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큰데 덩치도 있다. 그런 사람은, 특히 남자일 경우에는 더 잘 알 것이다. 그에게 ‘농구’는 숙명이다. 기자의 키는 192cm다. 중학교 3학년 때 이미 185cm를 넘었다. 학창시절, 나는 “농구 좀 해보라”는 제안을 수없이 들었다. 어느 정도는 들어볼만한 말이었다. 아마추어 단계에서 피지컬(신체 사이즈)은 구력을 앞선다. 그렇게 10대, 20대 시절을 농구에 빠져 지냈다. 취미도 농구 특기도 농구였던 나는, 그러나 30대 중반에 접어들고 발목과 무릎을 다치는 날이 많아지면서 실전 대신 ‘농구 경기 시청’과 ‘이론’, ‘농구 기사 읽기’ 등을 주특기로 택하기로 했다. 그렇게 농구 잡지를 탐독하고 감독이 될 것도 아니면서 농구 전술을 고민하는 ‘방구석 전문가’로 살아가고 있다. 대한민국 ‘최장신’ 기자의 NBA 이야기를 시작한다.

르브론 제임스(사진)는 현역 농구 선수 중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을 쌓아올린 선수로 꼽힌다. 필자도 이른바 ‘르브론 era’의 키즈다. 2006년 그가 한국에 와서 우리나라 국가대표팀과 경기했을때 보여줬던 퍼포먼스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충격에 그의 팬이 되고 난 뒤 10년을 넘게 농구화도 르브론, 농구공도 르브론 브랜드만 사용했다. 그는 필자에게 영웅이었다. 그의 ‘ More than athelte’(스포츠선수 그 이상의 선수) 구호도 와 닿았다. 그의 기부행위, 사회참여 발언 등이 모두 멋져보였다.

그랬던 르브론은 시간이 갈수록 유독 ‘농구 외적’인 면에서 하자를 보였다. 콘서트에 가려고 고속도로 역주행을 했다든지, 옷을 일부러 도움소년이 못 잡게 벗어던지는 모습이 찍혔다든지, 우승에 실패했다고 비난하는 팬들에게 “어차피 당신들은 곧 현실 세계(Real World)로 돌아가야 할 것”이라고 한다든지 하는 논란들이 대표적이다. 개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논란은 바로 홍콩사태다. 많은 팬들이 홍콩사태 때 르브론이 보인 내로남불에 질려 그를 떠났다.

농구선수가 농구만 잘하면 되지, 농구 바깥 일들이 다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르브론 입장에서는 미디어가 지나치게 발달한 지금이 억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일개 농구 선수를 넘어 시대의 ‘아이콘’이 된 그에게 농구 외적인 부분 역시 평가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르브론이 애초에 왜‘ More than athelte’을 외쳤을까. 본인도 ‘농구 외적’인 모습이 자신의 평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르브론과 홍콩사태’는 스포츠스타와 스포츠맨쉽이 경기장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 문제들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해야 하고 적용돼야하는 지 시사점을 던져주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영웅이었던 그를 하나의 농구선수로 떠나 보내야 했던, 르브론의 홍콩사태 대처에 대해 알아본다.

1. NBA 한 구단 단장이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트윗을 올렸다. 중국은 거칠게 항의해왔다.

지난 2019년 10월 4일 휴스턴 로케츠의 단장인 데릴모리가 문제적 트윗을 올렸다. “자유를 위한 싸움, 홍콩을 지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스포츠 선수들이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미국에서 종종 있는 일이다. 특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임하던 2019년 당시엔 더 그랬다. 수많은 NBA 스타들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모리는 ‘더 악질 지뢰’를 밟아 문제가 됐다. 중국이다. 이 발언으로 중국 영사관이 모리와 휴스턴 로케츠를 압박하는 성명을 냈고, NBA 스폰서로 있는 중국 기업들은 스폰서십 철회를 표명하며 프로농구 협회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중국 내 미국 NBA 중계권을 5년간 15억 달러(약 1조8000억원)에 계약한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 ‘텐센트’(텅쉰)가 생중계를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2. NBA와 NBA 선수들에게 중국은 버릴 수 없는 시장이다.

홍콩 사태가 벌어졌던 2019년 시즌 기준, NBA 경기를 한 번이라도 시청한 중국인은 5억 명에 달한다. 광고 수익 등을 합하면 40억 달러(약 4조8000억 원)의 가치가 있는 시장으로 평가받는다. ‘NBA를 대표하는 선수’라는 르브론에게도 중국은 기회의 땅이다. 그가 나이키와 함께 내놓은 신발 ‘르브론시리즈’가 가장 많이 팔리는 곳이 중국이다. 그 규모가 1000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연봉구조도 중국의 영향을 받는다. NBA는 중계권 수입에 따라 매년 한 구단이 선수들에게 줄 수 있는 연봉의 총액(샐러리캡)이 정해지는데, 현재 1160만 달러(1400억 원)규모다. ‘맥스 제도’에 따라 한 명의 슈퍼스타급 선수는 구단으로부터 샐러리캡의 최대 30~35%에 달하는 연봉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중국이 중계권을 끊어버리면 샐러리캡이 10%가량 줄어든다는 것이다. 전체 파이가 줄어드는 셈인데,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군(群)이 팀 내 맥스 제도의 수혜를 받는 르브론 같은 슈퍼스타 군이다.

3. 르브론은 중국 편에 섰다. 그는 ‘More than athelte’을 외치던 사람이다.

르브론은 중국발 NBA 위기가 터진 지 열흘 만에야 입을 열었다. 그는 2019년 10월 15일 시범경기를 앞둔 인터뷰에서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트윗을 올린) 대릴 모리 휴스턴 로켓츠 단장은 그 상황에 대해 못 배워서(not educated) 그런 글을 올린 것”이라며 “홍콩 시위에 대해 NBA 선수들이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했다. 팬들의 기대와 달리 중국 측을 옹호하는 내용이었다. 더구나 “운동선수는 사회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하고, 흑인 인권 활동에 활발히 나서던 평소 르브론과는 딴판이었다. 대중의 비난이 이어지자 그는 16일 인스타그램에 스테픈 커리(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함께 웃는 사진을 올리며 “그들은 우리가 뭐라고 말했는지도 모를 것”이라고 비꼬았다.

4. 르브론은 ‘선택적’으로 겁을 먹더니, 그걸 합리화했다.

연예인은 보통 대중의 관심을 먹고산다는 점에서 대중에 ‘을’인 존재들이다. 그런 그들이 ‘스텝업’하는 경우가 있다. 유명해질 때다. 유명해진 연예인들은 대중으로부터 그 이상의 지위를 부여받는다. ‘공인’의 지위다. 이때부터 가수가 ‘인성이 좋다’는 이유로 칭찬받고, 연기자가 ‘불륜을 했다’는 이유로 비난 받는다. 운동선수 역시 마찬가지다. 누가 축구나 농구를 잘한다고 해서(물론 많이 잘하긴 하지만) 연 1000억 원이 넘는 돈까지 벌 이유는 사실 없다. 자원 배분에 왜곡이 일어난 셈인데, 팬덤 때문이다. 팬들이 그들의 플레이를 보고 열광하기에 시장이 반응하는 것이다. 운동선수 역시 이렇게 ‘스타’의 반열에 올라서게 되면, 운동 외적의 것으로도 평가받게 된다. 르브론은 그 점을 잘 이용했다. 그는 스스로를 ‘More than athelte’라고 불렀다. 그랬던 그가 그 구호를 헌신짝처럼 내던졌으니 일부 팬의 탈출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르브론의 홍콩사태 대처는 스포츠스타의 사회문제 대처법에 대한 일부 시사점도 준다. 이해관계(돈)와 신념이 양립할 수 없을 때 이해를 쫓는 것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본인 밥줄 앞에선 계산기를 두드릴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이다. 하지만 적어도 ‘선택적으로 겁을 먹는’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선택적으로 용기를 낼때’자신의 행동에 이해관계 이상의 가치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르브론은 그랬다. ‘More than athelte’은 무슨 구호였던 걸까. 한국판으로 치면 ‘내로남불’쯤 되는 구호로 전락한 것 아닌가 싶다. 머잖아 다른 스타의 당당한 스포츠맨쉽, 진짜 ‘More than athelte’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오길 기대한다.



송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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