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밤의 고양이 | 주애령 글·김유진 그림 | 노란상상

이 도시 어딘가에는 혼자 밤을 보내는 어린이가 있다. 모든 어린이는 안전한 곳에서 보호받아야 하지만 현실에는 사각지대가 있다. 개인에게 양육의 책임을 떠맡기는 것은 위험하다. 양육자가 위기에 처하면 어린이가 소리 없이 고립되기 때문이다. 공동체가 어린이의 안위를 함께 지켜주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동화 ‘하얀 밤의 고양이’는 3학년 아연이의 이야기다. 남편과 헤어지고 딸과 단둘이 자립을 시작한 아연이 엄마는 낮에는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밤에는 인터넷으로 이것저것을 팔아 생활비를 마련한다. 아연이는 새 동네로 전학해 갑작스러운 변화가 두렵지만 밤마다 “자면 안 돼”라고 다짐하며 늦게 들어오는 엄마를 기다린다. 혼자 남은 아연이의 시간을 버티게 해주는 건 그림책이다. 아파트 안 작은 도서관이 아연이의 은신처다. 선의를 가지고 있으나 생계가 절박한 어른들은 아연이의 불안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 어느 저녁의 외로운 아연이가 빈 도서관에 숨어든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추위를 피해 자동차 밑으로 숨어들었다가 목숨을 위협당하는 길고양이와 도서관 바닥에 엎드린 아연이는 닮았다.

정채봉의 동화 ‘오세암’에는 폭설로 암자에 갇힌 어린 길손이가 나온다. 이 작품에서 아연이를 고립시킨 것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문제다. 길손이는 관세음보살의 보살핌 속에 열반에 들지만 오늘날의 아연이는 비슷한 처지의 새끼고양이들을 돌보면서 꿋꿋이 살아서 버틴다. 이 결말은 아연이 자신의 의지 덕분에 가능했다. 주애령 작가는 돌봄의 공백을 사실적으로 비판하면서도 환상에 기댄 희망을 내려놓지 않는다. 그림책처럼 보이는 이 동화책은 이미지가 이야기를 풍성하게 뒷받침하는 새로운 형태다. ‘오늘상회’의 김유진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시적인 문장이나 상징적인 장면이 등장하지만 구체적인 시각 표현을 동반한 덕분에 읽기가 어렵지 않다. 조금 더 문학적인 이야기를 읽고 싶은 열 살 전후의 어린이에게 권한다. 80쪽, 1만4500원.

김지은 서울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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