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스트 리더십 - 2번의 16강 진출 히딩크·허정무


- ‘뚝심 리더십’ 히딩크
평가전서 ‘오대영’ 치욕적 별명
책임 안 돌리고 동기부여 애써
“오로지 나의 길 간다” 축구철학
언론 활용 국민에도 자신감 줘

- ‘포용 리더십’ 허정무
부정여론속 2번째 대표팀 지휘
中에 대패후 차례로 상대 제압
이청용·기성용 등 신인 발굴도
위기 마다 보듬어 기량 펼치게


한국 축구대표팀이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역대 3번째 16강 진출에 도전한다. 1954 스위스월드컵에서 처음으로 본선 무대에 오른 대표팀은 2018 러시아월드컵까지 10차례 본선에 진출했으나 조별리그를 넘어선 건 단 2번에 불과하다. 대표팀은 2002 한·일월드컵에서 사상 첫 조별리그 통과에 이어 4강 신화를 달성했고,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에서 첫 원정 16강행에 성공했다. 거스 히딩크(76) 감독이 한·일 월드컵에서, 허정무(67) 감독이 남아공월드컵에서 빼어난 리더십을 앞세워 선수들을 지휘하고 조련, 대표팀의 눈부신 영광을 이끌었다. 성공한 월드컵 대표팀 감독의 리더십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파울루 벤투(53) 감독은 이를 계승할 수 있을까.

히딩크 감독은 축구를 포함, 국내 모든 스포츠 사령탑 가운데 역대 최고로 꼽힌다. 히딩크 감독은 2001년 1월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고 한·일월드컵에서 4위에 올라 전 국민을 깜짝 놀라게 했다. 히딩크 감독은 대표팀 부임 전부터 뛰어난 지도자로 이름을 알렸으나 1999년 레알 마드리드, 2000년 레알 베티스(이상 스페인)에서 경질돼 한풀 꺾인 상황이었다. 게다가 대표팀은 세계축구의 변방. 그래서 히딩크 감독은 부임 초기에 눈길을 끌지 못했으나 한·일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이어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강호들을 격파하며 4강에 올라 전 세계의 박수를 받았다.

결과는 눈부셨으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히딩크 감독은 대표팀 데뷔전에서 무릎을 꿇었다. 2001년 1월 홍콩에서 열린 칼스버그컵 4강에서 노르웨이에 2-3으로 졌다. 3∼4위 결정전에서 파라과이와 1-1로 비긴 후 승부차기로 6-5로 이겼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히딩크 감독은 그해 2월 아랍에미리트(UAE)전에서 4-1로 첫 승을 챙겼으나 칭찬받지 못했다. 그리고 5월 프랑스와 컨페더레이션스컵 경기에서 0-5, 8월 체코와 평가전에서 0-5로 지자 ‘오대영’이라는 치욕적인 별명까지 얻었다.

히딩크 감독이 2002 한·일월드컵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안정환의 골든골이 터지자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히딩크 감독이 2002 한·일월드컵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안정환의 골든골이 터지자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히딩크 감독에겐 비난이 빗발쳤고, 선수들에겐 불똥이 튀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에게 책임을 돌리지도, 재촉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선수들의 기를 살리고 동기부여를 위해 애썼다. 이전 월드컵에서의 부진, 실패 등으로 상처를 받았던 선수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의지를 북돋웠다. 히딩크 감독은 컨페더레이션스컵을 앞두고 “한국 선수들의 자질은 훌륭하다. 나는 그런 선수들이 몰랐던 것을 조금씩 깨우쳐줄 뿐이다”고 말했다. 황선홍은 1990 이탈리아월드컵, 1994 미국월드컵에서 여론으로부터 수많은 화살을 맞았다. 그리고 1998 프랑스월드컵에선 개막 직전 부상으로 낙마했지만 한·일월드컵에선 조별리그 첫 경기의 선제골을 터트리며 영웅이 됐다.

히딩크 감독의 언론대응 능력은 지금까지도 찬사를 받고 있다. 히딩크 감독은 부임 직후부터 수많은 비난에도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걸었다. 그는 부임 초기 비난을 받을 때 “여론을 수렴하다 보면 내 축구 철학이 흔들릴 수 있고, 전술적인 완성도가 방해받을 수도 있다. 나는 오로지 나의 길을 간다”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언론을 이용해 선수들은 물론 국민에게도 자신감을 심어줬다. 히딩크 감독은 한·일월드컵 개막 6개월여를 앞두고 “한국이 전혀 가능성이 없는 나라였다면 처음부터 감독직을 수락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히딩크 감독은 용장이지만 지장이기도 하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뜻을 얼마든지 굽힐 줄 아는 지도자였다. 그는 대표팀의 현재 수준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문제점을 찾았다. 히딩크 감독은 애초 포백 포메이션을 쓸 계획이었지만 수비 보완을 위해 한·일월드컵에선 스리백 카드를 꺼냈다. 그리고 상대의 변화에 따른 맞춤 전술을 운용,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세계적인 강호들을 상대로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며 ‘히딩크 매직’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허정무 감독은 국내 지도자에 대한 편견을 깼다. 특히 선수와 지도자로 모두 한국 축구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겼다. 한국은 1986 멕시코월드컵에서 32년 만에 본선 무대를 밟았는데, 당시 허 감독이 선봉에 섰다. 그리고 조별리그 1차전에서 아르헨티나와 격돌했는데, 허 감독은 월드스타였던 디에고 마라도나를 수비하며 전 세계의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24년 뒤인 남아공월드컵에선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달성했다. 허 감독은 국내 지도자 중 유일한 16강 진출 사령탑이다.

허 감독 역시 대표팀에서 가시밭길을 걸었다. 특히 2차례나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1998년 10월 처음 대표팀 사령탑으로 부임한 허 감독은 1998 방콕아시안게임 8강 탈락, 2000 아시안컵 3위, 그리고 겸임했던 2000 시드니올림픽 조별리그 탈락 등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 탓에 2000년 11월 계약 만료로 지휘봉을 반납했다.

허 감독은 8년 뒤인 2008년 1월 대표팀에 다시 부임했다. 전임이었던 고 핌 베어벡 감독의 사임으로 어수선한 분위기 정리에 이어 남아공월드컵 준비, 거기에 부정적인 여론까지 떠안게 됐다. 당시 대한축구협회는 히딩크 감독 이후에도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 조 본프레레 감독, 딕 아드보카트 감독, 베어벡 감독 등 외국인 사령탑을 지속해서 선임했기에 국민의 기대치가 높은 상황이었다. 비난은 2010년 2월 동아시안컵에서 절정에 달했다. 이전까지 한 번도 지지 않았던 중국에 0-3으로 대패했기 때문.

그러나 허 감독은 선수들을 독려하며 흐름을 바꿨다. 중국전 직후 일본을 3-1로 꺾으며 분위기를 바꿨고, 코트디부아르, 에콰도르까지 모두 2-0으로 이겼다. 그리고 5월 원정으로 열린 한일전에서 또 일본을 2-0으로 눌렀다. 기세가 오른 대표팀은 남아공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그리스를 2-0으로 꺾었다. 2차전에서 아르헨티나에 1-4로 졌지만 3차전에서 나이지리아와 2-2로 비기며 조 2위로 16강에 올랐다.

허 감독은 대표팀 첫 부임 당시엔 엄한 지도자, 호랑이 선생님으로 유명했으나 두 번째 부임 땐 덕장이 됐다. 위기마다 선수들을 보듬었고, 선수들을 너그럽게 대했다. 실수에도 타박하지 않고 격려했다. 그래서 신인들은 주눅 들지 않고 마음껏 기량을 뽐내며 성장했고, 베테랑들은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경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와 남아공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에서 1-4로 크게 지고도 분위기를 바꿔 나이지리아와 3차전에서 2-2 무승부, 1승 1무 1패로 사상 첫 월드컵 원정 16강 업적을 세울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허 감독은 또 대표팀의 주축으로 성장한 신예 발굴에 능했다. 8년 전 대표팀을 처음 맡았을 땐 박지성과 이영표, 이천수, 설기현, 송종국 등을 발견해 A대표팀에 데뷔시켜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밑거름을 제공했다. 그리고 2번째 대표팀 부임엔 이청용(울산 현대)과 기성용(FC 서울) 등 20대 초반 선수들을 중용했고, 둘은 남아공월드컵에서 대표팀 중심으로 성장했다. 이청용은 남아공월드컵 4경기에서 2득점, 기성용은 4경기에서 1득점을 올리며 16강 진출에 힘을 보탰다.

허종호 기자 sportsher@munhwa.com
허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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