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곡 전반에 활용한 레드벨벳의 ‘Feel My Rhythm’(필 마이 리듬) 뮤직비디오 사진.  SM 제공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곡 전반에 활용한 레드벨벳의 ‘Feel My Rhythm’(필 마이 리듬) 뮤직비디오 사진. SM 제공


■ 음악평론가 김영대의 팝·콘
- 레드벨벳 ‘Feel My Rhythm’

오프닝부터 ‘Air’ 멜로디 흘러
추모식서 쓰던 슬픈 정서 대신
빠른 비트 넣어 ‘희망’ 끌어내

원곡을 밝게 변형시켜 댄스까지
클래식 활용한 곡들과 다른 접근
발칙하면서도 ‘기분 좋은 시도’


“꽃가루를 날려/폭죽을 더 크게 터트려” 걸그룹 레드벨벳 신곡의 한 소절이다. K-팝에 남다른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최근 이런저런 SNS에서 ‘챌린지’로 유행 중인, 멤버 조이의 밝은 웃음이 함께하는 ‘포인트 안무’가 곧바로 떠오를 것이다. 아직 이 곡을 모르는 이들이라면 지금이라도 플레이버튼을 눌러 한번 따라가 보자. 오프닝부터 이미 익숙한 선율과 분위기에 귀가 쫑긋 세워지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 Feel My Rhythm(필 마이 리듬)은 독일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3번 라장조의 아리아, 흔히 ‘G선상의 아리아’라고도 불리는 ‘Air’의 유명한 선율을 곡 전반에 활용한 작품이다.

잠깐, 그렇다고 이 곡이 전에 없던 어떤 혁신적인 시도를 보여준다고 성급히 단정 짓고자 함은 아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중음악에서 클래식은 생각보다도 훨씬 더 빈번히 또 폭넓게 인용되는 레퍼런스였기 때문이다. 팝 음악을 비롯한 서구 대중음악의 뿌리가 결국 고전음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에서 일견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중음악에서 빈번히 활용되는 화성이나 코드 진행의 기본 뼈대도 따지고 보면 고전음악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정립된 체계의 대중적 변형인 셈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는다.

베토벤의 가곡을 활용한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위)과 ‘엘리제를 위하여’의 주 멜로디를 차용한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
베토벤의 가곡을 활용한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위)과 ‘엘리제를 위하여’의 주 멜로디를 차용한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
대중음악이 클래식을 활용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물론 누구나 알 만한 곡의 한 구절을 그대로 가져와 음악의 포인트로 삼는 것이다. 1990년대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은 베토벤의 가곡 ‘그대를 사랑해’를 도입부로 활용해 곡의 애절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배가시켰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힙합 음악이 유행하며 가요에는 ‘샘플링’이라는 개념이 보편화됐고 이에 따라 클래식은 더 빈번히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활용됐다. 클래식과 K-팝의 결합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곡 중 하나인 신화의 T.O.P.(Twinkling Of Paradise)가 대표적으로, 차이콥스키의 작품 ‘백조의 호수’를 폭넓게 차용해 곡을 쓰고 퍼포먼스의 요소로도 활용했다.

과거의 사례들에 비하면 레드벨벳의 Feel My Rhythm은 여러모로 독특한 접근법을 보여주고 있다. 일단 클래식 음악을 차용하는 방식이다. 주류 K-팝의 히트곡들에서 클래식은 다소 단조롭거나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잦았다.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의 주 멜로디를 중간중간 차용한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테마 ‘하바레나’의 주선율과 코드 진행 위에 곡을 붙인 박지윤의 ‘달빛의 노래’ 같은 곡에서 잘 드러나지만 단조의 비장함을 댄스뮤직의 역동성 안에 녹여내 호소력을 높이는 방식은 아티스트들이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일종의 공식이었다. 원곡을 적절히 활용했다는 느낌은 받을 수 있을지언정, 그것이 창조됐다거나 재해석됐다는 느낌은 찾기 어려웠다. 바로 그 점에서 Feel My Rhythm은 제법 두드러지는 시도다. Air에 담긴 바흐의 아름다운 선율과 서정을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원곡 속의 지배적인 정서를 부분적으로 완전히 새롭게 재해석해 다른 내러티브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흐의 Air는 버전에 따라 흔히 다장조 혹은 라장조로 연주되는데, 언뜻 생각했을 때 비극적인 슬픔을 표현하는 조성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선상의 아리아’는 보통 슬프고 엄숙한 곡으로 기억되는 편이다. Air가 가진 설명할 수 없는 상실과 비애의 감수성은 이 곡이 종종 장례식이나 추모식에서 연주되는 이유기도 하다. 1990년대에 힙합 그룹 스위트박스가 이 멜로디를 힙합 비트에 얹어 히트시켰을 때도 그 핵심적 감정은 떠나간(혹은 세상을 떠난) 이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슬픔이었다. 하지만 Air는 정말 그렇게 슬픈 곡이기만 한 걸까. 레드벨벳의 음악은 다른 해석의 여지를 보여주는 데 성공하고 있다.

Feel My Rhythm은 아련한 서정과 슬픔 사이에 비치는 희망의 빛이라는 정서에 있어서 오히려 Air가 원래부터 담고 있던 복잡한 아름다움을 잘 해석한 곡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곡으로부터 사람들이 느꼈던 상실이나 엄숙함 대신 희망과 간절함이라는 정서를 발견해 이를 곡이 가진 도약과 전진의 이미지와 매치하고자 한다. 이 같은 시도를 위해서 곡에는 몇 가지 의도적인 장치들이 정교하게 배치돼 있다.

곡은 흔히 Air가 연주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BPM(Beats Per Minute) 158 정도로 설정돼, 보통 춤추기 좋다고 느껴지는 경쾌한 분위기를 충분히 끌어내고 있다. 원곡이 흐르는 짧은 오프닝 이후에는 비교적 요란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힙합 스타일의 ‘벌스’가 등장해 일차적인 차별화를 꾀하는데, “무도회를 뒤집어/작은 소란을 또 일으켜” 등의 가사를 통해 곡이 품은 의지의 감정을 내비친다. 하지만 이는 곧 이어 등장할 절정을 위한 반전의 전제에 불과하다. 이내 이 곡은 바흐의 Air에서 아주 미세한 흔적 정도로 비치던 희망과 환희의 감정을 극대화시키며 감정을 질주해간다. 후렴의 첫 여덟 마디는 조금 더 밝은 희망 메시지를, 이어지는 여덟 마디는 상대적으로 애절한 의지를 담고 있는데, 그 같은 감정을 효과적으로 끌어내기 위해 원곡의 화성을 조금 더 밝게 변형시켜 적용했다. 그런가 하면 브리지 파트에서는 Air 중에서도 가장 우울한 선율을 통해 해당 부분의 가사가 드러내고자 하는 미스터리적인 느낌과 긴장의 효과를 잘 살려냈다. 솜씨 좋은 구성이다.

클래식 명곡은 대중음악에 있어 언제나 가장 매력적이고 손쉬우면서 가장 위험한 샘플링 레퍼런스다.

뻔한 길을 걷지 않고도 원곡의 잠재력을 이끌어내 재해석한 Feel My Rhythm은 그런 의미에서 두고두고 참고될 만한 시도다. 익숙하지만 진부하지 않은, 발칙하면서도 그야말로 ‘말이 되는’ 시도. 이것이야말로 K-팝 아이돌 음악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기분 좋은 형태의 실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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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대 = 음악평론가이자 문화연구자.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BTS : 더 리뷰’ ‘지금 여기의 아이돌-아티스트’ 등을 집필했으며 국내외 언론을 통해 대중음악 평론 활동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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