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포항방송국 아나운서였던 동죽(童竹) 최규열 선생의 1주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선생을 향한 그리운 마음이 이토록 간절한 것은 선생과의 인연이 깊었고 가르침이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선생은 1963년, 2년 전인 1961년에 개국한 KBS 포항방송국 아나운서로 출발해 지역에서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KBS 안에서도 포항 하면 최규열을 떠올릴 만큼 포항을 대표하는 1세대 아나운서였습니다.
선생과 저의 인연은 1968년 여름에 시작됐습니다. 고교생이었을 때 친구를 따라 방송국 견학을 갔다가 마주친 것이 첫 만남이었습니다. 이 우연한 인연으로 철부지였던 저를 방송인의 길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방송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계기, 자리를 잡는 과정, 군 입대 등등 삶의 고비마다 나의 멘토였고 내 문제의 해결사가 되어 주었습니다.
같은 곳에서 함께 한 기간은 불과 2년 남짓이었지만, 한번 맺어진 사제의 인연은 평생을 이어왔습니다. 제 삶에 끼친 영향과 베푼 은혜는 정말 특별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잊지 못합니다. 그해 7월에 시작된 인연은 반세기를 뛰어넘어 53년을 이어오다 2021년 7월, 선생이 84세로 세상을 떠나면서 끝났습니다.
선생은 고향인 포항방송국에서 13년을 근무했습니다. 1976년 포항을 떠나 KBS 부산과 대구에서 아나운서로 활동했습니다. 이어서 대구에서 방송부장, 편성제작국장, 창원방송총국 편성제작국장 등을 거쳤습니다. 퇴직하는 날까지 가족을 포항에 두고 홀로 부임해 타지를 떠도는 노마드의 삶을 살았습니다. 31년을 방송인으로 살아오면서 1965년 9월, 해병대 월남파병 청룡부대 결단식과 1967년 10월 포항종합제철 부지조성 착공식, 1970년 포항종합제철 착공식 등을 중계 방송했던 아나운서일 때가 가장 자랑스럽다고 회고하곤 했습니다.
선생은 인간의 도리이자 덕목으로 ‘진실’과 ‘믿음’, ‘의리’가 있어야 한다고 늘 말했습니다. 생활철학이기도 했습니다. 또 선배와 상사를 깍듯하게 모셨고 후배와 부하를 챙기는 자상한 사람이었습니다. 찾아온 사람과 밥 한 그릇, 술 한잔 나누지 않은 사람이 없을 만큼 유난히 인정이 많았습니다.
젊은 날 선생은 선술집에서 후배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눈 오는 겨울밤이면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1970년대 초 눈발이 날리는 겨울밤, 허름한 선술집에 우리를 불러다 맥주에 탁주를 섞은 ‘맥탁’에다 과메기, 오징어와 노가리를 뜯으며 나누었던 노변정담을 말입니다. 이제 그 따뜻한 정도 느낄 수 없고 소신의 철학 이야기도 들을 수 없게 되어 안타깝습니다.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선생은 수술 후유증으로 15년이나 요양원 생활을 하고 있던 부인을 정성으로 보살폈습니다. 남들은 ‘열부(烈夫)’라고 칭송할 때도 지아비의 도리이자 젊었을 때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 젊은 날 아내에게 모든 짐을 지게 했던 삶에 대한 일종의 갚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순수한 사람이었습니다.
떠나시기 불과 25일 전에 점심 모임에서 안색이 전과 같지 않은 데다 줄어든 주량에서 약간의 다름을 느꼈지만, 팔순을 넘긴 나이이면 으레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진단을 받고 채 1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손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으니 얼마나 황망한지요. 이별 인사도 나눌 수 없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제게는 자상한 선배였고, 멋진 상사였고, 훌륭한 멘토였고, 때로는 인자한 작은 아버지 같은 분이었습니다. 이승에서의 인연은 끝났지만, 내 마음속에 인연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동죽 최규열 선생이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김지문 전 KBS 편성정책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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