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운 논설위원

尹 취임일부터 정치사적 변화
청와대 개방하고 출근길 문답
연금·노동·교육 개혁 필수적

방향 옳아도 국민과 소통 필요
출퇴근 시간 등 정쟁 대비 못 해
6·1 선거 지면 ‘식물’ 각오해야


한 세대가 지난 뒤 정치사학자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과 함께 두 가지 중요한 개혁 또는 변화를 이끌어 냈다고 기술할 것이다. 첫째, 청와대 개방.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74년, 더 길게는 조선 건국 및 한양 천도 이후 628년 만에 권력의 핵심 장소를 주권자인 국민에게 돌려준 것이다. 지난 13일 오전 청와대를 다녀온 문화 전문가는 관람객들이 전국 사투리로 똑같은 말을 했다고 전했다. “구중궁궐 맞네.” 이제 대통령은 궁궐에서 나와 국민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둘째, 출퇴근 문답. 출근길에 출입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국민은 ‘소리 없는 충격’을 받고 있다. “저래도 되는 거구나. 아니 원래 저렇게 했어야 하는 거구나.” 출근길 문답은 최고 권력자의 소통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기자들은 늘,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게 됐고, 대통령은 매일 아침 어떤 질문에도 답변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기자들과의 문답은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주는 ‘시혜’가 아니라, 의무라는 것을 확인해줬다.

국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서울에서 광주로 가고 싶다면 남쪽을 향해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북쪽을 향했던 것으로 보였다. 윤석열 정부는 적어도 방향은 남쪽으로 잡은 것 같다. 친북·친중에서 벗어나 한미동맹, 한·미·일 협력, 국제사회와의 연대를 중시하는 외교·안보 정책, 정부가 아닌 기업이 성장과 발전을 이끄는 경제 정책은 옳은 방향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 16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제시한 연금·노동·교육 개혁도 꼭 필요한 정책 방향이다. 기성세대·민노총·전교조 등이 강력히 반발하겠지만, 개혁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전략가들은 새로운 사업을 도모할 때 목표-전략-전술-예산-시간표라는 틀을 짠다. 목표가 분명하면 전략·전술은 수월하게 나온다. 기업에서의 전략·전술은 홍보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정치에서는 선전·선동이 중요하다. 그런데 역대 보수 정권처럼 윤석열 정권이 약한 부분이 바로 전략·전술이다. 윤 정권의 단기적 목표는 6·1 지방선거 승리다. 그런데 국정 방향과 목표를 옳게 잡아놓고도, 유리한 정책들을 이슈화하지 못하고, 사소한 문제들로 야당에 꼬투리를 잡혀 소모적인 정쟁에 빠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출퇴근 논란이다. 한남동 관저 보수로 한 달 정도 서초동에서 출퇴근이 불가피하다. 교통 체증과 출퇴근 시간 문제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논쟁거리였다. 한 달 만이라도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면 해소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런데도 ‘교통대란’ ‘지각’ 논란을 불렀다. 윤재순 총무비서관 논란도 마찬가지다. 최단 10년 전, 최장 26년 전 일이라, 검찰 시각으로 보면 집행유예나 공소시효도 훨씬 지났기 때문에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에는 시효가 없다. 문 정부에서는 120년이 지난 동학 농민운동의 유족까지 보상하는 일이 벌어졌다. 곧바로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다짐했어야 했다. 윤 대통령이 강용석 씨와 통화했다는 논란은 보수층조차 짜증 나게 만들었다. 왜 소모적 진실 게임을 벌이나. 통화하지 않았으면 더 명확하게 밝힌 뒤 강 씨의 사과를 요구하고, 통화했다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유감을 표명했어야 했다. 여야 대표·원내대표와의 김치찌개 만찬이 무산되는 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다. 정쟁은 여당과 정부에 맡기고, 대통령실은 더 낮은 자세로 야당에 다가가야 한다.

윤 대통령은 윈스턴 처칠을 존경한다고 했다. 처칠이 총리에 취임한 날 독일은 프랑스를 침공했다. 처칠은 25만 명의 구원군을 보냈지만 독일군에 밀려 프랑스 해안에서 몰살당할 위기에 처했다. 윤 대통령 취임 직후 북한은 대남 공격용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전술핵 실험도 예고돼 있다. 처칠의 취임일은 1940년 5월 10일이었다. 덩케르크 해안에서 영·불 연합군 35만 명 구출에 성공한 날은 6월 1일 전후였다. 윤 대통령도 5월 10일 취임했고, 6월 1일 선거를 앞두고 있다. 역사의 우연인가. 덩케르크에서 영국군이 몰살당하거나 전원 포로가 됐더라면, 제2차 세계대전은 독일의 승리로 끝났을 수도 있다. 6·1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윤 정권은 식물정권이 될 것이다. 방향 잡는 데만 몰두하지 말고, 국민의 마음을 잡을 수 있도록 전략·전술까지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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