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난 6일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새로 출범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헌법에 기초한 자유 민주주의 회복과 정치·사회적 양극화 해소에 나서줄 것을 제언하고 있다. 김선규 기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난 6일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새로 출범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헌법에 기초한 자유 민주주의 회복과 정치·사회적 양극화 해소에 나서줄 것을 제언하고 있다. 김선규 기자


■ 윤석열 정부의 과제 - ①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文의 ‘운동론적 민주주의觀’
양극화 초래 갈등만 더 증폭
국민통합 큰 비전 보여줘야

尹, 지나친 권력행사 자제하고
야당에 관용의 미덕 보여야
前정권 징치하지 않았으면”

“尹, 시장경제 강조 바람직
약자에 ‘퍼주기식 복지’ 아닌
‘경쟁 + 분배’ 병행해야 성공

국제정치 맞춰 대북정책 수립
이젠 北 정식국가로 인정할때
남북관계서 이념변수 제거를”


진보 정치학계를 대표해온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전임 문재인 정부 시절의 포퓰리즘적 민주주의를 극복하고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복원하는 것을 최고의 국정 가치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 명예교수는 특히 윤 정부가 ‘아(我)와 피아(彼我) 편 가르기’라는 문 정부의 운동론적 민주주의관이 국민을 양극화로 몰아간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 통합을 위한 큰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시점 국가 지도자로서 윤 대통령이 갖춰야 할 미덕과 관련해 최 명예교수는 ‘민주적 규범의 준수’ ‘권력 행사의 자제’, 그리고 ‘상대에 대한 존중과 관용’을 꼽았다. 최 명예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 6일 오후 그의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1시간 30분가량 진행됐다. 다음은 최 명예교수와의 일문일답.

―윤석열 정부가 국정 운영에서 가장 중심에 두고 가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국민 양극화를 완화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 양극화가 출현하면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쇠퇴했다. 나는 이를 개념적으로 민중주의적 민주주의,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포퓰리즘적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지만, 헌법을 기초로 운영해 온 민주주의와는 다른 형태의 민주주의다. 촛불시위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수구 세력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고, 자신들은 개혁의 주체가 되는 것으로 세력을 나눴고, 그 결과 양쪽은 서로 적대하게 됐다.”

―문 정부의 민주주의관은 구체적으로 뭐가 문제였나.

“문재인 전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정부는 삼권분립이나 ‘견제와 균형’의 원리 같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이 규정하는 법 또는 규범을 존중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아와 피아’를 가르는 정치, 이것을 나는 ‘운동론적 민주주의관’으로 부른다. 개혁 드라이브가 너무 강하게 걸리다 보니 다원주의적 가치와 사회구조의 약화를 불렀고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증폭시켰다. 문 정부의 또 다른 특징은 국가권력의 확장이다. 대의기구인 의회를 통해 정치를 운영하기보다 여론에 의존한 것도 상당히 특징적인 문 정부의 운영 방식이었다. 이런 문 정부를 특징화하고 그 특징을 넘어서는 것이 새 정부의 과제다.”

―윤석열 새 정부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점을 지적하신 것 같다.

“문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내가 확실히 알고 있다’는 인상을 주면서 민주주의를 다른 차원으로,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가진 것같이 보였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최종적 가치가 아니라 과정으로 이해돼야 한다. 개인주의를 확대·실현하고, 차별을 어떻게 극복할지, 사회 혼란과 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할지 등에 관심을 갖고 실천하는 게 민주주의다. 문 정부는 민주주의에 대해 너무 헌신했다고 할까, 고귀하게 이상화한 나머지 혁명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한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국민통합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윤 대통령은 기존 정부를 반대하는 세력의 대표로 나와 당선된 것인데 그렇다면 뭔가 비전이 있어야 한다. 그 비전은 작은 정책 대안이 아니라 넓고 장기적인 관점으로 우리 사회가 어디로 나아가는지를 알려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새 정부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고 명시적으로 표현하고 그 가치를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 있다면 좋겠다. 자유는 가치로서의 강건함, 절제의 미덕을 본질로 하는 만큼 절제의 기풍, 온유함의 미덕을 실천적 덕목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원대한 비전이나 가치를 고민하면서 정치를 이끌어나가면 좋겠다.”

―국가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대통령의 미덕은.

“대통령은 지도자로서 규범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특히 자신이 속한 정당에서든 반대당을 향해서든 권력 행사를 자제해야 한다. 정치적 경쟁자인 야당을 상대로 관용의 미덕을 대통령 스스로 보여주는 것이 민주주의의 건강한 발전과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 문 전 대통령에게는 그런 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새 정부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앞 정권의 과업이나 정책에 대해 징치(懲治·징계하여 다스림)하는 것은 더 이상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것들을 반복하지 않을 때 비로소 민주주의도 복원된다.”

―여소야대로 초기부터 어려움이 예상된다.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여소야대 정국의 돌파구는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다. 힘의 불균형이 지금과 같이 큰 적이 없었다. 정치학 용어로 그리드록(Gridlock·교착상태)이라고 한다. 대통령의 당이 의회에서 소수당이 되고 야당이 다수당이 되면 정책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일수록 상대를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 다만 민주당 역시 아주 잘하지 않으면 다가오는 지방선거나 총선에서 어려운 일을 꽤 많이 겪을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이 하나의 당으로서 계속 유지될지도 의심스럽다. 국민의힘은 전통적인 보수 관념에서 깨어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보수가 돼야 한다. 각자 정당 체제를 개선하면서 서로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협치가 가능해진다. 협치의 조건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당의 이념적 체계가 안정적으로 서야 한다.”

―윤 정부는 경제·노동·사회·복지 등에서 대대적인 방향 전환을 예고했다. 어떻게 보나.

“윤 정부는 자유경쟁이나 시장경제의 중요성을 다시 불러들이며 고전적 자유주의의 이론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 정부가 평등과 분배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부작용이 많았다는 점에서 정책 방향이 달라지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기업이 강했고 노동은 차별의 대상이 돼 왔다.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에서 나오는 사회분배와 같은 개념이 자유시장경제라는 개념과 결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사회복지를 좀 더 풀이한다면.

“우리나라의 복지는 시장경쟁의 열패자들에게 혜택을 부여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경쟁 사후(ex post) 복지’다. 과거 권위주의 시기의 산물이다. 이제는 ‘경쟁 이전(ex ante) 복지’로 변해야 한다. 교육 등이 복지의 혜택으로 먼저 부여돼야 흙수저나 은수저가 금수저와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된다.”

―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강행으로 정국이 얼어붙었고 여론 양극화도 더욱 심해졌다. 어떻게 평가하나.

“검찰 권력의 확대는 한국 민주화 이후 정치가 동반한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그래서 개혁의 필요성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민주당이) 왜 이렇게 무리를 한 건지 이해되지 않는다. 전문가 집단과 학계와 시민사회 여론을 듣는 과정을 뛰어넘고 작전하듯이 법을 추진했다. 이렇게 법안을 만드는 데 반대하지 않은 사람들은 도대체 무얼 한 건지 모르겠다. 같은 맥락에서 윤 정부에도 (민주당의 검수완박 강행 추진식으로 국정 운영을 하는 게) 굉장한 유혹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에 대해서도 여전히 논란이 있는데.

“대통령의 권력을 줄이고 내각을 정책 결정의 중심으로 두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지금까지 청와대는 집중된 대통령 권력의 상징처럼 이해됐다. 그래서 보다 더 가까이 시민에게 다가간다는 의미로 문 전 대통령 또한 집무실을 옮긴다고 공약했던 것인데 그러지 못했고, 윤 대통령은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수도를 옮기는 문제를 급하게 추진한다면 헌법재판소에 갈 수도 있겠지만, 집무실 이전은 헌법 정신에 맞게 권력의 집중도를 낮추고 시민들과 소통한다는 의지를 담은 것 아닌가.”

―윤 정부가 남북관계를 잘 가져가기 위해 필요한 일은.

“남북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하고 달라진 국제정치 체제에 맞춰 한반도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북한을 국가로서 인정하고 두 개의 국가를 공식화할 때가 됐다. 문 정부가 북한과의 이데올로기적 장벽을 허물어버렸는데, 이것은 남북관계의 질적 도약을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고 본다. 이념 때문에 남북을 가르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동안의 보수세력은 남북한의 이데올로기적 차이를 변수에서 제거하는 것을 못 했다. 윤 정부는 이걸 꼭 했으면 좋겠다.”

김유진 기자 klu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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