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속 미술’은 영화와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뉴스 등에 비치는 미술 작품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첫 회에서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등장한 정은혜(32) 배우 화가와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사랑하는 김현우(27) ‘픽셀 작가’가 주인공입니다. 두 주인공은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김 작가가 2017년에, 정 작가는 2019년에 선정됐더군요. 다운증후군으로 인한 발달장애가 있으며 그것이 미술 작품에서 자기만의 개성과 창조력으로 나타난다는 점도 같습니다.
▲‘니 얼굴’ 작가의 개성은 사람을 웃게 한다
정 작가는 tvN 토일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영희 역으로 활약하며 대중에게 이름을 크게 알렸습니다. 드라마 속에서처럼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으며 무려 4000 여 명의 얼굴 그림을 그려준 화가라는 사실이 새삼 화제가 됐지요.
장 작가의 일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니 얼굴’이 이달 23일에 개봉합니다. 그가 경기 양평의 장터인 문호리리버마켓에서 그림을 그려주고 판매하며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담은 작품이라고 합니다.
정 작가의 쾌활하면서 엉뚱한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한다는 것이 영화 제작사 전언입니다. 엄마의 잔소리를 들어도 능구렁이처럼 웃어넘기고, 자신감과 유머가 넘치는 언행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며, 떼춤판에서 강렬한 춤솜씨를 선보이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은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을 통해 첫선을 보여 호평을 받았습니다. 제18회 서울환경영화제 한국환경영화부문 우수상을 받기도 했지요.
제작사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니, ‘감독: 서동일ㅣ출연: 정은혜, 장차현실’이라고 돼 있습니다. 정 작가의 어머니인 장차현실은 만화를 그리고 글을 쓰는 작가입니다. 여러 잡지와 신문에 연재하는 동안 마니아 독자가 많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이가 일상인으로서, 또 작가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다른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활동을 해 왔습니다.
서동일 감독은 정 작가의 아버지입니다. 장차현실 작가는 재혼을 통해 서 감독과 가정을 꾸렸다고 합니다. 자신의 이름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을 함께 쓸 정도로 사회 개혁에 관심이 깊은 장차현실 작가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영상으로 드러내 온 서 감독이 평생의 동반자가 된 것은 아름다운 숙명이라고 할 것입니다. 서 감독은 장차현실 작가와 결혼을 하며 이미 청소년이었던 은혜의 아버지가 됐다고 합니다. 그가 자신의 영화에 큰딸 은혜와 아내 이야기를 담은 것을 보면 그 사랑의 크기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는 정 작가가 그린 얼굴 그림들이 나옵니다. 다큐 영화 ‘니 얼굴’에도 당연히 등장합니다. 이 그림들은 실제 인물과 흡사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인물마다 얼굴의 고유 특징이 잘 살아 있습니다. 똑 닮게만 그린다면 사진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개성과 창의가 담겨 있어야 예술이지요. 꽃과 같은 식물, 강아지 등의 동물 그림에도 정 작가만의 독특한 감각이 담겨 있습니다. 그가 최근 채색화에도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니 그 세계가 어떻게 확장해갈지 기대가 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단독 환담을 마친 후 벽에 걸린 김현우 작가의 ‘퍼시잭슨 수학드로잉’을 보며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집무실을 찾은 김건희 여사와 함께 포즈를 취한 사진이 지난달 29일 공개됐다. 윤 대통령 부부 뒤의 벽면에 김현우 작가의 그림이 보인다. 페이스북 캡처.
김현우 작가가 2018년에 그린 그림 ‘ 바다모래 수학드로잉’.
▲픽셀 킴의 그림은 무한히 확장한다
김현우 작가의 그림은 윤석열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보여주면서 화제가 됐습니다.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 김 작가의 그림 ‘퍼시 잭슨 수학 드로잉’이 걸려 있다는 것이 알려졌지요. 이 그림은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대통령 집무실을 찾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다시 뉴스로 등장했습니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함께 찍은 사진의 뒤편으로 그림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김 작가의 그림이 윤 대통령 자택에 걸려 있는 것이 TV 예능 프로그램 ‘집사부일체’를 통해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던 작년 9월이었지요. 윤 대통령은 그보다 4개월 전에 김 작가의 전시회에 가서 그림을 구입했습니다. 정치에 나설지를 고민하던 검찰총장 시절이었습니다. 검찰 서기관인 김 작가의 아버지가 요청해서 전시회에 갔다고 합니다. 김 작가의 아버지는 윤 당시 총장과 함께 일한 인연은 없지만, 아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서 어렵게 청을 했다는군요.
윤 대통령은 역시 총장 때인 2019년에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제6회 장애인창작아트페어(AAF)’에 참석한 적도 있습니다. 부인 김건희 여사가 예술감독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김 여사가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습니다. 김 여사는 “저는 오늘 행사를 ‘장애인창작아트페어’가 아니라 ‘거장 중의 거장 아트페어’라고 명명하고 싶다”면서 “장애인들이 만든 작품 속에는 먼저 깨달은 자의 성찰과 사연이 들어 있기에 작품 하나하나를 그냥 지나칠 수 없고, 더 기쁘고 진실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합니다. 모네가 말년에 실명을 했음에도 걸작을 남겼다는 일화도 전하지요.
정치인이 장애인 예술가에게 관심을 두는 것은 대부분 자신의 자비심을 과시하기 위한 것입니다. 정치 선전의 액세서리로 활용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지요.
윤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으면 합니다. 장애인 문제에 지속적 관심을 두기 위해 김 작가의 그림을 집무실에 걸어뒀다고 했으니 믿어보고 싶습니다.
10여 차례 전시를 통해 나타난 것처럼, 김 작가는 자신이 경험하고 상상하는 세계를 픽셀로 조형화한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예명이 ‘픽셀 킴’인 까닭입니다.
그의 어머니 김성원 씨에 따르면, 김 작가는 초등생 시절 종합장에 수없이 많은 네모를 그렸고 네모 안에는 친구들 이름이나 번호를 채워 넣었다고 합니다. 기록과 그림은 고교에 가서도 계속됐습니다. 수학 시간에는 수학 공식을, 음악 시간에는 음표를, 생물 시간에는 미토콘드리아를 그리며 노트에 빼곡하게 기록했지요. 이런 수백 권의 노트가 그의 상상력과 더해져 캔버스로 옮겨진 것이지요.
김 작가의 그림을 보면, 감정과 기억을 형상으로 표현하는 재능이 뛰어남을 알 수 있습니다. 선명하고 밝은 색감의 바탕 위에 임의로 쓴 수학 공식 혹은 음표를 통해 자신만의 세상을 그려내는 게 특징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반복해서 그리면서 자신의 세계를 개성적 감각으로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빼어난 작품을 만들어내는 발달장애인 작가들에게서 보이는 장점입니다.
▲‘같음’을 강조하지 말고 ‘다름’을 인정하라
발달장애는 그 나이에 맞는 언어, 인지, 운동, 사회성 등의 발달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만, 그림으로 하는 비언어적 소통은 잘 할 수 있다는 것이 의학계 정설입니다. 정은혜, 김현우 두 작가는 그 정설의 뚜렷한 주인공이지요. 그런데 두 사람은 글도 쓰고 있으니 언어 표현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쓰면서 걱정되는 것은 다른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의 한 관계자는 “나는 왜 저런 부모들처럼 내 아이를 성장시키지 못했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그 걱정에 크게 공감합니다. 다만 두 작가의 부모가 경제적 능력으로 자식을 뒷받침한 것이 아니고 애정과 헌신, 그리고 여느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눈물로 키웠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덧붙여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장애인이 사회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려면 가족의 부양으로만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국가 공동체가 함께 지원하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지요.
장애인 가족과 함께 사는 사회적 기업가 백정연 씨는 책 ‘장애인과 함께 하는 법’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모두가 행복한 사회는 다수가 행복한 사회보다 소수가 행복한 사회에서 더 빨리 실현된다.”
(이 글에서 ‘장애를 극복한 작가’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장애를 겪으며 동행해야 하는 분들에게 그 극복을 강요하는 시각이 그 표현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우대한답시고 ‘장애우’라고 칭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합니다. 장애우는 장애인끼리의 표현입니다. 비장애인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같음’을 강조하며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아닐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