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가 후원하는 LIV골프인비테이셔널이 논란 속에 지난 주말 영국 런던에서 치러졌다. 개막 직전까지 LIV와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양측의 신경전이 팽팽했다. 흥행몰이를 하려는 LIV 측은 PGA투어보다 훨씬 많은 상금으로 스타 골퍼들을 유혹했고, PGA투어 측은 LIV에 참가한 회원들의 출전정지라는 강력한 제재로 맞불을 놨다. 평소 친분이 깊은 ‘레전드’ 필 미켈슨과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이로 인해 갈라섰다. LIV를 지지한 미켈슨은 PGA가 개인의 선택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반면, 우즈는 PGA의 전통과 품격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뭐가 옳고 그르냐라기보다 결국 돈의 문제였다.
경기 시간까지 대폭 줄인 LIV는 돈 보따리를 마구 풀었다. 성적에 상관없이 출전 선수 모두에게 상금을 나눠줬다. 샬 슈워츨의 우승 상금(약 60억 원)은 물론 꼴찌에게도 1억 원 이상의 상금을 배분했다. 올해 8개 대회에 걸린 총상금만 2억5500만 달러(약 3200억 원). 프로선수로서 쉽게 뿌리치기 어려운 거액이었다.
그래서 LIV에 출전하는 선수들에겐 비난이 쏟아졌다. 전통과 의리를 저버리고 돈만 좇은 선수들에게 ‘배신자’ 낙인이 찍혔다. 게다가 친서방 언론인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사건과 관련해 그 배후에 사우디 왕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양측의 주도권 갈등은 국가적 인권문제로 번졌다. 사우디가 후원하는 LIV는 이미지 개선용 ‘스포츠워싱(Sportswashing)’이며 이에 동조하는 것은 인권탄압을 옹호하는 것이나 똑같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LIV의 돈의 힘이 적지 않아 보인다. 싸늘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이미 많은 PGA 멤버가 LIV에 출전했고, 더 많은 선수가 합류를 검토하고 있다. 9·11 테러의 유가족까지 비난하고 나섰지만, 다른 한쪽에선 다양성의 확대를 기대한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LIV와 PGA의 동행도 가능해 보인다.
그 배경에는 사우디의 스포츠워싱과 오일머니에 대한 비판 여론을 알면서도 일부러 외면하는 미국 대외 정책 기조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처음엔 카슈끄지 피살의 배후로 지목된 사우디 왕실과 대립각을 세웠다. 비윤리적 인권탄압을 물고 늘어졌다. 그러나 최근 이런 입장에서 한발 물러섰다. 사우디의 인권을 문제 삼지 않겠으며, 다음 달 사우디를 방문해 그간의 관계를 ‘리셋(Reset)’하겠다는 뜻까지 밝혔다.
이런 입장 변화는 세계 경제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인플레이션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유가 폭등을 진정시키고 중·러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유례없는 고유가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소비자물가도 5% 이상 급등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 앞에 인권옹호라는 명분보다 물가 안정이라는 실리를 택한 셈이다. 정부가 나서서 사우디와 관계를 개선하려는데 PGA의 강경한 대응이 제대로 먹힐 리가 없다. 또, 프로선수들에게 도덕적 판단을 요구하기도 어렵다. 오일머니의 위력 앞에서는 스포츠워싱의 본질을 알고도 모른 척하는 길밖에 없어 보여 떨떠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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