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집 ‘한국 현대 사진가’ ‘화양연화’ 연작 선보인 박상훈 예술인들 초상 만들어낸 강운구 소아암 환자들 촬영한 양종훈 등 작가들의 대표작과 인터뷰 수록
강운구의 1984년 작 ‘김지하’. 시인의 43세 때 모습을 통해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로 하여금 ‘그때’를 돌아보게 한다.
“한 작가의 사진집은 많지만, 52명의 작가를 한 권의 책에서 본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들 하더군요. 주변에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보람 있습니다. 사료 가치를 알아봐 주시니까요.”
책 ‘한국 현대 사진가’를 펴낸 윤세영(66) 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사진작가 52명을 인터뷰해서 만든 산문과 함께 그들의 대표작들을 싣고 있다. 저자가 주간을 맡고 있는 전문지 ‘사진 예술’ 33주년을 기념해 나왔다.
“어쩌면 저마다 다른 꽃을 피운 것일까? 52색 크레파스 뚜껑을 연 것처럼 다채로움에 감탄하며 한편으론 이 작가들이 살아남은 이유를 깨닫는다.” 책을 보면, 윤 씨가 서문에 썼던 글에 절로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특정한 대상을 촬영해서 피사체의 본질을 드러냄과 동시에 개성적 미감을 창조해내기 위한 작가들의 고투가 여실하기 때문이다.
조세현 작, ‘천사들의 편지 - 방탄소년단’.
대부분 작가가 영역을 넘나들지만, 어느 쪽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다큐멘터리와 예술 사진으로 나뉜다. 강용석, 강운구, 김녕만, 박영숙, 양종훈, 육명심, 주명덕 등이 전자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구본창, 김아타, 민병헌, 박상훈, 한성필 등은 후자 쪽으로 넘어와서 독창성을 극대화하는 작업을 했다.
책의 앞부분에서 만나는 강용석의 작품들은 사진이 시대의 증언자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동두천 흑인거리에서 작업한 사진들은 6·25전쟁의 여진을 진하게 느끼게 한다.
예술가와 문화유산 사진으로 널리 알려진 강운구는 우연의 순간을 필연으로 포착하기 위해 수행하는 자세를 지켜왔다. 그랬기에 김기창, 천경자, 김지하의 초상과 경주 남산 등의 풍경을 불멸의 이미지로 만들어냈다.
육명심은 카메라 한 대로 예술의 고수들과 겨룬다는 자세로 문인 사진들을 찍었다. 이 땅의 이름 없는 사람들을 찍은 ‘백민 시리즈’가 그의 대표작이 된 것은 그런 자부에 바탕하고 있다.
박상훈 작, ‘화양연화’.
이 책에는 수십 년 동안 사진가들과 교우해 온 저자만이 아는 이야기가 많다. 박상훈은 광고 사진으로 이름을 얻은 후 ‘우리나라 새벽여행’을 통해 예술 사진의 새 영역을 열었다. 그는 근년에 ‘화양연화’ 연작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껴안고 있다. 그 이면에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낸 아픔이 있다고 한다. 존재의 의미를 늘 고민하는 작가 정신이 상실의 고통을 승화시켰을 것이다.
양종훈은 국내외에서 소아암, 에이즈 환자들을 촬영했는데, 그들의 삶이 나아질 수 있도록 구체적 후원에 앞장섰다.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면서 소외된 사람들을 열린 공간으로 끌어내는 작업을 꾸준히 해 왔다. 그가 근년에 전시한 ‘제주 해녀’는 20년 전부터 틈틈이 해 온 것으로, 어렸을 적 떠나온 고향 바다에 대한 소명감이 자리하고 있다.
포토저널리즘에서 일가를 이룬 김녕만은 농촌 모습과 분단 현장 사진을 통해 작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역사성이 뚜렷한 그의 작품에 따뜻한 정서가 밴 것은 이채롭다. 스스로 시골 출신임을 자랑하는 그가 휴머니즘과 해학을 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조세현은 광고, 패션 사진과 함께 유명인을 촬영하며 스스로도 유명해진 작가다. 그럴 수 있었던 것에 그의 다감함이 있다는 것이 이 책 저자의 시각이다.
대판 53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다. 전체적으로 일별한 후 마음에 쏙 들어오는 사진이 있으면 그 작가 이야기를 읽는 방법을 권한다. 다만, 페미니즘 1세대인 박영숙 편은 꼭 읽었으면 한다. 이런 선구자들이 있었기에 세상이 이만큼이나마 진화한 것이니.
책 출간과 함께하는 ‘한국현대사진가 초대전’이 전남 화순군립 천불천탑 사진문화관에서 오는 8월 31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