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짓기는 물과 불의 마술이다. 물을 얼마나 잡느냐에 따라, 불을 얼마나 때느냐에 따라 밥의 성패가 결정된다. 물과 불을 잘 다스리는 이는 누룽지를 한 켜 눋게 하되 나머지 밥은 고루 고슬고슬하게 지어낸다. 그렇게 쌀알은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며 밥알로 변해야 하고 물기는 졸아들되 윤기로만 남아서 밥알을 빛내줘야 한다.

밥을 안칠 때 물을 많이 잡으면 진밥이 되고 적게 잡으면 된밥이 된다. 진밥과 된밥은 ‘밥’ 앞에 각각 ‘질다’와 ‘되다’가 붙은 것이다. 당연히 ‘진 밥’과 ‘된 밥’처럼 띄어 써야 할 것 같은데 붙여 쓴 것이 사전에도 올라 있는 것을 보면 이 말의 쓰임이 얼마나 많은지 가늠할 수 있다. 외국인들은 ‘질다’와 ‘되다’의 주어로 땅이나 밀가루 반죽을 떠올리지만 우리는 바로 밥을 떠올리는 것만 봐도 밥이 우리의 삶과 말에 얼마나 깊이 자리를 잡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형용사 ‘되다’는 ‘질다’와 달리 더 넓은 용법으로 쓰인다. 팽팽하게 졸라맨 줄은 ‘된 줄’이라 하고 심한 꾸중은 ‘된 꾸중’이라 한다. 그러나 이런 표현보다 더 많이 들리는 것은 일이 힘에 벅찰 때 쓰는 ‘일이 되다’이다. 된 일이 평생 반복되면 ‘삶이 되다’라고 하고 더 강조하려면 ‘고되다’를 쓴다. 나아가 아주 몹시 강조하고 싶을 때는 ‘되게’를 쓰기도 하니 ‘되게 진밥’이라는 모순적인 표현도 가능하다.

하루를 되게, 인생을 고되게 살고 싶은 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인생을 ‘질게’ 살고 싶은 이도 없을 것이다. ‘된 일’이 싫다 하여 ‘진일’만 찾는 이도 없을 것이다. ‘진일’은 쉬운 일이 아니라 밥 짓고 빨래를 하는 등의 물을 쓰는 일을 뜻하기 때문이다. 되지도 질지도 않은 밥을 일컫는 말이 딱히 없지만 그런 밥이 최고의 밥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마냥 질거나 되지 않은 삶, 한때의 고된 삶이 누룽지처럼 흔적으로 남지만 나머지 삶은 고루 고슬고슬한 그런 삶이 최선일 것이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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