 단독 입후보 2019년 민주화 시위 진압 앞장 경찰 출신 첫 정무부총리 임명
베이징=박준우 특파원
오는 5월 8일 열리는 홍콩 행정장관 선거를 앞두고 현지 분위기가 차갑게 식어 있다. 홍콩특별행정구 전 정무부총리 출신 존 리(사진) 후보의 당선이 사실상 확정돼 있는 만큼, 선거는 요식 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낙점한 리 후보가 취임하면 홍콩의 민주주의 위기가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리 후보는 지난 24일 첫 유세를 시작으로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리 후보는 지난 17일 마감된 행정장관 후보 등록에서 선거인단 1463명 중 786명의 추천으로 단독 입후보한 상황이다. 당선에 필요한 선거인단 과반수 지지를 얻은 데다 경쟁자마저 없는 상황을 빗대 SCMP는 “리 후보의 ‘원맨쇼’가 시작됐다”고 전했다. 지난 2017년 보안국장(장관)에 임명된 리 후보는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를 강경 진압하는 데 앞장섰고, 그 성과를 인정받아 경찰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홍콩의 2인자 자리인 정무부총리에 임명됐다. 이번에도 중국 당국의 낙점을 받은 상태에서 입후보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선거 열기는 차갑게 식었고, 리 후보 역시 선거운동 대부분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등 소극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리 후보 캠프를 총괄하고 있는 탐유충(譚耀宗)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홍콩대표는 SCMP에 “코로나19 확산으로 대면 교류에 제약을 받고 있다”고 해명했다. 일각에선 리 후보의 모든 일정과 선거 관련 행보를 중국 본토에서 지시하고, 리 후보는 이에 맞춰 움직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리 후보 캠프에는 탐 대표 외에도 중국 대표 국영 해운기업인 자오상쥐(招商局) 그룹의 먀오젠민(繆建民) 회장, 쑨위(孫煜) 중국은행 홍콩본부 부본부장 등 친중 인사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캐리 람 현 장관이 선거 당시에 홍콩 인사들을 중심으로 캠프를 꾸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국 등 서방의 견제가 리 후보의 유일한 걸림돌이지만 당선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최근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은 자사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에 개설된 리 후보의 선거 계정을 폐쇄했다. 리 후보가 홍콩 민주주의를 탄압해 미국 당국의 제재 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게 이유다. 이 때문에 홍콩 기업들이 리 후보에게 정치 자금을 후원하는 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는데, 리 후보 측은 금융 계좌를 이용하는 대신 기업가들로부터 후원금을 현금으로 받아 이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순훙카이(SHKP)의 레이먼 ? 회장 등 홍콩 주요 부동산개발회사 회장과 CEO들이 일제히 리 후보 지지를 선언한 상황이어서 자금 모금에도 문제가 없을 전망이다.
전문가들의 관심은 선거 결과보다는 리 후보 취임 이후 홍콩 민주주의가 얼마나 더 와해될지에 쏠려 있다. 리 후보가 “안정이 없다면 번영도 없다”면서 최우선 과제로 홍콩 정부 차원의 보안법 추진을 밝힌 상태기 때문이다. 중국이 제정한 홍콩 국가보안법에 더해 세부적인 집행 규칙을 만들겠다는 의미여서 홍콩 민주주의 후퇴는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윌슨 챈 홍콩중문대 교수는 “‘스트롱맨 정치’가 홍콩에서 펼쳐질 것”이라면서 인권이 크게 침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언론인연맹(IFJ)도 “홍콩 당국의 언론 탄압이 최종 단계(Endgame)에 접어들고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