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도 웹 지도도 없는데 인기 철저히 지인·단골 예약만 받아 “돈 있어도 못가니 조바심 생겨”
“내 가게 인터넷에 올리면 가만히 안 둔다!”
서울 중구 지하철 1·4호선 서울역 15번 출구 뒷골목. 좁은 길 사이 반지하 미싱집(봉제공장)이 밀집한 가운데 간판 없는 노포가 있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이 내부에 “밥, 술, 물은 모두 쎌프여. 내 이름은 순덕이다”라는 내용의 종이 한 장을 붙이고 닭볶음탕 등을 팔고 있다. SNS에서는 ‘욕쟁이 할머니’ 가게로 유명하다. 가게 주인은 사진을 찍는 손님들에게 인터넷 등에 가게를 올리지 말라고 반말로 엄포를 놓는다. 한 맛집 블로그 게시글에는 “이러니 더 궁금해진다” “어딘지 꼭 찾아 여기서 술 한잔 하고 싶다” 등의 글이 적혀 있다. 기자는 SNS에 노출된 힌트를 조합하고, 인접 가게들에 물어 이 노포를 힘들게 찾았다. 평일 밤 테이블 5개 중 4개가 20~30대 손님으로 차 있었다.
간판도 없고 가게 주소도 공개하지 않는 식당에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가 몰리고 있다. 이들은 ‘꼭꼭 숨은’ 식당을 기어코 찾아내 음식 사진을 찍고 SNS에 방문기를 올리고 있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용산구 동빙고동 대사관들 사이의 한 양식 레스토랑도 간판 없이 영업한다.
특히 이곳은 이 가게를 다녀간 사람의 소개 예약이 있어야 입장을 허용한다. 정식 개점 이전에 지인이나 VIP 위주로만 초대해 임시 오픈하는 경우도 있다. 명품 브랜드 구찌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인 용산구 한남동의 ‘구찌 오스테리아 다 마시모 보투라’는 직접 초대한 VIP들만 지난달 가오픈 당시 방문할 수 있게 했다. 용산구 한강로동의 파인다이닝 L0도 지난 한 달 가오픈 당시 지인 위주로 4팀만 받았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온라인에서 이슈가 되면 기대감에 사람들이 ‘보물찾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며 “요즘은 소비를 통해 ‘내가 여기를 뚫었다’는 등의 스토리텔링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이어 “돈이 있어도 경험을 못 하게 하니까 조바심을 이용한 마케팅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