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윤호중·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비상대책위원들이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6·1 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6·1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책임론’과 당권 다툼으로 안갯속에 빠져들었다. 특히 일각에서는 선거 패배의 책임이 있는 이재명 전 민주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차기 당 대표 선거에 직행할 경우 친명(친이재명)계와 반명(반이재명)계 간 내홍 격화로 분당 사태까지 갈 수 있다는 위기론도 나온다. 2015년 12월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당명을 바꾼 더불어민주당이 창당 6년 반 만에 최대 위기를 맞은 셈이다.
5일 정치권에서는 “100년 정당은 이상적인 구호에 불과하다”며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은 물론, 민주당도 수많은 이합집산과 분당의 역사를 통해 오늘날까지 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이재명 의원이 당 대표가 된다면 분당할 가능성이 크다”며 “분당 되면 정계개편의 동력이 될 수 있다. 민주당 내 갈등이 심화해 당 변화와 쇄신 부족으로 총선을 앞두고 정계개편 발화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위기를 맞은 민주당, 제1야당의 변천사를 살펴봤다.
◇DJ로 시작된 민주당의 역사=오늘날 민주당의 실질적 뿌리는 1987년 탄생한 평화민주당(평민당)이다. 평화민주당은 통일민주당 동교동계 인사들이 같은 당 대통령 후보였던 YS(김영삼)와의 후보 단일화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탈당해 그해 11월 DJ(김대중)를 대선 후보로 추대하면서 창당했다. DJ는 한 달 뒤 대선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민정당), YS(통일민주당)에 이어 3위에 머물렀다. 1990년에는 통일민주당과 JP(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여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과 합당해 민주자유당(민자당)을 만들었다. 이에 평민당을 이끌던 DJ는 재야운동가 등을 영입해 1991년 4월 ‘신민주연합당’으로 야권을 재편성했고, 3당 합당에 반대해 통일민주당을 나온 인사들이 만든 이른바 ‘꼬마 민주당’과 그해 9월 합당하면서 ‘민주당’을 탄생시켰다.
◇손잡은 DJ-노무현=민주당은 1992년 DJ를 대선 후보로 내세웠지만 YS에게 패했다. 낙선한 DJ는 ‘정계 은퇴’를 선언했고 민주당은 이기택 체제에 돌입했다. 이기택 대표는 지방선거에서 동교동계와 충돌을 감수하면서까지 공천한 장경우 경기지사 후보가 패하면서 불화가 심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동교동계에서 SOS를 받은 DJ는 정계에 복귀해 1995년 9월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이때 동교동계 인사들이 집단 탈당해 새정치국민회의로 넘어가면서 민주당은 제2야당으로 추락했다. 소수가 된 이기택 대표와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잔류 인사들은 그해 12월 민주당을 재야인사로 이뤄진 개혁신당과 통합해 ‘통합민주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이후 통합민주당 인사들은 분열해 일부는 1997년 민자당이 이름을 바꾼 신한국당과 합작해 ‘한나라당’을 만들었고, 노 전 대통령 일부는 새정치국민회의에 들어가 DJ의 손을 잡았다.
◇대선 승리 DJ와 탈당, ‘노풍(盧風)’=1997년 대선에서 DJ는 JP와의 공조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새정치국민회의로 16대 총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판단한 DJ는 재야 세력 일부, 학생운동 주도 세력과 함께 2000년 1월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했다. 2002년 국민경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새천년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됐다. 국민경선에서 살아남은 노 전 대통령은 단숨에 지지율이 급상승하며 ‘노풍’의 주인공이 됐다. 경선이 끝난 4월 말 지지율은 당시 역대 대통령 후보 가운데 사상 최고치인 60%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DJ는 각종 게이트 의혹과 아들들의 비리 연루로 탈당을 선언했고, 그해 12월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개혁 내건 열린민주당=2003년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 탈당파, 유시민계, 시민사회세력 등이 손잡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창당을 주도한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과 한나라당 내 개혁파인 이우재, 이부영, 김부겸, 안영근, 김영춘 등이 열린우리당에 동참했다. 열린우리당은 전국 정당을 표방하며 지역주의 타파를 외쳤다. 동시에 깨끗한 정치 실현을 위해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원래 새천년민주당을 통해 정치 혁신에 나설 예정이었지만, 당내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자 새천년민주당을 떠나 열린우리당에 합류했다. 그 후 ‘구민주계’로 구성된 새천년민주당은 한순간에 야당이 됐다. 새천년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이 2004년 총선 직전 열린우리당을 지지한 것을 두고 ‘선거 중립 위반’이라며 당시 한나라당과 함께 대통령 탄핵에 참여했다. 그러나 오히려 국민의 반감을 산 새천년민주당은 2004년 총선에서 9석짜리 ‘미니 정당’이 됐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이상 정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좌익으로부터는 친미주의, 우익으로부터 종북이란 비판을 받았다. 2004년 재보선에서 민심 이반으로 참패해 과반 의석이 무너진 열린우리당은 빠르게 쇠락했고, 2006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2005년 ‘새천년’을 뺀 민주당으로 개명)에 패하면서 당세가 기울었다.
◇더불어민주당의 뿌리 새정치민주연합=야권의 구심점이 약해진 상황에서 중도·개혁을 표방하는 세력들이 대통합이란 명분으로 2007년 8월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했다. 열린우리당 탈당파, 민주당 탈당파,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를 주축으로 한 한나라당 탈당파, 시민사회세력이 주축이 됐다. 뒤이어 열린우리당과 합당하면서 제1야당이 된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정동영 전 의원을 대선 후보로 내세웠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패했다. 야당이 된 대통합민주신당은 민주당을 흡수해 2008년 ‘통합민주당’으로 합당했다. 이후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후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갔다. 민주당은 미국산 쇠고기 파문과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으로 한나라당에 등을 돌린 민심을 안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 완승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시민통합당(문재인·이해찬 세력)과 시민단체, 한국노총과 손잡고 ‘민주통합당’을 만들었다. 민주통합당은 2012년 총선에서 박근혜 대표가 이끈 새누리당에 고배를 마셨다. 선거 패배로 ‘친노계’가 다시 급부상하며 문재인 대표를 대선 후보로 선출했지만 정권 교체에는 실패했다. 대선에서 패한 민주통합당은 다시 당명을 민주당으로 바꾸고 이후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연합과 손잡아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했다. 이후 2014년 7·30 재보궐선거 참패와 지도부 총사퇴 등으로 어려움을 겪은 새정치민주연합은 2015년 12월 당명을 더불어민주당으로 바꾸고 2017년 문재인 대선 후보를 청와대로 입성시켰다. 이후 ‘180석 정당’으로 몸집을 키웠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민주당은 숱한 어려움과 역경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다”며 “100년 정당은 이상에 불과하다지만, 오늘날의 위기를 과거 사례를 통해 극복하는 지혜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