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유라시아 대륙을 초토화한 흑사병(페스트)이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에서 시작됐다는 연구 결과가 15일 나왔다. 수백 년 동안 여러 설로만 추정되던 흑사병의 기원이 밝혀진 것으로, 의·과학계는 “완벽한 역학 연구 사례”라고 평했다.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볼프강 하크·요하네스 크라우제 박사와 영국 스털링대 필립 슬라빈 교수 공동연구팀은 이날 과학전문지 네이처를 통해 “흑사병은 1338년 또는 1339년 키르기스스탄에서 시작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시기 키르기스스탄 이식쿨 호수 인근 매장된 시신 7구의 치아에서 DNA를 추출해 분석한 결과, 3명의 DNA에서 흑사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가 발견된 것. 1346년 유럽에 흑사병이 전파되기 8년 전으로, 상인들이 거주하던 마을을 중심으로 퍼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연구는 역사학과 과학계의 ‘협업’으로 이뤄졌다. 슬라빈 박사가 1248~1345년 사이 키르기스스탄 이식쿨 호수 인근에 마련된 두 곳의 묘지에서 무덤 467개를 분석한 결과 1338년 또는 1339년에 118명이나 사망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일부 묘비에는 시리아어로 이들이 ‘역병’으로 사망했다고 적혀 있기도 했다. 크라우제 박사는 이 연구 결과를 이어받아 고대 DNA 전문가들과 함께 유전정보를 분석했다.
크라우제 박사는 “중국 우한(武漢)에서 등장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알파, 델타, 오미크론으로 변이한 것처럼 이곳에서 모든 흑사병이 시작됐다”며 “흑사병의 기원뿐 아니라, 오늘날 세계를 돌고 있는 대다수의 전염병 변종 조상을 발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흑사병은 유럽 인구 3분의 1 이상을 사망케 하며 인류 역사상 ‘최악의 질병’으로 꼽히지만, 그간 명확한 발병 기원이 밝혀지지 않아 과학·의료계의 미스터리로 불려왔다. 의학사를 전공한 모니카 H 그린 박사는 “역학 연구로서 완벽한 사례로, 투입된 기술은 정말 놀라운 수준”이라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