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에게서 듣는다 - ① 대런 애스모글루 MIT 경제학과 교수
<7월 7일 ‘문화미래리포트’ 제1세션 첫 강연>
지지층 겨냥한 ‘팬덤 정치’ 골몰
화합 이루기 위한 대화만이 해법
여소야대 한국, 포용적 정치 필요
정부와 야당은 서로 용납 가능한
범위 내 정책 추진하며 협력해야
국가가 너무 강하면 독재로 귀결
사회가 강하면 소수가 무법행태
균형 이뤄야 자유민주주의 정착
“우리는 현재 협력할 시도조차 하지 않을 만큼 벌어진 양극화된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 정치적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화와 노력이 중요하다.”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포용적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런 애스모글루(사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적 양극화의 원인으로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불만, 냉전 종식에 따른 규율 효과 약화, 게이트키퍼 언론의 붕괴,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미디어 조작 등을 지목했다.
애스모글루 교수는 “정치적으로 열정적인 지지층은 대통령이 요구를 들어주려 할 때마다 대담해진다”며 일부 정치인의 지지층을 위한 정치가 양극화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정치적 양극화를 해결할 만병통치약은 없다”며 “균형을 구축하기 위한 대화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상대 진영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애스모글루 교수는 오는 7월 7일 오후 2시 ‘대한민국 리빌딩 : 통합과 도약’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문화미래리포트 2022’ 제1세션 ‘국민통합과 민주주의 리더십’의 기조 강연을 맡았다. 애스모글루 교수와의 인터뷰는 이메일을 통해 진행됐다.
―정치적 양극화가 한국에서뿐 아니라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극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만들어 내는 정치적 양극화가 발생하는 배경, 그리고 갈수록 악화되는 원인은 무엇인가.
“정말 중요한 질문(the million-dollar question)이다. 아무도 완전한 답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몇 가지 요인이 있다는 데에는 동의할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이 그중 하나다. 우리는 급속한 기술 발전과 세계화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이런 과정이 광범위한 이점(broad-based benefits)을 창출해 낼 것이라는 약속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새로운 디지털 기술과 세계화 모두 기업과 고도로 숙련된 노동자들에게만 혜택을 줬다. 설상가상으로 미국과 같은 국가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저학력 노동자들의 실질소득 감소와 함께 진행됐다. 실질소득이 줄지 않은 국가라 해도 희망했던 것에 비해 성장은 실망스러웠다. 양극화는 경제적 불만이 커질수록 더 단단하게 뿌리내린다.”
―경제적 요인 외에 다른 요인들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두 번째 요인은 냉전의 종식이다. 냉전 기간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는 규율 효과가 있었다. 특히 기업과 우익 정당의 경우는 더욱 그랬다. 소련의 몰락과 함께 우파는 더 대담해졌고, 이에 따라 양극화는 더욱 심화됐다. 세 번째 요인은 게이트 키퍼 미디어의 붕괴다. 이 같은 현상은 소셜미디어 이전부터 시작됐지만 페이스북 등 플랫폼의 부상으로 인해 속도가 가팔라졌다. 네 번째 요인도 있다.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은 미디어와 여론을 조작하는 방법을 서로에게 배운다. 그리고 양극화를 조장한다. 나는 양극화가 걱정스러운 수준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전임 대통령이 비판받은 지점 중 하나는 ‘지지층을 위한 정치’에 매몰됐다는 점이다. ‘팬덤 정치’라고 불리는,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치의 폐단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런 유형의 ‘지지층에 맞춘’(catering to your base) 전략은 양극화가 존재할 때 훨씬 더 정치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다른 편에서 지지자를 끌고 오려는 희망을 포기하게 되고, 중도에 속한 유권자와 정치인의 수는 점점 더 줄어든다. 이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현상은 아니다. 그리고 이 같은 전략은 정치적 양극화를 악화시킨다. 교차하는 연정(우리 정치에서 흔히 얘기하는 ‘협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이 줄어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치적으로 활동적이고 헌신적인 유권자들이 대통령이나 총리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달래려 할 때마다 더 대담해지기 때문이다. 미국 공화당이나 민주당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한국의 지난 대통령 선거는 0.73%포인트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정치 원로들은 승자는 패자를 바라보는 정치, 패자는 선거 결과에 승복하는 모습을 조언했다. 그러나 승자는 선거 결과를, 패자는 역대 최소 표차만 내세우며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근소한 차이로 승리한다고 해서 선출된 정치인이 겸손해질 거라는 증거는 없다. 양극화된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2000년 매우 근소한 차이로 당선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통치하는 방식이나 9·11 사태 당시 대응 방식이 변하지는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체 득표수에서는 오히려 적은 표수를 얻었지만, 선거인단 과반수를 확보하면서 당선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첫날부터 상당히 극단적인 정책을 완강하게 밀어붙였다. 미국 정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여러 국가에서 근소한 차이로 승패가 갈리는 경우, 오히려 그렇게 당선된 정치인들이 자신의 지지층에 영합하려 한다는 연구 결과도 여럿 있다. 한국은 언론과 적극적인 반대 여론까지 포함하는 메커니즘에 의존해 새 대통령이 지지자뿐 아니라 모든 한국 국민에게 관심을 기울이도록 해야 한다.”
―한국은 5년 만에 보수정당이 정권을 되찾았지만 의회는 여소야대 상황이다. 대통령 그리고 야당은 정치적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정치적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대화와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민주적 통치를 정치권력이 수시로 바뀌는 장기적인 게임으로 생각해야 한다. 결국, 그게 민주주의의 정의다. 그게 아닐 경우는 일당독재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상대가 내가 집권했을 때 협력할 것이라 기대되는 범위 안에서 나도 협력하고 싶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범위 내에 있어야 한다. 정부는 야당이 용납할 수 없는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그러한 협력을 파괴할 수 있다. 야당은 정부가 하려는 모든 것을 막으려고 함으로써 그것을 파괴할 수 있다. 더 나쁜 것은 우리는 협력할 시도조차 하지 않을 만큼 양극화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포용적인 정치제도가 경제 성장과 발전의 밑거름이라고 강조했다. 여전히 유효한 분석이라고 생각하나. 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의 경제 성장 배경에도 이 같은 포용적 정치제도의 뒷받침이 있었다고 보나.
“나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밝힌 광범위한 이론에 여전히 동조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간 한국의 정치체제를 포용적이라 본 적이 없다. 한국은 군사적이고 상당히 억압적인 독재 정권의 지배를 받았다. 하지만 북한보다는 훨씬 포용적인(much more inclusive than North Korea) 경제제도를 갖고 있다. 복잡한 이유가 있을 텐데, 우선 북한의 위협과 미국의 압박으로 인해 군사 정부는 다른 나라들처럼 최악의 정책을 택하지는 않았다. 노동조합 운동과 학생운동은 군부에 압박을 가했고, 궁극적으로 민주화를 가져왔다. 민주화 이후 한국은 여전히 부패의 문제가 있고 경제에서 대기업들이 계속 강세를 보이지만 포용적 경제 제도, 정치제도의 훌륭한 사례이다.”
애스모글루 교수는 2012년 출판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세상의 다른 가난한 나라들과 북한의 공통점은 대다수 국민의 인센티브를 꺾어 버려 필연적으로 가난을 초래하는 착취적 경제제도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착취적 경제제도를 지탱해 주는 것은 착취적 정치제도”라고 밝혔다. 애스모글루 교수는 “한국에는 경제적 인센티브를 창출하고 사회 전반에 정치권력을 분산시켜 주는 포용적 정치·경제제도가 자리 잡았다”며 “한국에서 경제성장이 지속된 것은 1980년대 경제성장을 보장하는 포용적 정치제도를 이행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저서 ‘좁은 회랑’에서 국가라는 리바이어던은 부재해서도 안 되지만, 반드시 족쇄를 채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어판 번역자는 이 책을 두고 ‘신(新)자유론’이라 칭하기도 했다. 한국사회에 진정한 ‘자유민주주의’가 정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신자유론이라 칭한) 한국어판 번역자의 말이 맞다. 우리는 자유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우리 이론의 핵심은 국가와 사회 사이의 균형이다. 국가가 너무 강하면 독재로 귀결된다. 그러나 사회가 국가에 비해 너무 강하면, 특정 집단이 법에 상관없이 그들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다. 진정한 자유를 얻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자유시장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국가 역량이 감소하고 공공재의 공급과 재분배가 약해질 경우, 또는 법질서의 명목으로 시민사회단체가 억압받을 경우 모두 자유에 상당히 해로운 위협이 될 수 있다.”
―결국 국가의 실패를 막기 위해서는 사회의 결집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이를 위해 정치의 양극화를 완화시키거나 제어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만병통치약은 없다(There is no silver bullet). 균형을 이루기 위한 대화와 노력이 핵심이다. 물론 대화에는 여야 정당뿐 아니라 언론과 시민사회단체도 포함된다. 한국의 경우 북한의 위협이 공동의 목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 팬데믹처럼, 다른 위협도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은 코로나19 팬데믹에 잘 대응해 왔다. 나는 기후변화 역시 우리가 화합하고 단결해야 대처할 수 있는 위협으로 생각해, 이를 통해 양극화를 줄일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한국에서는 오랜 기간 지역감정이 극심했고, 최근에는 성별·세대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해법은 어떤 게 있을까.
“지금 보이는 문제 중 일부는 피할 수 없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에 힘입어 문화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기에 살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는 가부장제 국가였다. 그래서 일부 사회적 규범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또, 많은 국가에서 청년을 희생시키면서 노인층에 권한을 부여했는데, 그래서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다. 이러한 변화가 강력한 반발을 일으키고, 그런 반발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양극화 사회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애스모글루 교수는 ‘좁은 회랑’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의 코로나19 방역에 대해 “한국 시민 사회의 회복력, 기술의 성공적인 활용, 국가 역량을 보여 준 사례”라며 “한국이 어떻게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고 밝혔다.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화제… “경제 번영 위해 정치 뒷받침 돼야”
애스모글루 교수는…
대런 애스모글루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교수는 제도가 경제 발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관심이 많은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학자다.
한국에 2012년 출판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에서 애스모글루 교수는 전 세계의 다양한 사례를 인용하며 “가난한 사회가 부유해지려면 근본적인 정치적 환골탈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적 번영과 혁신을 위해서는 정치제도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2020년 발간된 ‘좁은 회랑’(The Narrow Corridor)에서는 이 같은 논의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시민이 자유를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국가가 번영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가 힘의 균형을 이루는 ‘좁은 회랑’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애스모글루 교수는 회랑 안에 머물기 위해 국가와 사회는 적극적으로 균형을 이룬다고 강조했다. 독재국가가 불러오는 공포와 억압, 국가의 부재로 나타나는 폭력과 무법 상태 사이에 자유로 가는 좁은 회랑은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1967년 터키에서 태어난 애스모글루 교수는 요크대에서 학사 학위를, 런던정경대에서 수리경제학 및 계량경제학 분야 이학석사,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과학아카데미,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 계량경제학회, 유럽경제학회 그리고 노동경제학회의 선출회원이다.
2005년 미국경제학회가 2년마다 미국 내 가장 우수한 40세 이하 경제학자에게 수여하는 존 베이츠 클라크(John Bates Clark) 메달을 받았다.
2012년에는 경제학 분야에서 지속적인 중요성이 있는 논문에 대해 격년으로 수여하는 어윈 플레인 네머스(Erwin Plein Nemmers)상을 수상했다.
민병기 기자 mingm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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