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온다. 국내 앱 시장에서 압도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구글이 오는 6월 1일부터 자사 인앱 결제 정책을 따르지 않는 앱을 플레이스토어에서 삭제한다. 이미 지난달부터 이 정책을 따르지 않는 앱에 대한 업데이트가 금지됐다. 구글은 앱에서 연결되는 아웃링크 방식의 외부 결제 경로까지 막는 등 사실상 모든 샛길을 막은 뒤 통행세를 걷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한국은 구글을 겨냥해 세계 최초로 앱 마켓 사업자의 인앱 결제 강제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구글 갑질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까지 통과시켰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구글의 앱 삭제 조치를 위법행위로 보고 사실 조사를 거쳐 문제가 확인되면 제재에 나설 계획이다.
관심의 초점이 구글에 맞춰져 있지만, 애플 역시 구글보다 먼저 자사 iOS 앱스토어에서 30% 수준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자체 결제 방식을 도입해 시행 중이다. 한국에 이어 네덜란드, 미국 등에서도 인앱 결제 정책을 둘러싸고 각국 의회, 공정거래 당국과 구글, 애플 사이의 전쟁이 벌어졌다.
한국인의 하루 평균 모바일 앱 사용 시간은 2019년 4.1시간, 2020년 4.8시간에 이어 지난해 5시간을 돌파하며 전 세계 3위를 차지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일과의 3분의 1을 모바일 세상에서 보내는 셈이다. 커뮤니케이션은 물론 여가·비즈니스·교육·금융·건강관리 등을 포함한 거의 모든 사람의 활동이 앱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비대면 생활 방식이 일상이 되면서 모바일 앱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커졌다.
대격변 결과에 따라 앱 제공 비즈니스 모델 미래가 정해지는 것은 물론 앞으로 시장에서 플랫폼 제공자와 콘텐츠 제작자 중 어느 쪽이 우위를 점하게 될지 승부가 가려질 전망이다. 산업 전반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경우에 따라 많은 수의 플랫폼 기업이 더 이상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사업을 펼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구글은 판세 굳히기에 들어갔다. 구글과 방통위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기업들은 ‘앱 삭제’ 시점이 다가옴에 따라 인앱 결제를 도입하고 가격 인상에 나서는 등 백기를 들었다. 인앱결제강제금지법 시행 이후에도 구글이 다양한 방식의 우회로를 통해 사실상 인앱 결제 정책을 이어나가면서 방통위의 대응에도 힘이 빠졌다. 업체들도 기존 체제를 일단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는 모양새다.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웹툰 등 콘텐츠를 구매할 때 사용하는 전용 화폐의 판매 가격을 20%씩 인상했다. 웨이브와 티빙 등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계에선 이미 지난달 구글 플레이스토어를 통해 구매하는 이용권 금액을 일제히 15% 올렸다. 플로와 바이브 등 음원 플랫폼도 스트리밍 서비스 가격을 각각 14%, 16%씩 인상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양정숙(무소속) 의원에 따르면 국내 OTT와 음원 실시간재생(스트리밍) 플랫폼의 가격 인상에 따른 소비자 추가 부담은 올해 2300억 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반면 구글은 인앱 결제 정책이 도입되면 수수료율을 30%로 단순 계산했을 때 올해 국내에서만 4100억 원가량의 추가 수익을 낼 수 있다.
현재로서는 방통위가 제동을 걸고 나서더라도 구글이 방통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구글이 방통위의 처분을 미뤄달라는 집행정지 신청도 같이할 경우 대법원이 확정판결을 내리기까지 걸리는 수년 동안 인앱 결제가 표준 결제 방식으로 자리 잡고 결국 업계 생태계도 이에 맞게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앱 개발사 입장에선 당장 앱을 플레이스토어에 남겨 두기 위해 인앱 결제를 도입해야 한다.
지난 21일(현지시간) 앱스토어 수수료 부과를 놓고 게임 개발사 ‘에픽게임즈’로부터 소송을 당한 애플의 CEO 팀 쿡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연방법원의 재판 증언대에 섰다. 애플이 경쟁 앱스토어의 등장을 막으면서 앱스토어를 독점 운영하고 판매액의 30%에 달하는 과도한 수수료를 받아 챙긴다는 게임사의 주장에 팀 쿡은 이렇게 반박했다.
“애플은 1주일에 약 10만 개의 앱을 살펴보고 이 중 약 4만 개에 대해 퇴짜를 놓는다. 이런 절차를 없애면 앱스토어가 얼마나 해로운 난장판이 될 것인가. 개발자들도 결국 앱스토어가 소비자들이 와서 거래하기에 안전하고 믿을 만한 장소가 되는 것에 의존하고 있지 않은가.”
“가만히 앉아 통행세만 걷어간다”는 콘텐츠 생산자들의 볼멘소리에 애플의 CEO가 직접 나와 “도로 유지관리는 공짜로 하고 있는 줄 아느냐”고 외친 셈이다. 언뜻 구글과 애플이 위기에 몰린 것 같지만,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실은 무궁무진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미 수수료율 인하, 중소 개발사 지원정책 등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분위기 반전을 노리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각국의 규제 당국이 구글, 애플이 자체 개발한 내부 결제 시스템을 끝내 금지한다 하더라도 또 다른 형태의 대체 결제 시스템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구글과 애플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새로운 길을 내고 거기에 톨게이트만 다시 설치하면 된다”고 말했다. 결국 건물주(플랫폼 제공자)와 매장 점주(앱 제작자)가 소비자들에게 쇼핑(앱)의 편리함을 제공하는 대가로 거둬들였던 막대한 매출을 어떻게 나눠 가질 것인가의 문제다. 시장에서의 본질적인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같은 논란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서울 시내 150개 주요 상권 가게들의 매출액에서 통상임대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