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가기록화…’ 펴낸 박정혜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궁중기록화’ 찾다 알게 돼 연구
당대 최고인 도화서 그림과 달리
유명 화가부터 환쟁이까지 참여
사대부 욕망·일상 담긴 값진 史料
450여개 작품 설명과 함께 엮어
국내 첫 사가기록화 집대성 평가


박정혜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지난 10일 경기 성남시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 교수는 최근 조선 양반 가문의 집안 행사 등을 묘사한 ‘사가기록화’ 연구서를 펴냈다.  신창섭 기자
박정혜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지난 10일 경기 성남시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 교수는 최근 조선 양반 가문의 집안 행사 등을 묘사한 ‘사가기록화’ 연구서를 펴냈다. 신창섭 기자

“사진기가 없던 조선 시대에 제작된 ‘사가(私家)기록화’는 양반 사대부의 욕망과 일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입니다.”

본지에 ‘옛 그림으로 본 사대부의 꿈’을 연재하는 미술사학자 박정혜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조선 시대 기록화 권위자다. 그가 2000년 출간한 ‘조선 시대 궁중기록화 연구’는 왕실 행사도에 대한 심층 분석으로 산수화와 풍속화 연구에 치우쳐 있던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박 교수는 책 집필을 위해 자료 조사를 하다 사가기록화의 존재를 알게 됐다. 왕실에서 만든 궁중기록화와 달리 사가기록화는 양반 사대부들이 집안 행사나 의례를 기념하기 위해 전문 화가에 제작을 의뢰한 그림이다. 박 교수는 궁중기록화 연구서를 내놓자마자 의욕적으로 사가기록화를 파고들었으나 생각만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사가기록화에 대한 종합적 연구가 없었던 탓에 국내외에 흩어진 소장처를 찾아가 기초 자료를 모으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다. 긴 호흡과 끈기가 필요한 프로젝트임을 절감한 그는 궁중장식화나 채색화 등 다른 분야를 연구하는 틈틈이 공부를 이어나갔다. 최근 나온 ‘조선 시대 사가기록화, 옛 그림에 담긴 조선 양반가의 특별한 순간들’(혜화 1117)은 20여 년에 걸친 집요한 관심이 맺은 결실이다. 사가기록화를 집대성한 국내 최초의 학술서로 원고지 2500장 분량에 수록 도판만 450여 장에 달한다.

혼인 60주년을 기념하는 회혼례도인 ‘요화노인회근연도’.
혼인 60주년을 기념하는 회혼례도인 ‘요화노인회근연도’.

지난 10일 경기 성남시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사가기록화는 단순히 사실을 재현한 시각물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집안 역사와 양반가의 유교적 가치,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함께 투영된 그림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그림만으로 행사 성격과 주인공 등 구체적 정보를 파악하기 힘든 경우 문집에 수록된 행장과 묘지문 등을 일일이 살폈다. 이를 통해 16세기 이후 유행한 사가기록화가 ‘장수와 자손 번창’ ‘과거 급제와 벼슬살이’ ‘가문의 안정과 번성’ 등 세 가지 주제를 담고 있음을 규명했다. 부모님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경수연도’와 혼인 60주년을 기념하는 ‘회혼례도’가 첫 번째 경우라면, 과거 급제 동기 모임을 묘사한 ‘방회도’는 두 번째 주제에 속한다. 가문의 번성을 자축하고 염원하는 그림으로는 고인이 된 조상의 시호(諡號·공덕을 칭송해 붙인 이름)를 후손이 받드는 ‘연시례도’, 선대 조상의 업적을 담은 ‘가전화첩’ 등이 있다. 박 교수는 “사가기록화는 주제가 달라도 풍속화처럼 ‘그림 보는 재미’를 안겨준다”며 “잔치 준비하는 하인, 술에 취해 춤추는 양반, 악기를 연주하는 악공 등 여러 인물의 생생한 일상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당대 최고 국립회화기관인 ‘도화서’ 소속 화원들이 그린 궁중기록화와 달리 사가기록화는 예술성이 고르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가문의 재력과 지위에 따라 명망 있는 화가부터 이름 없는 환쟁이까지 다양한 이들이 제작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상대적으로 작품성이 부족한 데다 누가 그렸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 학자들의 관심 밖에 머물러 있었다”며 “남기는 행위에 대한 보편적 욕망이 담긴 기록화는 예술성보다 그림을 완성하고 보존·전수하는 과정에서 가치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책에 실린 450여 작품 중에선 탁월한 미적 가치를 인정받는 그림도 있다. 70세 이상 모친을 모신 신하 7명에게 왕이 베푼 잔치를 그린 ‘칠태부인경수연도’와 과거 합격 동기생의 자축연을 묘사한 ‘희경루방회도’가 대표적이다. 각각 부산시립박물관, 동국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들 그림은 문화재청이 지정한 보물이기도 하다.

영남과 한양에서 주로 만들어진 사가기록화의 또 다른 특징은 ‘지역성’이다. 영남은 혼인을 통해 집안끼리 긴밀히 연결돼 있었으며, 이황을 계승한 학자와 유림이 결집한 지역이었다. 가문과 학맥으로 쌓은 연대감이 적극적인 기념물 제작으로 이어졌음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18세기 이후엔 전주 이씨, 풍산 홍씨 등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 한양의 양반가문(경화사족)이 활발히 제작했다. 조선 중기부터 유행한 사가기록화는 19세기 이후 수량이 현저히 줄었다. 박 교수는 그 원인을 ‘평생도’의 유행에서 찾는다. 평생도는 돌잔치와 혼례, 벼슬 진출 등 사대부가 일생 동안 겪은 경사스러운 순간을 담은 그림이다. “그동안 평생도는 풍속화의 한 영역으로 다뤄졌지만, 사가기록화처럼 양반가의 세속적 욕망을 표현한 양식으로 봐야 합니다. 두 양식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사가기록화가 평생도로 변용·진화한 과정을 규명하는 것이 후속 과제입니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나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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