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 역사

고려 숙종때 남경 별궁으로
경복궁 창건뒤엔 궁궐 후원


윤석열 대통령의 용산 집무실 이전 단행으로 청와대는 100여 년간 이어진 ‘권력의 정점’이라는 위상을 문재인 정부를 마지막으로 내려놓는다. 역동적인 한국 현대사의 영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청와대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처럼 윤 대통령 취임식이 이뤄진 10일 마침내 국민 품으로 돌아왔다.

현재의 청와대 자리가 권력의 상징으로 떠오른 것은 12세기 초다. 고려 숙종 때 지금의 서울에 남경을 설치했는데, 당시 별궁이 있던 터가 현재의 청와대 자리였던 것으로 역사가들은 보고 있다. 이후 조선이 한양(서울)을 수도로 정하고, 1426년 경복궁이 창건된 뒤 청와대 터는 궁궐 후원으로 사용되며 경무대(景武臺)로 불렸다. 과거 시험이나 군사 훈련이 이뤄지는 장소로 쓰이기도 했다.

청와대가 본격적으로 최고 권력자의 거처로 사용된 것은 1920년대 일제강점기부터다. 경복궁을 조선총독부 청사 건물로 사용하던 일제는 지금의 청와대 부지에 공원을 조성했다. 1939년에는 청와대 부지에 총독 관사 건물을 새로 지었다. 총독 관사는 광복 후 존 하지 미 군정 사령관의 관저가 됐다.

1948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경무대라는 이름을 되찾아 대통령 관저 및 집무실로 썼다. 경무대는 경복궁(景福宮)의 ‘경’ 자와 경복궁 북문으로 청와대와 맞닿은 신무문(神武門)의 ‘무’ 자를 따서 지었다. 청와대라는 이름은 1960년 4·19 혁명 이후 윤보선 전 대통령이 지었다. 당시 경무대가 독재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상황에서 건물색으로 이름을 지은 백악관의 사례를 참고해 ‘푸른 기와집’을 뜻하는 청와대(靑瓦臺)로 바꿨다. 이후 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62년간 청와대를 집무실이자 관저로 사용했다. 지금의 청와대 본관은 노태우 정부 때 지어졌다.

당시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가 함께 있었는데 이를 분리했다. 1990년 대통령 관저와 춘추관(기자실)을 신축했고, 1993년에는 일제 총독 관저였던 구관을 철거했다. 당시 공사 중 발견된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는 표지석은 지금 청와대 경내에 있다.

그간 문 전 대통령을 비롯해 역대 대통령들은 청와대를 떠나 집무실을 옮기려고 꾸준하게 시도했다. 구중궁궐에 갇혀 민심과 괴리된 국정 운영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호나 보안 등의 이유로 무산됐다.

민병기 기자 mingm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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