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국가 국민행복 재조산하
역대 정부 지표는 쉽고 구체적
‘자유’‘前정부 비교’로는 부족
여당 갈등은 非생산적 不건강
목표 이루겠단 절박함 안 보여
선명한 방향이 우왕좌왕 방지
‘재조산하(再造山河)’. 5년 전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핵심 인사들이 즐겨 하던 말이다. 임진왜란 때 유성룡이 실의에 빠진 이순신 장군에게 보낸 글귀라고 한다. 전란으로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워 보자는 뜻이다. 탄핵 당시 시민들이 광장에서 외쳤던 “나라다운 나라!”와 일맥상통한다. 문 정부가 실제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대단히 의문이지만, 재조산하라는 말 자체는 선명하게 와 닿았었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모순을 없애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명박 정부는 ‘선진일류국가의 꿈’을 내세웠다. 이념의 시대는 끝났다면서 실용주의를 표방한 정부에 걸맞은 구호였다. 철 지난 산업화 시대 냄새가 난다는 비판이 따랐지만, 적어도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뚜렷했다. 박근혜 정부의 ‘국민행복시대’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친(親)기업적이라는 평을 듣던 직전 정부와 차별화하고 민생에도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 들고 나왔던 ‘경제민주화’와 같은 맥락이다.
이렇듯 역대 정부는 정권 초기에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분명히 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그런 게 잘 안 보인다. ‘문재인 정부하고는 다르게 하겠다’는 게 국정 목표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취임사에서는 ‘자유’라는 단어가 수십 번 쓰였지만, 자유 그 자체가 정부의 목표는 아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명확해야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의 목록도 떠오르게 된다. 개별적으로 추진되는 정책들에 맥락이 생기게 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기도 쉬워진다. 집권 세력 안에 목표가 공유되는 일은 지극히 중요하다. 여당, 대통령실, 관료 집단이 같은 방향을 보면서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그러잖으면 지금 이 말을 해도 좋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대통령의 뜻을 잘 아는 이너서클이 아닌 이상 의견을 개진하기 힘들다. 윤 정부에서 이런 모습이 계속 보인다.
일단 여당 내 갈등이 대단히 비생산적이고 불건강하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론이 아니라, 대표 개인의 신상을 둘러싼 공방이 계속된다. 어떤 목표를 이루고 싶다는 절박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인사나 정책의 근거에 대한 메시지도 내용이 없다. ‘자질이 훌륭하다’거나 ‘전임 정부보다 낫지 않으냐’는 답변이 대표적이다. 어떤 이유로 그 사람을 쓰려는지, 왜 그 정책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는지 맥락이 불분명하다.
최근 윤 대통령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공기업의 전면적인 개혁을 주문했다. 문 정부 때 공공기관 29곳이 늘어났고 직원이 11만 명 증가한 것을 떠올려보면 지극히 타당한 얘기다. 그러나 공기업 개혁이라는 정책이 정부가 그리는 전체 그림 중 어느 곳에 위치해 있는지 알기가 어렵다. 개별적인 목표가 파편적으로 튀어나오면 관료들은 적극적으로 일을 찾아서 하지 않고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하게 된다.
지금 우리 앞에는 극도로 어려운 과제가 두 가지 있다. 첫째는, 급변하는 국제관계의 격랑 속에서 우리의 위상을 어디에 둘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다. ‘가치외교’와 ‘현실주의’는 강대국 내에서도 격론 중이다. 대외 의존도가 지극히 높은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둘째는, 인플레이션이다. 공급 측면에서 글로벌 공급 체인이 붕괴하면서 자원과 원료 가격이 급상승하고 있는데, 코로나로 엄청난 돈이 풀려 있지만 긴축정책도 쓰기 쉽지 않다. 서민들의 삶이 그야말로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대응 방향도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극복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는 것이 그중 하나다. 나머지는, 그렇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쉽게 넘기 힘든 시련임을 인정하고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가며 버티자고 서로 격려하는 것이다. 정부가 먼저 이런 큰 방향을 결정하고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라 전체가 우왕좌왕하게 된다.
윤석열 정부가 꼭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이것만큼은 달성하겠습니다’ 하고 국민 앞에 제시할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을 정해서 내놓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아직은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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