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초여름 제주 서귀포시 남원 바다를 배경으로 그림처럼 펼쳐진 올레길 5코스 큰엉 앞에서 B 군은 “제빵사가 되는 게 꿈”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올레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소년들의 마음은 열렸다. 15살 때부터 제과제빵을 배운 그는 올해 정부와 보호관찰소에서 지원하는 제과제빵 수업을 듣는다며 들뜬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제주 출신인 그는 올레길을 걷는 게 처음이라고 했다. 처음엔 ‘더운데, 4시간을 걸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티셔츠 군데군데 땀 얼룩이 생겼을 때쯤 B 군은 “자해할 때마다 엄마가 항상 응급실에 함께 왔다”며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어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올 초 소년원 모범학생으로 조기 석방됐다.
이날 열린 행사의 명칭은 ‘제1회 손 심엉 올레!’다. ‘심엉’은 ‘잡고’라는 뜻의 제주어로, ‘소년범의 손을 잡고 올레길을 함께 걷는다’는 게 행사의 취지다. 소년 범죄에 대해 형사처벌만을 반복해서는 이들의 재범을 막을 수 없다는 마음이 모여 행사가 성사됐다.
올레길을 걸은 지 1시간 30분이 지나자 종정포구 태웃개가 나왔다. 소년 3명은 에메랄드빛 바다 앞에 이끌리듯 멈춰 섰다. 이름 모를 작은 물고기가 보일 정도로 바다는 투명했다. 뜨거운 햇볕 아래 지친 소년들은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에게 쭈뼛거리며 물에 들어가도 되냐고 물었다. 서 이사장은 “얼른 들어가라”고 외쳤다. 한동안 물에서 헤엄치다 나온 소년들은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소년범과 함께 걷기 위해 온 검사와 보호관찰소 직원 등 어른들을 서서히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본인을 ‘물수제비 고수’라 자평하던 C 군은 한참 떨어진 바다를 향해 돌을 던졌고, 3차례 만에 성공하기도 했다. C 군은 “오랜만에 걸어서 좋았지만 힘들기도 했다”며 “그 거리를 포기하지 않고 걸어온 게 신기하다”고 했다.
올 초 타지에서 제주로 내려온 A 군은 “오늘도 파도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정말 편해진다”고 말했다. 타지 보육원에서 자랐던 그는 제주로 내려와 일하면서 받는 월급을 어머니께 전부 드린다고 했다. A군은 이어 “일도 병행해야 해서 올해는 시험 삼아 수능을 보고, 내년에 한 번 더 쳐서 꼭 교대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를 마련한 이원석 대검찰청 차장검사(검찰총장 직무대리)는 “우리가 먼저 이들의 손을 잡고 걸으면, 이들은 분명 건강한 사회 일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지검과 제주보호관찰소는 이 같은 행사를 지속하며 선도대상 소년범을 선정하고 이행 결과를 관찰할 예정이다. 문영권 제주지검 인권보호관은 “어린 싱그러운 학생들과 같이 걸으니 되레 어른들이 좋았다”며 “아이들의 조잘대는 웃음소리를 또 듣고 싶다”고 말했다. 오종훈 제주보호관찰소 계장은 “아이들이 올레길을 걷는 게 처음이라 이 자체를 재밌어했다”면서도 “앞으로는 일대일 멘토가 지정돼 걸으면 더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