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문화연구자 김형식은 기존 학자들과 다른 층위에서 팬데믹을 사유한다. 그가 장착한 렌즈는 좀비다. 왜 좀비인가. 인간을 숙주로 자신을 복제하는 ‘감염병 괴물’인 좀비는 그 자체로 코로나19에 대한 은유다. 바이러스가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 있는 모호한 존재이듯, 좀비 역시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살아 있는 시체’다. “좀비는 사스이자 에이즈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저자가 좀비를 파고든 건 처음이 아니다. 2년 전 출간한 ‘좀비학’(갈무리)은 대중문화 콘텐츠 분석을 통해 좀비를 현대인의 자화상이자 억압받는 자의 상징으로 규정했다. 이번 책은 전작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되 시야를 넓혀 새 일상이 된 팬데믹 시대의 원인과 전개 양상을 살펴보고 종말의 위협을 극복할 방안을 철학적으로 모색한다. 팬데믹과 좀비는 인간 사회의 부조리를 들추며 장래의 재난에 대비하도록 일깨운다는 점에서 한몸이다.
책은 아이작 마리온의 소설 ‘웜 바디스’를 언급하며 종말 위기의 원인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다. 소설에서 소녀 줄리는 세계가 이 꼴이 된 건 좀비 탓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연재해와 전쟁, 테러가 반복되는 세상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좀비가 종말의 원인이 아닌 결과라면, 종말은 그동안 인간이 자행한 업보에 따른 ‘합당한 종착지’일 뿐이다. 줄리의 성숙한 통찰은 팬데믹 시대에도 유효하다. 우리는 코로나19를 외부에서 침범한 재난이자 세계를 망친 주범이라 여기지만, 이는 사태의 본질을 은폐하는 것이다. 감염병 출현은 고삐 풀린 자본주의와 환경 파괴로 상처 입은 자연이 행하는 복수극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맞서야 할 진정한 적은 바이러스 따위가 아니다. 출몰하는 바이러스에 아무 대비도 하지 않은 시스템이다.”
저자는 자본주의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를 고민하며 다시 좀비를 끌어들인다. 좀비는 태초부터 자본주의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괴물이다. 이는 뱀파이어와 좀비의 차이점을 고려하면 뚜렷이 드러난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이용해 이윤을 획득하듯, 뱀파이어는 인간에게 기생하면서도 대저택이나 성에 살며 인간 위에 군림한다는 점에서 ‘자본가적 괴물’이다. 반면 떠돌이 신세인 좀비는 하층민을 대변한다. 1932년 제작된 세계 최초의 좀비 영화 ‘화이트 좀비’에서 좀비들이 자본가의 지시 아래 공장에서 상품을 만드는 노동자로 묘사되는 건 우연이 아니다. 2016년 개봉해 1000만 관객을 불러 모으며 ‘K-좀비 열풍’을 이끈 영화 ‘부산행’에서도 처음으로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물은 가출 소녀였다.
이들 좀비가 초래하는 재난은 갈수록 규모와 파괴력이 커지고 있다. 좀비의 진화가 자본주의 발전과 공명하는 탓이다. “20세기 ‘식인 좀비’가 마을과 지역을 파괴하는 사회적 재난을 불렀다면, 유전자 조작 실험 등으로 태어난 21세기 ‘바이러스 좀비’는 지구적 파멸을 부른다. 자본주의 발전이 좀비가 활개 칠 환경을 마련해준 셈이다.”
종말은 이제 가상의 좀비 영화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현실의 팬데믹이 2년 넘게 이어지며 종말이 누구나 선명히 감각할 수 있는 실질적 공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 시카고대 과학자들이 1947년 인류에 경종을 울리고자 만든 종말 시계는 2022년 현재 23시 58분 20초를 가리키고 있다. 종말 시계는 자정을 종말로 가정하고, 자정까지 남은 시간을 통해 종말이 얼마나 임박했는가를 수치로 보여준다. 종말까지 불과 100초만을 남겨둔 이 시간은 시계가 만들어진 이래 가장 종말에 근접한 상태다. 역사상 두 번째로 종말에 가까웠던 해는 1953년. 미국과 소련의 군비경쟁 속에 3차 세계대전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극에 달했던 당시조차 종말 시계는 지금보다 20초 멀리 떨어진 23시 58분이었다.
‘23시 58분 20초’는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품은 시간이다. 종말이 가깝다는 건 종말을 지연시키기 위해 노력할 여지가 남았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말처럼 종말은 “인류에게 최고선의 실현을 추동하는 실천적 계기이자 도덕적 동기”가 될 수 있다. 저자는 ‘세상이 다 그렇지…’라는 패배주의와 선 긋고 불가능을 꿈꾸는 혁명적 사유가 필요하다고 외친다. 불가능이라는 ‘가능성’에 열려 있지 않은 삶은 좀비의 삶과 다를 바 없으며, 과거로부터 현재를 해방하고 예속으로부터 탈주할 때 비로소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에게 불가능은 불평등과 양극화가 완화된, 모두가 신이 허락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는 자본주의 너머의 세상이다.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태도는 코로나19가 물러가면 예전 같은 일상을 누리겠다는 ‘복고주의적 열망’이다. 팬데믹 초창기 지하철 역사 곳곳엔 ‘일상을 있게 하는 영웅, 당신이 고맙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일상을 지키는 의료진과 소방관을 영웅으로 칭송하는 공익광고였다. 하지만 저자는 ‘일상 수호’보다 중요한 건 ‘일상을 끝장낼 용기’라고 말한다. 감염병이 잦아든 이후에도 세계가 변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재난의 습격은 필연이라는 것이다. ‘좀비, 해방의 괴물’은 ‘좀비학’과 쌍을 이루며 문화 아이콘에서 시대를 포착하는 눈, 그리고 망치로 내려치듯 힘찬 문체를 겸비한 저자를 주목하게 한다. 336쪽, 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