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선 문화부 선임기자

그는 ‘대배우’였고, 그 이전에 ‘대인’이었다. 오늘 장례 절차를 마쳐 영면에 든 강수연 씨에 대한 생각이다. 장례 기간 내내 지난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 전야제 모습이 떠올랐다. 그가 선배인 김지미 배우의 팔짱을 끼고 사람들을 헤쳐 지나가던 장면. 김지미 씨는 그해 영화제 회고전의 주인공이었으나 실제론 이방인이었다. 20세기 말에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이었던 김 씨는 영화계 보·혁 갈등의 한복판에 있다가 미국으로 떠난 후 국내와 인연을 끊었다. 그사이 영화계는 혁신을 내세웠던 쪽이 주도하게 됐다. 10여 년 만에 고국에 온 원로배우는 외로울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런 그의 옆을 ‘월드 스타’ 강수연이 지켜준 것이다.

강 씨는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을 하던 2017년엔 ‘무릎 절’ 일화를 남겼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윤정희 배우가 영화제에 오자, 그가 나와 “아, 선생님” 하며 무릎을 꿇고 인사를 한 것이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베니스,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선배들을 깍듯이 모신 것은 신구 연배의 중간에 ‘낀 세대’로서 도리를 다하겠다는 의식이 있었다고 본다. 그는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농으로 후배들을 격려하며 영화계 중추 역할을 했다. 예술인뿐만 아니라 단골식당 주인 등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가 도움을 준 미담이 사후 쏟아졌다. 군색한 집안의 실질적 가장으로 힘들게 살면서도 주변 사람들의 벗바리를 자처한 그는 진정한 대인이었다.

그가 지난 2015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은 것은, 이른바 ‘다이빙벨 사태’ 때문이었다. 영화제가 정치 싸움에 휘말리자, 창립자인 김동호 이사장과 함께 사태 수습 역할에 나섰다. 그는 “영화판에 정치가 개입해선 안 된다”는 원칙으로 영화제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런데 영화제가 정상으로 돌아온 2017년 김동호-강수연 체제는 불명예 퇴진을 했다. 영화계 급진 세력이 공격하는 차에 사무국 내부 갈등이 불거졌던 탓이다. 그는 구설이 생기자 미련 없이 직위를 던지고 떠났으나, 속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집안의 애사가 겹치며 그가 4년 동안 외부와의 접촉을 끊는 원인이 됐다는 것이 김 전 이사장의 증언이다.

강 씨의 영정 사진은 아련한 눈빛을 하고 있다. 시원시원한 성격에 숨어 있던 외로움이 스며 나온다. 대인의 품을 보였으나, 남모르게 고독을 앓는 성정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상처를 입혔던 인사들이 이번에 애도를 표하며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며 감회가 컸다. 예술과 인간을 뜨겁게 사랑한 이의 죽음 앞에서 정치, 이념을 내세운 세력 갈등은 얼마나 비루한 것인가.

그는 ‘연기 잘하는 할머니 배우’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떠났다. 그래서 더욱 기억하고 싶다. 영화 한류의 맨 앞에 그의 이름이 있음을. 1980년대 해외영화제에 갔을 때 아무도 몰라보는 박대를 당하면서도 월드 스타로 올라선 열정의 주인공이었음을.

그가 생애 마지막으로 출연한 넷플릭스 영화 ‘정이’가 연내 개봉을 위해 후반 작업 중이라고 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영화 속에 그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이 조금은 위로가 된다.
장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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