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인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발달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인 강화도 ‘우리마을’ 콩나물 공장을 배경으로 김성수 촌장(대한성공회 주교)이 “우리마을표 콩나물이 최고다”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청렴하기로 소문난 김 촌장이 이날 입은 양복은 1984년 서울교구장 주교 서품 때 입었던 옷이다.
지난달 24일 인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발달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인 강화도 ‘우리마을’ 콩나물 공장을 배경으로 김성수 촌장(대한성공회 주교)이 “우리마을표 콩나물이 최고다”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청렴하기로 소문난 김 촌장이 이날 입은 양복은 1984년 서울교구장 주교 서품 때 입었던 옷이다.

■ 100세 시대 名士의 건강법 - 김성수 강화도 ‘우리마을’ 촌장

성공회대 총장 은퇴후 촌장 맡아
콩나물공장·부품조립 현장 돌봐
발달장애노인 전문시설 건립 꿈

타인 건강법 따라하는 것 금물


강화 = 글·사진 박현수 기자

건강하려면 적당한 운동과 함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 ‘명사의 건강법’을 취재하면서 느낀 건강관리 공통점 중 하나다. 그런데 지난달 24일 발달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인 강화도 ‘우리마을’에서 만난 김성수(93) 촌장(대한성공회 주교)은 그런 면에서 예외다.

“운동은 거의 안 합니다. 이렇게 공기 좋은 곳에서 산책도 안 해요. 허허. 굳이 운동이라면 하루 한두 번 정도 우리마을 콩나물 공장과 부품 조립 현장, 숙소 등을 돌면서 (발달장애인)‘친구들’과 수다 떠는 게 전부입니다.”

김 촌장에게 건강관리를 위해 어떤 운동을 하는지에 대해 묻자 나온 대답이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이 건강에 좋다면서 권하는 것을 무조건 따라 하는 것은 미련한 행동”이라며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모두 걷기가 건강에 좋다고 해서 열심히 했더니 최근 무릎이 안 좋아져 지팡이를 짚고 다니게 돼 속상하다고 덧붙였다. 그 이후로는 걷기 운동을 하지 않고 있다.

잠자리에도 늦게 들고 늦잠을 잔다. 오후 5시 30분쯤 두유에 토스트로 저녁 식사 후 TV 시청을 즐기다 새벽 1시쯤 잠들어 오전 9시에 일어난다. “대한 성공회 주교 때 힘든 새벽 미사를 오랫동안 해온 터라 일찍 일어나는 게 싫어 일부러 늦잠을 잔다”고 했다. 아침 식사는 떡 한 조각과 견과류, 두유 한잔 정도로 간단하게 요기하고, 11시 30분쯤에 출근해 콩나물 공장을 둘러본 뒤 작업하는 친구들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한다.

가까이서 본 그의 얼굴 피부는 나이에 비해 탄력이 있고 건강해 보였다. 비결을 묻자 “굳이 들라면 공기 맑은 곳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에서 40년을 살았는데, 여의도에서는 문지방을 손으로 닦아보면 매일 먼지가 시커멓게 묻어나오는데 여기는 공기가 맑아서 일주일에 한 번 닦아도 거짓말같이 먼지가 안 묻어 나와요. 그러니 자연히 건강하죠. 허허.”

“잠이 너무 많아 걱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것도 건강 유지에 도움을 주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낮잠도 자주 잔다. 게다가 “동심의 순수한 친구들과 더불어 생활하다 보니 늙지 않고 건강한 것 같다”고 했다. 그에게는 발달장애인 친구들 외에 또 하나의 ‘친구’가 있다. 바로 신문이다. 다양한 매체의 신문을 꼼꼼히 정독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장애인과 관련된 기사는 스크랩해서 직원들이 공유하게 한다. 그는 “신문은 내 친구”라고 말했다.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사회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이곳에서는 콩나물 원두 자체도 100% 국산에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 키울 때 사용하는 물도 지하 150m에서 끌어 올린 암반수로 바로 먹을 수도 있을 만큼 물이 좋다고 했다. “이렇게 유기농으로 재배한 콩나물을 먹고 암반수를 식수로 마시니까 건강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 우리마을에서 생산하는 콩나물의 50% 이상을 풀무원에 납품하는데 풀무원은 자사 공장에 준해 콩나물의 품질관리를 지원하고 있다. 그 결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친환경인증을 받았다. 특히 ISO22000 식품안전경영시스템 인증을 획득했고, 2017년 농산물우수관리제도(GAP)경진대회에서 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품질이 뛰어나다고 자랑했다.

우리마을은 지난 2000년 2월 김 촌장이 성인 발달장애인에게 안정적인 일자리와 함께 재활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했다.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땅 9900㎡를 교단에 기증함에 따라 조성됐다. 2008년 성공회대 총장직을 은퇴하고 우리마을로 돌아와 촌장을 맡아 봉사하고 있다. 2019년 10월 전기 누전으로 화재가 발생해 공장이 잿더미로 변했으나 각계각층에서 성금이 답지해 지금의 공장을 새로 지었다. 발달장애인 20명이 콩나물 재배에 참여하고 있다. 또 30명은 전자부품을 조립하는 한편 버려지는 커피 찌꺼기를 활용해 연필과 화분 등 친환경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한국 종교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이 시대 큰 어른인 그에게는 반드시 이루고 싶은 큰 꿈이 하나 있다. 노화로 더 이상 일을 하기 어렵거나 정년퇴직을 하게 된 발달장애인을 위한 국내 최초 발달장애노인 전문시설 ‘시몬의 집’을 건립하는 것이다. 발달장애인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는 시설인 셈이다. 건립부지로 이미 선친에게 물려받은 마지막 땅을 기부했으며, 수년째 정책 지원을 위한 국회 입법 촉구에서부터 건립비용 모금운동까지 온 힘을 쏟고 있다.

“타인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아가기 어려운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유일한 소망은 ‘내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시몬의 집을 통해 부모님들이 이제 편안히 눈을 감아도 되겠다고 하는 믿음을 갖게 해 주는 것이 이 늙은이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간절한 꿈을 이루기 위한 열정과 성직자로서 나눔을 실천하는 욕심 없는 삶, 장애인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이 그를 더욱 건강하게 지탱해 주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보인다.
 
■ 김성수 촌장이 걸어온 길
 
1929년 ‘우리마을’이 있는 인천 강화군 길상면에서 출생한 김 촌장은 배재중고와 단국대 정외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신학과 1년 재학 후 성미가엘신학원(성공회대 전신)과 영국 셀리오크신대를 나와 사제의 길에 첫발을 내디뎠다. 1964년 성공회 사제 서품을 받은 후 발달장애 어린이를 위한 특수교육에 있어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1974년 국내 첫 발달장애인 특수학교인 성베드로학교를 설립해 초대 교장으로 일한 것을 시작으로 장애인을 위한 재활과 교육의 선구자로 평생을 살아왔다.

김 촌장은 주교 시절 젊은 사제들을 서울 상계동 판자촌과 경기 남양주시 한센인 마을 등으로 보냈다. 산동네 판자촌에 ‘나눔의집’을 열도록 격려하고, 한센인들이 닭을 치던 마석에 ‘샬롬의집’을 만들도록 독려하기도 했다. 성베드로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오갈 곳이 없게 되자, 발달장애인들이 함께 살아가는 터전을 만들기 위해 ‘우리마을’을 2000년에 건립했다. 김 촌장은 성베드로학교를 세웠을 당시 학생이었던 장애인을 비롯해 20대 초반에서 50대 후반까지 다양한 연령의 장애인 50명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성공회의 울타리를 넘어서도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2005년 장애인 재활 치료 전문병원을 건립하기 위해 ‘푸르메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을 지냈다. 또 사회경제적으로 배제돼 희망을 잃은 빈곤층 문제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공동책임으로 함께 해결하기 위해 ‘사회연대은행’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이밖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장,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한국YMCA 후원회장, 성공회대 총장(연임) 등이다.

특히, 1987년 전두환 정권이 이른바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자 당시 서울교구장이었던 그는 6월 10일 호헌철폐를 위한 성찬례를 집전해 주목을 받았다. 6.10 민주화 운동의 시발점이었다. 이러한 공로로 지금까지 대통령표창(1981), 국민훈장 모란장(2000), 아산상(2010), 인촌상(2011), 만해평화대상(2013), 다산대상(2013), 대한적십자사 박애장(2019), 우당상(2019), 호암상(2020) 등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굵직한 상을 연이어 수상했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