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게리가 1997년 건축한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전경.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빌바오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부상했다.
프랭크 게리가 1997년 건축한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전경.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빌바오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부상했다.


■ 최경원의 지식카페 - (17) 프랭크 게리

1989년 ‘비트라 뮤지엄’ 지으며 박스 모양 파괴…건물 부속들을 건물 바깥으로 돌출시켜 ‘초현실주의’ 느낌
1997년 스페인 빌바오시 ‘구겐하임 미술관’ 으로 또다시 ‘파격’… 전세계 관광객 몰려 쇠락하던 도시 전체가 활황


세상에서 가장 큰 디자인은 건축이다. 큰 만큼 삶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보다 삶을 담아내야 하는 책임이 크다. 이를 위해서 삶을 따라가기보다는 삶을 이끌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살펴봐야 할 건축가가 프랭크 게리다. 그는 꽤 오래전부터 멋지거나 편리한 건축이 아니라 건축이 가야 할 미래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건축가로서 주목받기 훨씬 전부터 그랬다.

건축가로서 미래가 불투명할 때 만든 재생용지 의자에는 그의 환경에 대한 걱정이 담겨 있다. 위글 의자는 호구지책으로 만든 저렴한 의자였는데, 골판지를 활용해 가격 절감과 함께 환경에 대한 배려를 했다. 골판지는 종이를 재활용한 친환경 재료이기는 하지만 형태를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재료는 아니다. 그리고 나무나 금속, 플라스틱 등에 비해 견고하지도 않다. 이런 재료로 의자를 만든다는 것은 심미성에서나 견고함에 있어서 불리하다. 그런데 프랭크 게리는 이런 불리한 재료로 뛰어난 조형성과 견고함에서도 문제가 없는 의자를 내놓아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 얇은 골판지들을 횡으로 두껍게 적층해 구조적인 문제를 제거했다. 아름다운 유기적 곡선으로만 이뤄진 의자의 형태는 지금 봐도 세련되고 아름답다. 나중에 등장할 그의 유기적인 건축의 징후가 느껴진다.

리틀비버 의자도 재생종이로 디자인했던 의자다. 프랭크 게리의 의자 중에서도 꽤 많이 알려져 있는데, 골판지들이 다소 거칠게 붙어 있어서 의자 모양이 심플하지 않고 지저분해 보인다. 하지만 골판지로 만들어진 소파 같은 의자의 구조는 유머러스해 보이고, 불규칙한 형태는 유기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거칠지만 아주 매력적이다.

이렇게 재생지 가구에서 실험됐던 형태와 재료에 대한 경험은 이후에 나타날 그의 여러 건축에 큰 자양분이 된다. 1989년에 만들어진 비트라 뮤지엄에서 그것을 살펴볼 수 있다. 이 건물에서는 이전 시대를 장악했던 기능주의 건축, 박스 모양의 시멘트 건물을 파괴하고 있다. 프랭크 게리의 이런 건축은 해체주의 건축의 흐름을 만드는데, 이것은 곧 21세기 건축의 실마리로 환원된다. 이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건물은 수직으로 반듯하게 올라간 벽과 수평으로 덮인 지붕으로 이뤄진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건물에서는 건물을 이루고 있던 모든 부분이 건물 바깥으로 나와 있다. 계단은 건물 바깥에서 휘어져 올라가고, 다락방은 건물 바깥에 붙어 있고, 창문은 건물 벽 바깥으로 돌출돼 있다. 수직으로 반듯했던 벽은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처럼 이리저리 휘어져서 돌아가고 있다.

왼쪽 사진은 체코 프라하에 있는 댄싱하우스(1996), 오른쪽은 프랑스 파리 소재 루이비통 재단 건물(2014).
왼쪽 사진은 체코 프라하에 있는 댄싱하우스(1996), 오른쪽은 프랑스 파리 소재 루이비통 재단 건물(2014).


댄싱 하우스는 앞의 건축처럼 막연히 해체한 것이 아니라 모더니즘 건축을 정확하게 부정하고 있다. 건물을 마치 운석에 맞아서 찌그러진 것처럼 디자인한 것은 그런 의도를 매우 시적으로, 암시적으로 드러냈다. 건축에서 이런 시적인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인데, 건축가의 능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런 건물이 보험회사 건물인 것은 대단히 충격적이다. 이 건물은 이후 그의 건축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잘 보여준다.

1997년 스페인 빌바오에 지어진 구겐하임 미술관은 이 세상에서 한 번도 선보인 적 없는 유형의 건축물이었다. 미국 뉴욕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의 유럽 지점인데, 지금 봐서는 생소함이 덜하지만 당시에는 거의 건물이라고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땅으로부터 수직으로 우뚝 솟아 있어야 할 건물은 땅을 타고 옆으로 길게 휘어져 있었고, 벽과 천장이 있어야 할 곳에는 번쩍거리며 휘어진 거대한 덩어리가 있을 뿐이었다.

이 건물이 들어선 빌바오는 스페인 북부에 있는 조그마한 도시다. 철광산이 있어서 산업화가 시작됐던 19세기부터 제철소와 조선소 같은 중공업 시설들이 들어서며 활황을 누렸다고 한다. 하지만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매장된 철광이 고갈돼 도시가 퇴락하고 있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근거지가 되면서 거의 몰락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이때 빌바오 정부는 유럽 지사를 모색하고 있던 미국의 구겐하임 재단에 모든 지원을 약속하고 미술관을 비롯한 공연장을 적극 유치했다. 여기에 프랭크 게리의 미술관 건물이 들어서면서 대박이 났다.

이 미술관 건물 하나로 빌바오는 순식간에 활황을 누리게 된다. 사람들이 떠나가 텅 비어가던 도시가 세계 곳곳에서 방문하는 관람객들로 인해 북적거렸고, 그만큼 경제적으로도 엄청나게 윤택해졌다.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처럼 건물 하나로 인해 도시 하나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다. 당연히 그런 기적을 일으킨 건축은 강력한 사회·경제적 성과로 세계만방에 알려졌다. 그 여파로 건축은 단지 건물이 아니라 천문학적인 사회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제적인 행사가 이뤄지는 곳에 빼어난 건축물들이 유행처럼 세워지는 것은 모두 이 구겐하임 미술관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이 건물은 건축의 역사가 됐다.

골판지로 만든 위글 의자(1972)
골판지로 만든 위글 의자(1972)
구겐하임 미술관 직후에 프랭크 게리는 월트디즈니 콘서트홀을 디자인하는데, 이 건축에서 그는 보다 더 암시적이고 파격적인 시도를 했다. 건축물이라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고, 조각적인 형상으로도 알아보기 어려운 형태로 디자인했다. 무엇을 만들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휘어진 조각들을 얼기설기 세워 건물을 만들었는데, 그래서 건물이 땅 위에 강건하게 서 있는 모습이 아니라 임시로 세워놓은 건축 재료처럼 보인다. 건물의 형태는 마치 바람맞은 돛대처럼 보이는데, 프랭크 게리는 옛날 범선의 돛대가 바람을 맞은 모양에 착안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 건축은 그런 의도를 넘어서서 건물의 단단한 구조를 깨고, 대신에 유기적으로 흐르는 형상의 건축물을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 덕분에 이 건물은 건축이 아니라 추상 조각이나 자연물 같은 존재감을 얻고 있다.

루이비통 재단 건물은 투명 소재로 만들어졌다. 번쩍이는 소재로 만들어졌던 그간 그가 디자인한 건물들에 비해서 보다 유기적 성격이 강해졌다. 형태는 기존의 해체적인 역동성을 갖기는 하지만 단단한 하나의 덩어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이전 건축처럼 비판성이 앞서 다소 무책임하게 해체하기만 한 경향에서 벗어나 유기적인 형상을 구축하고 있다. 이 건물에 이르러서는 프랭크 게리의 건축이 딱딱하거나 해체된 상태를 완전히 극복하고, 하나의 온전한 유기적 생명체가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딱딱하고 거대한 모더니즘 건축들 사이에서 자신의 건축을 폭탄처럼 투척하던 그도 이제는 온전하고 부드러운 자연 같은 건축을 내놓으면서 새로운 세계에 접어들었다. 그 영향은 우리 주변에서도 이미 느껴지고 있는데, 앞으로는 쓰나미처럼 우리 주변을 감싸지 않을까 싶다. 끊임없이 새로운 건축을 투척해온 그의 행보가 끊어지지 않고 여전하기를 바란다.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프랭크 게리

- 캐나다에서 태어나서 16세 때 로스앤젤레스로 이주

- 트럭운전사로 일하면서 LA시티칼리지를 다니다가 서던캘리포니아대로 편입해 건축을 전공

- 그 후 하버드 디자인대학원(GSD)에서 도시계획을 공부하다가 포기

- 로스앤젤레스 빅터 그루엔 설계사무소(Victor Gruen Associates)에서 잠시 근무

- 골판지 의자를 ‘이지 에지스(easy edges)’라는 이름의 시리즈로 판매. 엄청난 인기를 얻음

- 건축가로서의 명성에 금이 갈 것을 염려, 3개월 만에 생산 중단. 1987년에 ‘Experimental Edge’라는 골판지 가구 라인을 다시 발표

- 가구 외에도 그는 많은 예술가와 교류

- 1989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

- 21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점차 해체주의적인 건축에서 유기적인 질서를 가진 건축으로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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