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촬영 현장에서 임권택(사진 왼쪽)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강수연.
영화 촬영 현장에서 임권택(사진 왼쪽)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강수연.

■ 말로 돌아본 강수연의 삶

배우 강수연은 스포트라이트 속에 살았다. 1983년에 출연한 KBS 드라마 ‘고교생일기’를 통해 하이틴 스타가 됐고, 20대 초반 발표한 작품이 잇따라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가장 먼저 ‘월드 스타’라는 수식어를 단 한국 배우가 됐다. 매 순간 영광이었지만, 매 순간 짊어진 짐도 무거워졌다. 강수연의 삶을 그의 말을 통해 되짚어봤다.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직후 축하행사에 참석한 강수연.(사진 가운데)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직후 축하행사에 참석한 강수연.(사진 가운데)

◇“엄청 부담스럽고 버거운 호칭에 죽을 만큼 연기했어요.”(2015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부임 직후)

강수연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씨받이’(1987)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품에 안았다. 한국 배우이자 아시아 배우 최초로 일군 쾌거였다. 2년 뒤에는 또다시 임 감독의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의 주인공이 됐다. 이즈음 ‘월드 스타’라는 수식어는 그의 이름표가 됐다. 주위의 시선도 달라졌다. 강수연은 “베니스국제영화제에 가기 전 인터뷰를 하면 ‘어떻게 어린 나이에 그런 베드신을 했냐’는 질문만 해서 상처를 받았다. 그런데 상을 타고 나니까 ‘어떻게 연기를 그렇게 잘하냐’고 싹 바뀌더라. 덕분에 상처받았던 것이 싹 사라졌다”(2011년 MBC ‘무릎팍도사’)고 당시를 회상했다. 강수연의 등장으로 한국 영화계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도 달라졌다. 그는 “1980년대 해외영화제를 다닐 때 설움이 많았다. VIP로 초대받았는데 ‘북한 사람인가? 남한 사람인가?’라고 묻고, ‘한국도 스스로 영화를 만드냐’고 묻더라”(2007년 부산국제영화제)고 말했다. 이런 시선 속에서도 묵묵히 세계를 누빈 강수연은 K-콘텐츠의 초석을 닦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사석에서 영화인들에게)

영화 ‘베테랑’ 속 이 대사는 강수연이 평소 술자리에서 즐겨 쓰는 표현이다. 주위 영화인들이 “여걸이자 맏언니였다”고 기억하는 강수연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항상 당당할 것을 주문하며 이같이 말했다. 내홍에 빠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2015∼2017년)을 맡았을 때는 이 문장이 건배사가 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여성 영화인들의 목소리가 작던 시절, 그들의 편에 서서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줬다. 그가 수작을 걸던 제작자의 따귀를 올려붙인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에 대해 강수연은 2010년 언론 인터뷰에서 “그런 사람이 하나둘인가”라며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하는 것은 나이와 지위를 막론하고 못 받아들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부임 첫해인 2015년 여성영화인상을 받기도 한 그는 “지금의 나는 정말 여자로서 행복하고, 여배우로서 지금까지 견뎌온 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여성 영화인들이 배우는 물론 영화계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우로서만 사랑받고 싶어요.”(2007년 매거진 인터뷰)

강수연은 다양한 수식어를 가졌다. 하지만 그가 평생 갈급한 건 단 하나, ‘배우’였다. 1969년, 3세 때 아역 배우로 영화에 처음 발을 내디딘 후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로 사랑받은 그는 2001년 16년 만에 출연한 드라마 SBS ‘여인천하’로 그해 연기대상을 거머쥐며 재차 정점을 찍었다. 이후에는 선후배 영화인을 위해 특별출연 형식으로 얼굴을 비쳤지만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등 대외 활동이 늘며 작품 출연 기회는 줄어들었다. 정작 그는 “저는 숫자 개념도 없고, 게을러서 사람 관리도 잘 못 하는 편이다. 아마 사업이나 다른 것을 했다면 망하기 딱 좋았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곱게 늙으며 배우로서만 사랑받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 바람대로 그는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넷플릭스 과학소설(SF) 영화 ‘정이’의 촬영을 마치고 공개를 앞두고 있었다. 이 작품이 그의 유작이 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그의 나이 불과 56세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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