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6·1 지방선거 직전 “맹목적인 지지에 갇히지 않겠다. 민주당을 팬덤정당이 아니라 대중정당으로 만들겠다”고 한 소신 발언 이후 민주당은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친명(친이재명)계는 문자 폭탄 등이 무섭다면 정치를 그만해야 한다면서 강성 지지자의 여론을 당심(黨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친문(친문재인)계는 강성 팬덤을 방치하면 국민의 신뢰를 잃는다며 일반 여론인 민심(民心)을 살필 때라고 맞선다. 정치에서 팬덤과 대중은 불가분의 관계다. 양시론에 가까운 논쟁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고조되는 데는 시기적 요인이 크다. 차기 전당대회에서 선출될 당 대표가 22개월 앞으로 다가온 22대 총선 공천권을 손에 거머쥐기 때문이다.
오늘날 민주당의 팬덤 정치를 주도한 사람은 다름 아닌 차기 당권 주자로 거론되는 이재명 의원이다. 이 의원은 검찰개혁 등을 기치로 내세워 기성 제도권 타파를 원하는 청년층의 표심을 자극해왔다. 여기에 국민의힘이 여성가족부 폐지 등 ‘이대남’(20대 남성)을 위한 정책을 내놓으면서 2030 여성이 이 의원을 지지하는 현상이 뚜렷해졌다. 이는 여론조사를 통해 입증됐다. 지난 대선 후 민주당 당원으로 신규 가입한 약 20만 명 중 상당수가 2030 여성일 것이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추정이다.
이 의원을 열성적으로 따르는 2030 여성들은 ‘개혁의 딸’(개딸)로 불린다. 이들은 이 의원을 ‘아빠’라고 칭한다. 딸이 아빠를 맹목적으로 따르듯, 개딸은 이 의원과 관련된 각종 의혹이 왜곡됐다고 주장한다. 우상화가 따로 없다. 민주당 일각에선 이들의 실체가 불분명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보란 듯 이 의원이 국회에 등원할 때 수십 개의 화환을 보내 실력 행사를 했다. 화환에는 ‘재명 아빠, 개딸만 믿어’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들의 공격 대상에 성역은 없다. 친문 핵심이자 4선인 홍영표 의원이 지방선거 참패에 대해 이재명 책임론을 꺼냈다가 ‘치매가 아닌지 걱정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대자보 테러를 당했다. 홍 의원은 이 의원과 대적할 잠재적 당권 주자라 이재명 책임론을 꺼낸 다른 의원들보다 공격의 강도가 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의원은 뒤늦게 지지자들에게 자제를 당부했지만, 당권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이재명 팬덤의 극성은 노골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달콤한 열성 지지를 마다할 정치인은 없기에 그렇다.
팬덤은 정치에 활력을 불어넣고 정치권을 움직이게 하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팬덤 영향력이 지나치게 확장되면 정당의 의사결정 구조가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은 함정이다. 종교적 열정에 견줄 정도의 팬심으로 뭉친 이들이 당원 게시판 등을 휩쓸면 소수의 목소리가 ‘과잉대표’되곤 한다. 팬덤이 토론과 타협, 협상을 기본 원리로 하는 민주주의를 무력화하는 셈이다. 지방선거 패인으로 꼽히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강행 처리가 좋은 예다. 친명계는 개딸의 전당대회 투표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극성 팬덤이 당심이라며 당 지도부 선출에 개입시킨다면 민심의 회초리를 연이어 맞은 위기의 민주당은 게임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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