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버튼 감독이 호텔 냅킨에 그린 다양한 그림들.
팀 버튼 감독이 호텔 냅킨에 그린 다양한 그림들.

‘팀 버튼의 월드투어’ 첫 전시… 서울 DDP서 9월 12일까지 열려

회화·데생·설치작품 등 520점
세상의 빛·어둠 다양하게 담아
“세계인의 연결성·유대감 강조
아이들이 창작 영감 받았으면”
작업 스튜디오 재현해 첫 공개


글·사진=장재선 선임기자

팀 버튼 감독이 서울 DDP 전시장 입구의 설치물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팀 버튼 감독이 서울 DDP 전시장 입구의 설치물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제가 가장 기뻐하는 것은 어린이들이 제 전시에서 창작의 영감을 받아가는 것입니다. 저를 통해 아이들이 나도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를 바랍니다.”

10년 만에 한국에 온 팀 버튼(64)은 이 같은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영화감독으로 널리 알려진 그는 이번에 미술 작가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전시를 한다. 팀버튼 프로덕션이 기획한 월드투어 전시의 첫 번째로, 지난달 30일 개막했다. 오는 9월 12일까지 신작 150여 점을 포함해 총 520여 점을 선보인다. 스케치부터 회화, 데생뿐만 아니라 폴라로이드 사진, 설치 작품 등 그가 지난 50여 년간 작업해 온 것들을 만날 수 있다. 영화 콘셉트 드로잉, 페인팅, 대본, 스토리보드 등도 다양하게 볼 수 있다.

지난달 28일 DDP에서 만났을 때, 그는 “존경하는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유작인 DDP에서 전시를 열게 돼 영광”이라고 했다. 그는 “DDP를 사진으로 먼저 봤는데, 우주선 같은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며 “이번 전시 작품 동선을 거기에 맞게 짜서 관객이 우주선 안에서 돌아다니며 느낌을 받게 의도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한 8.5m짜리 대형 조형물과 관련, 그는 “여기에 외계인이 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며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기괴하면서 환상적인 영화 작품으로 전 세계에 마니아층이 두껍다. 그의 스타일을 뜻하는 ‘버트네스크(Burtonesque)’란 말이 만들어질 정도다. ‘가위손’(1990),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1993), ‘빅 피쉬’(2003), ‘유령 신부’(2005),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 ‘덤보’(2019) 등이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미술 작품으로 월드투어를 해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는데, 지난 2012년 서울 시립미술관 전시가 그 하나였다.

그는 “10년 전엔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기획한 전시여서 뉴욕의 도시 특성이 많이 들어갔다면, 제 프로덕션에서 만든 이번 전시는 세계인의 연결성, 유대감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전시를 주관한 지엔씨미디어의 홍성일 대표는 “10년을 기다린 끝에 성사시켰는데, 월드투어 첫 번째로 서울이 선택된 것이 기쁘다”고 했다. 팀 버튼은 “10년 전 서울에 왔을 때 참 좋은 인상을 받았다”며 “이번에도 밤에 창덕궁을 갔는데, 너무 아름답더라”고 했다.

그는 지난 2012년에 왔을 때보다 확실히 나이 든 모습이었으나, 장난기는 여전했다. 스스로 “E(외향형)의 성향을 갖고 있는 I(내향형)인 것 같다”고 밝힌 그는 어눌한 말투로도 유머를 곁들여 시종 친절하게 전시에 대해 설명했다. 말이 없을 땐 우울한 얼굴이었으나, 사진 촬영 땐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웃겼다. 세상에 공존하는 빛과 어둠을 예술 작품으로 풀어내는 아티스트다웠다.

“저는 언어구사력이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를 그림으로 그리는 게 더 쉬웠어요.” 전시장 벽면에 붙어 있는 문구처럼 그가 어린 시절에 그린 그림들은 내향적인 아이가 얼마나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미지의 세계가 주는 공포를 환상과 유머, 연민으로 껴안는 버트네스크의 원천을 헤아릴 수 있다.

그는 “코로나19 기간에 특별히 고립감으로 괴롭지 않았는데, 평소 고독을 느끼며 살았기 때문일 것”이라며 “기존에 바빠서 못 했던 생각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했다. 부정 속에서도 긍정을 발견하게 해 줬다는 것이다.

전시장을 돌아보면서 새삼 감탄한 것은 기괴함을 조형미로 이끌어 낸 작품성이다. 기본적으로 타고난 재능이 있어서이겠으나,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늘 기록하는 노력 덕분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는 그가 어디나 들고 다니는 스케치북뿐 아니라 호텔 메모지에 담은 드로잉을 많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식당 냅킨에 그린 드로잉 작품들을 눈여겨보길 권한다.

전시장 마지막에 있는 ‘팀 버튼 스튜디오’도 찬찬히 들여다보길 바란다. 공개된 적이 없는 스튜디오를 그대로 재현해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코르크 메모 보드에는 각종 프로젝트의 탄생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그림들이 붙어 있다. 곧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는 그의 드라마 ‘웬즈데이’ 밑그림도 볼 수 있다. 책상 위에는 대본과 함께 각종 미술 도구가 펼쳐져 있다.

주한미국대사관과 함께 이번 전시를 후원한 서울디자인재단의 이경돈 대표는 “5월 가정의 달에 팀 버튼 전을 하게 돼 의미가 크다”며 “가족 손을 잡고 온 시민들이 행복을 느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티켓 예매는 인터파크, 네이버, 29CM 등에서 할 수 있다.
장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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