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랜드스탠딩 | 저스틴 토시·브랜던 웜키 지음 | 김미덕 옮김 | 오월의봄
타인 눈길 끌려는 인정욕구
정의·평화 내세워 자기과시
말 보태기·팩트날조 다반사
SNS 시대에 급속도로 확산
진영논리 판치는 한국사회
곰곰이 씹어봐야 할 과제로
심리학자들은 자신을 실제보다 낫다고 보는 태도를 ‘자기고양(self-enhancement)’이라고 부른다. 흥미로운 것은 자기고양이 ‘지성’이나 ‘지혜’ 같은 인지적 측면보다 도덕성 부분에서 한층 강렬하게 발현된다는 사실이다. 대다수 사람은 타인보다 자신이 더 많은 선행을 실천하고, 더 적은 비행을 저지른다고 믿는다. 한 연구에 따르면 참여자의 83%는 ‘암 연구 기부를 위한 꽃을 살 ’이라고 답한 반면, ‘다른 학우도 꽃을 살 것’이라고 말한 참여자는 56%에 불과했다. 수감자를 대상으로 한 다른 연구에선 폭력적 범죄자조차 법 준수 항목을 제외한 도덕적·친사회적 항목에서 자신이 평균적인 사람보다 더 낫다고 평가했다. “도덕적 우월성은 인간이 보편적으로 지닌 환상이다. 우리는 타인에겐 잘 주지 않는 도덕적 지위에 자신을 올려둔다.”
저자들은 도덕적 허세가 보편적 욕망이기에 공적 담론에 나타나는 그랜드스탠딩 역시 특정 정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랜드스탠딩을 좌파의 ‘무기’ 혹은 ‘고질병’으로 보는 인식은 그릇된 통념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진영을 넘나드는 그랜드스탠딩은 어제오늘의 현상이 아니지만, 인터넷의 부상과 함께 널리 확산한 건 분명하다. 인터넷은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줄 청중을 찾기가 어느 곳보다 쉬운 장소이기 때문이다. SNS에서 그랜드스탠딩은 같은 편 의견에 ‘말 보태기’, 극단으로 ‘치닫기’ ‘팩트 날조’ 등과 함께 강화·증폭된다.
그랜드스탠딩이 만연하면 ‘집단 간 양극화’는 물론 ‘집단 내 양극화’도 심해진다. ‘누가 제일 상대편을 경멸하는가’를 놓고 펼쳐지는 집단 내 경쟁에서 가장 강력한 도덕적 언사를 구사하는 자가 지배력을 얻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진실 추구’보다 ‘도덕 경쟁’이 우선인 그랜드스탠딩은 상대편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해서도 잘못된 믿음을 갖게 한다. 한 조사에서 미국 민주당원은 공화당원의 44%가 1년에 25만 달러 이상을 번다고 예측한 반면, 공화당원들 스스로는 33%가 그 정도 소득을 올릴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실제로 공화당원 가운데 25만 달러 이상 고소득자는 2%에 불과했다.
또 ‘민주당원 중 성 소수자가 차지하는 비율’에 대한 질문에 공화당원과 민주당원은 각각 38%, 29%라고 답했으나 실제 수치는 6%였다. 상대가 씌운 프레임에 맞서 공방을 벌이다 자기 집단에 대한 인식조차 왜곡된 것이다.
책은 그랜드스탠딩으로 인한 양극화로 타협이 어려워지는 것보다 심각한 문제는 ‘도덕 담론’에 대한 대중의 회의와 환멸이 깊어지는 것이라고 꼬집는다. ‘정의’와 ‘인권’의 개념은 하나일진대 각자 진영이 서로 다른 정의와 인권을 부르짖으면서 건전한 상식을 지닌 중도파를 공론장에서 밀어낸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도덕 경쟁이 유발하는 ‘분노 피로’ 탓에 적절한 시점에 사회의 위험을 알려야 할 분노의 효용이 옅어지고 있다는 점 역시 ‘그랜드스탠딩 사회’가 치러야 할 뼈아픈 대가다.
저자들은 그랜드스탠딩을 완전히 없애기는 불가능하다고 전제하면서도 SNS 사용 제한, 과격한 ‘그랜드스탠더’에 대한 언팔로 같은 일상 속 ‘실행 계획’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좋은 것은 그 자체로 ‘선(善)’이 될 수 없다. 좋은 의도로 좋은 결과를 낳을 때만 의미를 지닌다. 저자들의 일침처럼 모든 좋은 말이 칭송받을 만한 것이 아니라면, 어떤 좋은 말은 사라져야 세상이 좋아진다. 332쪽, 1만8500원.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