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대제국인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궁전 계단에 새겨진 ‘사자와 황소’ 부조. 이희수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인류본사’는 1만2000년에 이르는 오리엔트·중동의 역사를 정리했다.  휴머니스트 제공
인류 최초의 대제국인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궁전 계단에 새겨진 ‘사자와 황소’ 부조. 이희수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인류본사’는 1만2000년에 이르는 오리엔트·중동의 역사를 정리했다. 휴머니스트 제공

인류본사
이희수 지음│휴머니스트


동·서양, 이분법적 역사 인식 속
그 중간인 ‘中洋’ 전면에 내세워
문명의 새벽 ‘아나톨리아’부터
7세기 이슬람 거쳐 무굴제국까지
오리엔트 중심의 인류사 한눈에



우리는 인류의 역사를 동양과 서양으로 나눠 이해하고, 특히 서양 문명 중심으로 서사화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동서양 중간에는 중양(中洋), 즉 오리엔트가 있어서 언제나 역사의 주역으로 활약해 왔다. 인류의 뿌리 문명에 속하는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더스 문명이 모두 오리엔트 땅에 속해 수천 년간 서로 교류했고, 인류 정신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가 이곳에서 발원했다.

이희수의 ‘인류본사(人類本史)’는 오리엔트를 의도적으로 배제했던 서양 중심의 인류사에 도전해 오리엔트의 역사를 포함하는 본래의 인류사를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오리엔트를 중심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 이르는 세 대륙 역사를 바빌로니아에서 무굴에 이르는 열다섯 제국의 역사와 함께 생생하게 되살린다.

약 1만2000년 전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상류의 아나톨리아에서 문명의 새벽이 열렸다. 인류 최초의 도시 괴베클리 테페가 건설된 것이다. 이 신전 도시는 종교가 문명의 원천임을 보여준다. 9000년 전 최초의 계획도시 차탈회위크를 세우는 등 인류는 아나톨리아고원에서 오랫동안 문명을 실험했다. 약 55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 역사의 아침이 시작됐다. 수메르인들이 벽돌로 성을 쌓고 관개시설을 구축해서 최초로 국가를 건설한 것이다. 신화·문자·법률·행정이 모두 여기서 태어났다. 그 뒤를 이은 아카드와 바빌로니아는 주변 여러 민족을 정복해 최초의 통일왕국을 건설했다.

희랍 원정군과 맞서 싸운 트로이, 수메르의 계승자인 아시리아, 이집트와 최초로 세계대전을 벌이고 평화 조약을 맺은 철기 제국 히타이트, ‘미다스의 손’을 신화로 남긴 풍요의 제국 프리기아 등이 자리 잡은 아나톨리아는 문명의 요람이다. 동서양이 교차하고 이슬람과 기독교가 공존하는 이 땅은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여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문명의 용광로이자 삶의 도서관”이다. 생활양식·신앙·공동체·제도·과학기술 등이 이 땅에서 실험을 거쳐 발명된 후, 지중해를 통해 그리스·로마로, 유프라테스강을 통해 메소포타미아·아라비아·아프리카로, 실크로드를 통해서 중앙아시아와 동양으로 퍼졌다.

이 책은 오리엔트를 역사의 주역으로 되돌려 인류사를 더 넓고 더 심도 있게 조망한다. 다문화정책과 지방분권이란 관용의 거버넌스로 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한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로마의 동진을 저지하고 실크로드 중계무역을 장악해 번영을 누린 파르티아, 페르시아 문명의 마지막 계승자 사산조 페르시아의 역사를 살려내 그 적수였던 그리스·로마 제국·동로마 제국의 역사와 함께 균형 있게 서술한다. 그 덕분에 우리는 오리엔트를 중심으로 펼쳐진 고대사의 장대한 드라마를 일목요연하게 머릿속에 그려낼 수 있다. 7세기 이슬람 등장과 함께 아랍 민족이 오리엔트의 주역이 된다. 압바스 제국은 이슬람을 세계 종교로 확산하고 고도의 학문체계와 과학기술 문명을 이룩했으며, 피정복민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최소화함으로써 이슬람 황금기를 이룩했다. 셀주크튀르크는 십자군을 무찌르고 예루살렘을 수복한 후 기독교도에 이슬람 특유의 관용을 베풀었고, 오스만튀르크는 발칸반도를 포함한 남동부 유럽과 서아시아,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세 대륙의 땅을 거느린 대제국을 500년 동안 운영했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동서양 교류사의 주역인 중앙아시아의 호라즘샤와 티무르, 이베리아반도의 나스르, 이란의 사파비, 인도의 무굴, 아프리카의 말리와 송가이 등의 역사를 자세히 소개한 점에 있다. 국내 학자가 이만한 시야로 유라시아-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역사를 통찰한 경우는 흔하지 않다.

물질 자본주의와 서양 중심주의가 횡행한 지난 200년을 제외하고 오리엔트는 늘 인류 역사의 엔진이었다. 바빌로니아에서 오스만 제국까지 오리엔트 제국들은 동서양의 여러 제국과 쟁투, 교류를 거듭하면서 역사를 이끌었다. 오리엔트가 없다면 진정한 인류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학문의 힘으로 이만큼 균형 잡힌 인류사가 탄생하는 장면을 보는 것은 무척 뿌듯한 일이다. 704쪽, 3만9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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