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 없는 세계에서 목적 찾기│랠프 루이스 지음│류운 옮김│바다출판사
우주에 궁극적 목적 있다거나
운명 믿는건 직관적 오류 불과
자연은 우리의 고통엔 무관심
진화의 와중에 탄생한 ‘인류’
의미찾고 목표 지향하며 협력
물론, 신이 죽었든 말든, 어떻게 행해야 할지 알든 모르든, 우리는 하루하루 생명을 잇는다. 의미도, 목적도 잃은 인생은 살아도 산 것 같지 않다. 신 없는 세계는 어쩐지 공허하고 힘겹게 느껴진다. 그러나 랠프 루이스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의 ‘신 없는 세계에서 목적 찾기’에 따르면, 이 느낌은 우리 마음의 편향 때문이다.
인간 마음은 시간의 모래밭에 흩뿌려진 무작위의 점을 이어 그럴듯한 이야기를 꾸미는 일을 좋아한다. 우리는 보고 듣고 겪은 사건을 엮어 원인과 결과, 패턴이나 목적을 찾아내고, 그에 맞춰 행동을 계획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주에 궁극적 목적이 있다거나 인생에 정해진 운명이 있다는 깨달음은 직관적 오류에 불과하다.
실연했기에 운명의 짝을 만났다든지, 비행기를 놓친 덕분에 서점에서 인생의 책을 찾았다든지 하는 경험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볼테르는 모든 일에 이유가 있다고 믿는 라이프니츠를 조롱하고 풍자했다. 대니얼 카너먼은 “우리 마음이 인과적 설명을 강하게 선호하기에 단순 통계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우리한텐 “감정적 울림을 주는 우연의 일치에 개인적 의의와 우주적 의도를 부여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럴듯한 생각을 모두 사실로 믿는 사람이 쉽게 망상과 오류에 빠지는 이유다.
패턴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사랑하는 우리 마음의 편향을 인식하고 제어하는 일은 신이라는 오류와 근거 없는 낙관에 빠지지 않은 채, 과학에 근거를 두고 삶을 긍정하는 첫걸음이다. 저자는 이를 ‘세속적 휴머니즘’이라고 한다.
인류는 진화의 와중에 우연히 탄생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우리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진화엔 의도가 없지만, 인간은 의미를 찾고 목적에 이끌리며 목표를 지향하면서 서로 협력하게 만들어졌다. 우리에게는 일관된 세계관을 형성하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이룩하며, 자신과 타인을 돌보는 힘이 있다. 자연은 무정해 우리를 보살피지 않으나, 우리는 서로를 보살피면서 모여 살아간다. 연대하고 협력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진화한 까닭이다.
포유류는 젖을 먹여야 하기에 어미-자식 간 유대와 애착은 필수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이 감정 능력이 집단 결속의 바탕이다. 더욱이 인류는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는 신경회로를 타고났다. 이타적으로 행동해 타인의 고통을 해소하는 일이 자기 고통을 줄이는 일인 것이다. 도덕은 이로부터 발달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공감과 공격성, 협력과 경쟁의 균형을 이루게 했고, 이성과 문화, 죄책감과 양심, 수치심과 평판 등의 힘이 그것을 강화했다.
인류는 모여 살면서 자기를 인식하고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읽어내며, 사회적 성취와 타자의 인정을 갈구하고 미래의 보상을 위해 현재의 만족을 억제하는 힘을 길러냈다. 또한 도파민 활성을 통해 뇌의 보상회로를 작동시켜 자기실현을 위한 바람직한 행동을 격려함으로써 주의를 집중하고 동기를 부여, 삶의 목적을 형성하는 길로 전진했다.
자연은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다우나, 우리의 고통에는 무심하다. 목적도 없고, 보살핌도 없는 우주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어 시련을 견디면서, 즉 최악의 상황에도 최선의 결과를 내도록 애쓰며 의미 있게 살아간다. 동정과 연민을 바탕 삼아 인류가 ‘나’가 아니라 ‘우리’로, ‘홀로’가 아니라 ‘서로’로 살도록 진화한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덕분에 죽음도 우리를 완전히 무로 돌릴 수 없다. 인간의 삶은 크든 작든 타인에게 깊은 영향을 남긴다. 이 엄연한 사실은 우리 삶의 방향과 목적을 일깨운다. “우리는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계속 경험하고 배우고 성장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우리 주변에 있는 이들과 우리 다음에 올 자들에게 이바지한다는 감각으로 우리를 채워 갈 수 있다.” 492쪽, 1만98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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