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희 작가

홈피 저장한 사진·메모 사라져
다운로드 안 해 너무나 아쉬워

한 개인의 기록은 너무나 소중
인류사 연결하는 고리 역할도

우리 모두 역사 기록하는 사관
개인적 일상 잘 간수해야겠다


나의 과거가 다시 돌아왔다. 영영 사라진 줄로 알았던 지난 시간이 짜잔 하고 마술처럼 되돌아온 것이다. 얼마 전 다시 문을 연 토종 미니 홈피 이야기다. 나는 비공개로 그곳에 일기를 쓰듯 그날 일어났던 일과 사건들을 사진과 메모로 남겨 차곡차곡 저장해 놓았었다. 궂은일이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정직하게 그곳에 일상의 풍경들을 모아두었고, 그곳은 그렇게 내 기억의 수장고(收藏庫)가 되었다.

그곳에 비밀스럽게, 그리고 켜켜이 쌓여 있는 과거의 기록들은 내 삶의 무늬들로 온전히 나를 대변했다. 한 번씩 과거의 사진들을 볼 때마다 감회가 새삼스러웠다. 어떤 날은 과연 내게 그런 날이 있었던가 싶게 생경했고, 또 어떤 날은 스스로가 부끄럽고 민망했다. 어디 그뿐일까. 과거의 그 기록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시간의 흐름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해가 바뀔수록 주름의 깊이도 달랐고, 눈빛도 달랐고, 표정도 달랐고, 또 바라보고 있는 것도 달랐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 시간의 간극(間隙)만큼 객관적인 거리가 생기면서 나는 나를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점도 좋았다. 그렇게 과거의 날들은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고, 오늘의 나를 살피게 했다. 일종의 거울인 셈이었다.

전업작가로만 살 수 없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만 했던 나는 그만큼 일도 많았다. 두세 가지 일을 한 번에 할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컴퓨터 키보드에서 한글/영문/한자 모드로 전환하듯 태도와 사고 전환을 해야만 했다. 창의성이란 무위와 게으름에서 더 발현되는 법인데 잠시의 휴식도 없이 일만 했으니, 그 깊이는 말할 것도 없고 가끔 실수하거나 미진한 때도 있었다. 어쨌든 나는 매일 일을 할 때마다 사진을 찍었고, 메모했고, 그 기록들을 날짜별로 또는 항목별로 구분해 그림일기 쓰듯 저장해 놓았었다. 또, 어디 여행이라도 가면 소설을 쓸 때 묘사에 도움이 될지 몰라 풍경 구석구석을 찍어 자료로 쟁여 놓았었다.

나의 과거가 고스란히 들어 있는 미니 홈피 회사가 재정 악화를 이기지 못하고 사라진다는 이야기들이 풍문처럼 돌 때 다운로드를 받아두었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워낙 방대해 엄두를 내지 못한 데다, 또 거기에 집중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은 언젠가는 사라지게 마련이라 이대로 잊혀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실 그 이유가 더 컸다. 내가 이 세상에 없을 때 남겨진 그 기록들은 유령처럼 떠돌 텐데, 그게 마뜩잖았다. 그러니 평소에도 나는 지나온 과거와 흔적들은 스스로 지우고 정갈하게 떠나자는 생각을 해왔다. 그런 참에 굳이 수고스럽게 내가 하지 않아도 앱 자체가 사라진다니, 어쩌면 기회라고 생각했다. 깨끗하게 나를 정리할 수 기회. 막상 내 손으로 지우려고 하면 주저하고 망설일 게 뻔했으므로. 그렇게 나는 과거의 순간들을 방치했고, 내 과거의 기록들은 사라졌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나는 후회하고 자책했다. 일을 하다 보면 증거나 사실적 증명 또는 현장 사진이 필요할 때도 있었는데, 남아 있는 게 하나도 없으니 엽렵하게 그 일들을 해낼 수가 없었다. 기억이라는 건 불안정하고 자기중심적이어서 임의대로 왜곡을 일으키기 쉬워 조심스러웠다. 소중하고 꼭 필요한 사진 파일이라도 다운로드해 두었더라면 좋았으련만 그마저도 손 놓고 있었던 나는 그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그건 치기(稚氣)였고 오만이었다.

한데, 그 과거의 기록들이 ‘짜잔’ 마법처럼 돌아왔으니, 어찌 반갑고 고맙지 않을 수 있을까. 야호, 소리까지 지르고 싶었다. 그런데 돌아온 기록들을 살펴보는데 뭔가 달랐다. 항목별로 차곡차곡 쟁여져 있던 기록들은 뒤섞였고, 사이즈와 해상도는 물론 중요한 사진들도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그 많던 동영상들, 그리고 사진과 메모들…. 항목을 따로 만들어 보관해 두었던 가족들의 사진도 보이지 않았다. 항목은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폴더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다른 항목의 폴더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쉽게도 내 과거는 온전히 복원되지 못했고, 나는 여전히 과거의 시간이 결락(缺落)된 불완전한 존재가 되었다. 더불어, 지나온 행적과 흔적들은 어디에서도 증명될 수 없는 이야기 속 세상이 되었고, 그렇게 사라진 과거로 인해 나는 현실에 굳건히 뿌리 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느낌이다.

기실 따지고 보면, 내 과거의 시간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 아니다. 무덤 속에서 발굴된 범부의 애틋한 편지가 한 시대의 단면을 밝혀 주었듯이 인류사는 그런 개인의 메모나 편지 또는 낙서들로 인해 비어 있던 한 부분을 채우거나 풀지 못했던 수수께끼의 답을 얻기도 한다. 나아가 한 개인의 기록이 국가 간 분쟁을 해결해 줄 열쇠가 되기도 하고, 인류사의 한 고리를 연결해 줄 또 다른 고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개인의 역사는 한 존재가 갖는 생애 이력을 넘어 공동체가 갖는 역사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내 일상의 일들 속에도 공공성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 사관(史官)인 셈인데 그걸 간과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다시, 잘 간수해야겠다. 오늘 일어나는 일들은 그대로 시간의 층위에 내려앉아 새로운 역사로 굳어지므로.

부디 나쁜 일보다는 좋은 일이 더 많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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