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obal Focus - ‘좌파’ 페트로 vs ‘우파’ 에르난데스 19일 대선 결선투표
콜롬비아의 페미니스트 단체 회원들이 지난 11일 수도 보고타에서 열린 구스타보 페트로 ‘역사적 조약’ 대선 후보 지지 집회에 참석해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고 있다. 오른쪽 사진에서는 같은 날 상대 후보인 ‘우파 포퓰리스트’ 로돌포 에르난데스 후보를 지지하는 한 남성이 ‘기술자, 로돌포 대통령’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EPA 연합뉴스
페트로 승리땐 첫 ‘좌파 대통령’ …중남미 6國 모두 좌익 휩쓸게돼 1990년대처럼 붉게 물들어 가…복지 확대 등 성장률 하락 우려 2위였던 포퓰리스트 에르난데스, 3위표 흡수해 페트로와 초접전
좌파인가, 포퓰리스트인가. 오는 19일 대선 결선투표를 앞둔 콜롬비아 국민의 민심이 팽팽하게 엇갈리고 있다. 좌익 게릴라 반군 출신 구스타보 페트로(62) ‘역사적 조약’ 후보와 ‘콜롬비아의 도널드 트럼프’로 불리는 로돌포 에르난데스(77) 무소속 후보가 투표 직전까지 오차범위 내 접전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 두 후보 모두 기성 정치권에 환멸을 느낀 여론의 바람을 타고 등장했지만, 국제사회의 시선은 페트로 후보를 향해 있다. 콜롬비아 역사상 처음으로 좌파가 정권을 잡을 수 있기 때문으로, 이 경우 중남미 주요 6개국(브라질·멕시코·아르헨티나·콜롬비아·칠레·페루) 모두를 좌파가 휩쓸게 되는 정치적 분수령이 될 수 있다.
앞서 좌파가 집권한 멕시코 등이 경제지표에서 ‘낙제점’을 받고 있어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중남미를 뒤덮은 ‘핑크 타이드’(Pink Tide·좌파 물결)가 다시 한 번 이 지역을 붉게 물들일지 주목된다.
◇콜롬비아 최초 ‘좌파 대통령’ 탄생할까 = 16일로 사흘이 남은 콜롬비아 대선 결선투표에서는 좌익 반군 게릴라 단체 M-19 출신 페트로 후보와 건설업 창업주를 지냈던 에르난데스 후보가 맞붙는다. M-19는 1980년 도미니카공화국 대사관 점거사건과 같은 무장 활동으로 잘 알려진 단체로, 페트로 후보는 1990년 단체가 해체된 후 하원의원으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앞서 두 차례 대선에 도전했지만 페트로 후보가 1차 투표 ‘1위’ 타이틀을 거머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파인 이반 두케 현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처, 부패 및 범죄 대응에 미숙한 모습을 보이자 “기성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고, 페트로 후보는 이러한 실정을 비판하며 돌풍을 일으킨 것. 연금 개혁, 부자 증세 등의 ‘좌클릭 공약’을 발표한 데 이어, 부통령 러닝메이트도 인권·환경운동가이자 흑인인 프란시아 마르케스로 지목해 주목을 받고 있다.
상대인 에르난데스 후보는 ‘우파 포퓰리스트’로 분류된다. 기업인 출신이고, SNS를 즐긴다는 점에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자주 비교된다. 좌파의 ‘약한 고리’로 일컬어지는 부패척결과 경제성장, 일자리 창출 등을 공약했다. 2016∼2019년 콜롬비아 북부 산탄데르주 부카라망가 시장 재임 당시 한 정치인과 논쟁하다 뺨을 때린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을 정도로 언행에 거침이 없다.
1차 투표까지는 페트로 후보가 40.32%를 얻으며 단연 1위였지만, 3위였던 우파 페데리코 구티에레스 콜롬비아팀 후보(23.91%) 표가 에르난데스 후보(28.15%)로 병합될 경우 승리를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지난 10일 콜롬비아 현지 주요 언론들의 의뢰로 조사기관 인바메르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에르난데스 후보와 페트로 후보가 각각 48.2%와 47.2%로 오차범위(±2.69%포인트) 내 접전 중이었다.
페트로 후보가 결선 투표에서 승리하게 되면 콜롬비아로서는 사상 최초로 좌파 대통령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어게인 ‘핑크 타이드’?… 누가 되더라도 정치적 변화 예상 = 페트로 후보와 에르난데스 후보 중 누가 당선되더라도 콜롬비아로선 커다란 정치적 변화를 맞게 된다. 하지만 중남미 전체를 조망해볼 때 페트로 후보가 1·2위를 다투는 주요 후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지역에서 ‘핑크 타이드’ 열풍이 재현되느냐와 깊이 연관돼 있다. 핑크 타이드는 우파 정부를 후원하는 반미정서 등에 힘입어 1990년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정권 출범을 시작으로 약 20년 동안 중남미 12개국 중 10개국을 휩쓸었다. 온건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좌파 정당들이 연이어 집권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2010년대 중후반부터 포퓰리즘 복지정책으로 인한 경제성장률 둔화, 집권층의 ‘내로남불’식 부정부패로 우파가 다시 득세하기 시작하며 퇴조했다.
2차 핑크 타이드의 시작은 우파의 무능에 대한 분노에서 기인했다고 외신들은 분석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과 겹치며 서민들의 경제적 압박이 심화하면서 좌파의 복지 확대 기조로 민심이 쏠렸다는 평가다. 2018년 멕시코에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정권이 들어선 이후 2019년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좌파 ‘페론주의’를 표방하는 알베르토 페르난데스가 승리했고, 2021년 페루 대선에서도 좌파 초등학교 출신 페드로 카스티요가 정권을 잡았다.
볼리비아, 온두라스 등에서도 좌파가 득세하고 있는 가운데, 오는 10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 브라질에서도 ‘좌파 대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이 여론조사에서 승기를 잡고 있다. 콜롬비아에서 페트로 후보가 당선될 경우 중남미 주요 6개국 모두를 좌파 대통령이 이끌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좌파 득세와 추락하는 중남미 경제 = 제2의 핑크 타이드 물결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복잡하다. 1차 핑크 타이드가 좌파 정권의 경제적 무능으로 종결됐듯, 현재 좌파가 집권 중인 중남미 지역의 경제지표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6년 -0.2%까지 떨어졌던 중남미·카리브해 지역의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17년 1.9%로 올랐다가 좌파 정부들이 속속 들어서기 시작한 2018년 1.6%로 하락했다. 이후 2019년(0.8%), 2020년(-6.7%)에는 완연한 급락세로 돌아선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1950∼1970년대 중남미 국가들이 선택한 수입대체산업화전략(ISI)이 떠올려진다고 지적했다. 특히 신흥시장 ‘3대 투자처’라고 했던 멕시코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멕시코에서는 오브라도르 대통령 취임 이후 2019∼2021년 동안 연평균 1.14%씩 경제 규모가 위축되고 있다. 에너지·전기 국유화 정책 등 반(反)민간 기조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WSJ는 멕시코 정부가 민간 기업을 마치 ‘스페인 정복자’ 취급하고 있다며 “1970년대 산업 정책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