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형 문화재전문위원
한국 문화에 대한 전 세계인의 관심이 이제 대중문화를 넘어 ‘K-헤리티지(K-Heritage)’, 즉 전통문화로도 향하고 있다. 문화일보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함께 매주 월요일 해외에 나가 있거나 환수된 우리 문화재를 소개한다. 연재는 월별 주제에 따라 이뤄지며, 6월 주제는 ‘국외독립운동사적지’이다.
1920년 4월 5일, 연해주 한국독립운동의 지도자 최재형(1860∼1920) 선생이 우수리스크 자택에 머물던 중 일본군에 끌려가 총살됐다. 선생은 함경도 경원의 가난한 소작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 연해주로 이주해 온갖 고생 끝에 마침내 자수성가한다. 1893년 러시아 한인마을의 도헌(면장)에 선출됐으며, 1896년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생은 일제가 국권을 침탈하자 1908년 의병단체 동의회(同義會)를 조직해 막대한 군자금을 쾌척하는 등 항일투쟁을 후원한다. 한반도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포살한 안중근 의사는 의거를 결행하기 위해 하얼빈(哈爾濱)으로 떠나기 전까지 노보키예프스크의 선생의 집에 머물면서 선생의 후원과 보호를 받기도 했다. 선생은 1911년 러시아지역 한인의 실업과 교육을 장려할 목적으로 권업회(勸業會)를 결성해 총재를 맡아 독립운동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1919년 3·1운동 전후 선생은 연해주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대한국민의회의 외교부장과 중국 상하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대 재무총장에 선출되는 등 독립운동의 핵심 인물로 떠오른다. 그러한 선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한 러시아 우수리스크시 보르다르스코로 거리 38번지 옛집은 1900년 초에 벽돌로 지어진 전형적인 러시아식 주택이다. 이 집은 선생이 1919년 1월 슬라뱐카에서 니콜스크-우수리스크로 이주한 뒤 1920년 초부터 거주했다.
선생의 옛집은 한동안 방치됐으나, 2014년 재외동포재단의 지원으로 건물을 매입해 보수한 뒤, 독립기념관의 전시 지원을 통해 2019년 3월 28일 ‘최재형 기념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현재 ‘최재형 기념관’은 러시아지역 유일의 한국독립운동 관련 전시관으로,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에서 관리를 맡아 운영하고 있다.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