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탈감 감추지 못하는 업계

철강업계 1조1500억원 최다
석유화학 5000억·車 2571억
정부, 신속한 판단없이 뒷짐만
애매한 협상 타결로 불씨 남아
파업 또 터지면 기업 속수무책


14일 광주 서구 광주시청 야외음악당에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생산한 완성 차량이 주차돼 있다. 기아차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총파업으로 자사 차고지가 포화 상태에 이르자 대체 장소에 차량을 보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광주 서구 광주시청 야외음악당에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생산한 완성 차량이 주차돼 있다. 기아차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총파업으로 자사 차고지가 포화 상태에 이르자 대체 장소에 차량을 보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파업으로 산업 전반에 2조 원이 넘는 막대한 피해와 대혼란이 초래됐지만 화물연대, 국회, 정부 모두 아무런 반성과 책임을 지는 자세조차 찾을 수 없어 큰 논란을 낳고 있다. 특정 업계에 좌표를 찍는 등 기업을 볼모로 한 화물연대와 예견된 파업을 앞두고도 뒷짐만 지고 있던 정부, 국회 모두 어물쩍 사태를 미봉하는 데만 급급하고 있다. 중간에 끼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산업계에서는 ‘기업이 희생양, 봉이냐’는 불만과 향후 노사·노정 관계에 대한 불안감이 감지되고 있다. 안전운임제에 대한 노·정 간 이견, 차주나 관련 단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등 갈등의 불씨도 여전한 상황이다.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번 파업으로 인한 업종별 피해액(지난 13일 기준 추정치)은 철강업계 1조1500억 원, 석유화학업계 5000억 원, 자동차업계 2571억 원, 시멘트업계 912억 원이다. 중소·중견기업의 피해까지 더하면 8일 동안 산업계가 입은 타격은 수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공장 가동 중단 위기에 처했던 기업들은 우선 영업 정상화를 서두르고 있다. 가장 피해가 컸던 포스코는 이날 오후 1시부터 포항과 광양제철소에 쌓여있던 물량 약 30만t을 출하하기 시작했다. 다만 고객사별 제품 선별 작업 등으로 인해 모든 물량이 빠져나가려면 10일 이상이 걸릴 예정이다. 나머지 자동차, 석유화학, 시멘트업계 등도 생산 라인을 최대한 가동하며 피해 최소화에 주력하고 있다.

안전운임제에 대한 명확한 결론도 없이 파업으로 피해만 떠안게 된 산업계는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안전운임제 파업은 이미 예고가 됐던 건데 정부는 판단을 내리지 못했고, 국회는 정치 싸움으로 인해 책임을 회피했다”며 “애매한 협상 타결로 인해 만약 또다시 파업이 터지면 기업으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공포감이 팽배하다”고 말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안전운임제를 폐지할지 말지에 대한 판단을 정부가 신속히 내려줬다면 불필요한 산업계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며 “이번 파업은 노·정 간 기 싸움으로 인해 기업만 피해를 보는 악순환이 또 반복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업 기간 쌓인 피해에 대한 법정 다툼 불씨도 남아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당장은 물류 정상화에 집중하겠지만, 일반적인 사례로 비춰봤을 때 파업으로 인한 피해액 추산이 마무리되면 피해를 준 차주들이나 관련 단체에 손해배상 소송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날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사옥에서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관련 중소기업계 긴급 기자회견’을 연다고 공지했다가 파업 철회 소식에 일정을 급히 취소했다. 파업 지속에 따른 심각한 물류난으로 인해 수출입 업체와 콘크리트·주류·식품제조 업체 등 업계 피해가 가중되고 있음을 설명하고 즉각적 파업 중단을 촉구할 계획이었다.

중기중앙회는 지난 9∼10일 중소기업 300여 곳을 대상으로 자체 실시한 ‘화물연대 파업이 중기에 미치는 영향 조사 결과 및 현장 피해사례 발표’도 계획했었다. 중기업계 안팎에 따르면 해당 설문에서 응답 업체 73%가량이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했고, 그 이유로는 ‘중기업계 경영난 가중’을 꼽았다.

이근홍·최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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