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의 제로 웨이스트 실천기 ‘비닐봉지는 안 주셔도 돼요’

“제로 웨이스트는 단지 쓰레기를 줄이는 일이 아니라 삶을 통째로 되돌아보는 일이었다. 내가 보지 못하는 과정들에 대해 알게 되면서 내가 어떤 일들을 저지르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만난 것은 ‘삶의 전환’이다.”

소설가 최정화의 ‘비닐봉지는 안 주셔도 돼요’(열린책들)는 제로 웨이스트 실천기를 담은 에세이입니다. 소설집 ‘지극히 내성적인’과 장편소설 ‘없는 사람’ 등을 썼으며 2016년 젊은작가상을 받은 최정화는 어느 날 다큐멘터리 영화 ‘알바트로스’를 보고 익숙했던 일상과 결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영화엔 우리가 매일 쓰는 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들어 아기 새의 부드럽고 연약한 위장을 찌르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작가는 아기 새를 잃은 어미 새의 검은 눈동자를 클로즈업한 영화 포스터를 방 벽에 붙여놓고, 인간을 바라보는 새의 시선을 잊지 않기로 했습니다.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시작으로 물건들을 하나하나 바꿔나갔습니다. 샴푸와 린스 대신 천연 비누를 쓰고, 설거지할 땐 플라스틱 수세미 대신 진짜 수세미를 꺼냈습니다. 글을 쓸 땐 볼펜이 아닌 연필과 만년필을 집어 들었고요. 제로 웨이스트 가게를 찾아 아몬드나 호두 같은 견과류를 종이 상자에 담아오기도 했습니다.

이 책을 주말 힐링북으로 고른 건 친환경 실천기를 넘어 새로운 삶의 방식을 통해 한 뼘 성장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간절히 원하던 꿈을 이뤄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았지만 한동안 만족이 뭔지 몰랐다고 고백합니다. 남들 눈만 의식하고, 채우는 데만 관심이 쏠려 있었을 뿐 충분히 쉬고 자는 법은 몰랐다면서요. 제로 웨이스트를 통해 ‘사물’과 ‘소재’에 관심을 두는 것은 ‘내가 어떻게 보이는가’에서 ‘내가 만족스러운가’를 묻는 일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플라스틱과 멀어지듯 내가 늘 붙들고 있던 무언가와 헤어질 때”가 됐음을 직감한 것이죠. 그렇게 작가는 “나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너무 차갑고 딱딱했다는 것”을, “이제 좀 더 너그럽고 편안하게 나를 바라봐도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건 ‘0과 0.1에 대한 철학’을 말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작가는 쓰레기 줄이기를 처음 시도했을 때 온종일 쓰레기를 배출해선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합니다. 일회용품은 절대 쓰면 안 된다고, 모든 쓰레기를 다 닦아 ‘지침’에 맞게 배출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죠. 스스로 만든 규칙에 갇혀 그만 지쳐버렸을 때 작가를 구제한 건 “비닐봉지는 절대 안 돼요”라는 ‘거절하기’가 아닌 일정한 타협과 포기의 철학을 담은 ‘줄이기’였습니다. 작가는 줄이는 실천 방식을 ‘0.1 웨이스트’라고 부릅니다. 0과 0.1의 차이는 제법 크다는, 0.1 웨이스트는 제로를 지향할 때 마주하는 피로감에서 벗어나 지치지 않는 힘을 준다는 말과 함께요.

제로 웨이스트 실천가가 아니라도 0.1의 철학은 곱씹어 생각할 만합니다. 어떤 꿈을 품고, 도전하고, 좌절하고, 목표를 다시 조정해 힘을 내는 과정은 곧 우리 모두의 삶이니까요. 그렇다면 ‘0과 0.1의 철학’을 ‘80과 100의 철학’이라고 바꿔 불러도 되겠네요. 100을 향해 힘차게 스타트를 끊어도 100에는 도달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까, 80 언저리에만 가도 부족한 노력의 결과인 건 아니니까 말입니다.

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 칸AP=연합뉴스
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 칸AP=연합뉴스

포기와 타협에 관한 책 문장에 밑줄을 긋다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75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의 에피소드가 떠올랐습니다. 그 역시 포기의 철학을 설파한 적이 있습니다. 오래전 초등학생이던 딸이 학교에서 ‘가훈을 적어내라’는 숙제를 받아 왔습니다. 딱히 가훈을 생각해본 적 없는 아빠 박찬욱은 잠시 고민 끝에 이런 문장을 적어줬습니다. “아니면 말고.” 도대체 이게 뭔 뜻이냐고 당황한 선생님의 반응을 딸에게 전해 들은 박찬욱은 말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해보고 그래도 이뤄지지 않았을 땐 툭툭 털어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참으로 필요한 건 포기의 철학, 체념의 사상 아니겠느냐.”

다시 주말입니다. 재충전하고 또 힘을 냅시다. 삶의 동력이 될 목표를 안고 또 달려나갑시다. 단, 100이 아닌 80만 가도 스스로 박수 쳐줄 준비를 하면서요. 혹시 좌절해도 ‘아니면 말고!’라고 웃어넘길 준비를 하면서요.

나윤석 기자
나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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