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우 논설고문

대기업 1000兆 투자계획 발표
尹정부 “규제 풀어 화답할 때”
前 정부들도 똑같은 레퍼토리

정권마다 규제 숫자만 늘어나
컨트롤타워 해결책도 닮은꼴
‘규제혁신전략회의’는 다를까


삼성그룹이 화끈한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LG·SK·현대차그룹 등도 줄지어 일자리와 투자계획을 내놨다. 윤석열 대통령 때의 이야기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의 일이다. 당시 삼성의 투자 규모는 100조 원을 넘었다. 4만 명 신규 채용 플랜도 발표했다. LG그룹 2018년 19조 원 투자 및 1만 명, 현대차 5년간 23조 원 투자와 4만5000명, SK 3년간 80조 원 투자와 2만8000명 고용 등이 줄줄이 이어졌다. 물론 윤 대통령 때인 올 5월에는 규모가 더 커졌다. 삼성의 향후 5년 내 450조 원 등을 포함,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투자 총액이 무려 1056조 원에 이른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되풀이하는 대기업들의 투자 약속이지만, 많은 사람이 이번에는 전 정권과 다르겠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친기업 정책을 제1 경제공약으로 들고나오지 않았나. 그만큼 진정성 측면에서 전 정권과 다르리라 믿을 것이다.

기업 투자 소식을 접한 윤 대통령의 언급 또한 경청할 만하다. 지난달 30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주요 기업들이 5년간 1000조 원을 투자하고 30만 명 이상을 신규 채용하겠다는 큰 계획을 발표했다”며 “이제는 정부가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를 풀어 화답할 때”라고 했다. “어렵고 복잡한 규제는 제가 직접 나서겠다”고도 했다. 기업들은 경제 발전에의 헌신과 젊은이들의 새 일자리 확보를 약속했고, 새 정부는 그들이 마음껏 경영활동을 펼 수 있도록 걸림돌들을 제거하겠다고 했으니 이제 우리 경제는 활짝 기지개를 켤 일만 남은 셈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회의감을 떨칠 수 없는 것은 윤 대통령의 규제 혁파라는 굳은 맹세가 지난 정권 때도 어김없이 반복돼 왔다는 사실 때문이다. 웬걸, 문재인 대통령 때도 그랬다. 2020년 2월 문 대통령은 기업인들과의 회동을 통해 “과감한 세제 감면과 규제 특례로 투자 혁신을 돕겠다. 정부를 믿고 투자를 차질 없이 진행해 달라”고 진심을 다해 요청했다. 심지어 “19세기 말 영국에서 자동차 속도를 마차에 맞추려고 자동차 앞에서 사람이 붉은 깃발을 흔들었다”며 불필요한 규제에 전면전을 예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온갖 반기업법을 쏟아내며 기업들을 절벽으로 몰고 갔다. 기업들은 슬금슬금 해외투자로 눈을 돌려야 했다. ‘에이∼ 좌파 정권이니 그렇겠지’라고 한다면 오산이다. 이전 우파 정권인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때라고 다를 바 없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전남 영암군 대불산업단지의 전봇대를 언급했다. 전봇대가 대형 트럭 이동에 방해된다고 기업들이 불만을 쏟아내는데도 탁상행정 탓에 그대로라는 것이었다. 이 전봇대가 이 대통령의 한마디로 3일 뒤 거짓말처럼 뽑혀나갔다. ‘전봇대 규제’라는 언론 용어가 등장한 것이 이때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집권 2년 차인 2009년 1만2905개였던 규제 숫자는 2012년 1만4889개로 15.3%나 증가했다. 박 대통령도 당선인 신분이던 2013년 인수위 회의에서 규제개혁을 약속했다. 다음 해에는 7시간 동안 끝장 토론까지 벌였다. ‘손톱 밑에 박힌 가시’라는 멋있는 표현도 등장했다. 가시들이 벌벌 떨 기세였으나 정권이 다하도록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규제프리존특별법! 박 정권의 멋진 작품이었으나 지금 그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문 정권이라고 빠질 수 있나. ‘규제 샌드박스’라는 보물상자를 만들어 냈으나 ‘실증(實證) 지옥’이라는 오명만 남았다. 벤처기업들이 실증 과정을 반복하느라 돈과 시간만 허비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규제 혁파를 외친다 한들, 관료주의가 개입할 수 없는 강력한 컨트롤 타워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윤 정부 역시 이런 뼈저린 인식하에 규제혁신전략회의를 따로 구성할 것이라고 한다. 어라, 이 역시 어디서 들어본 것 같네? 그렇다. 문 정부도 집권 내내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운영했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이 위원회가 한 일이라고는 정권 주변 인사들에게 꿀 빠는 일자리를 나눠준 것뿐이다. 새 정부의 규제혁신전략회의는 차원이 다를 거라고 믿어도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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