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위해 자기 몸에 글 새기던 의지, 지금은 자신 위해 남의 몸에 도장 찍는 것으로
베이징=박준우 특파원
중국 남송의 명장 악비(岳飛)가 군에 투신할 무렵, 그는 집에 남게 될 노모와 아내가 걱정돼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자 모친 요(姚) 씨는 아들의 등에 진충보국(盡忠報國·충성을 다해 나라에 보답한다)이란 글씨를 새겨주며 자신에 대한 걱정을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악모자자’(岳母刺字·악비 어머니가 글자를 새기다)로 불리는 이 고사는 맹모삼천(孟母三遷)과 더불어 모범적인 어머니상을 대표하는 성어로 후대에 전해진다. 모친의 격려 속에 입대한 악비는 수많은 전투에서 연전연승하며 송을 침범한 적국 금나라를 몰아붙였다. 악비 개인의 무용과 지략도 출중했지만 그를 따르는 군인들인 악가군(岳家軍)은 현 장쑤(江蘇)성 이싱(宜興) 일대에서 금군에 포위당해 아사 위기에 빠졌을 때도 “얼어 죽어도 땔감을 훔치지 말고 굶어 죽어도 백성을 약탈하지 않는다”라는 군율을 칼같이 지켜내 금군에겐 공포의 대상으로, 민중들로부터는 선망의 대상이 됐다. 비록 악비는 주화파들의 모함과 역모 누명 속에 독살당해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등에 새겨진 진충보국은 향후 그가 복권된 뒤 그를 상징하는 구절로 남았다.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에 조성된 그의 묘역 담벼락에는 등에 새겼던 네 글자가 대문짝만하게 적혀 그의 의기를 기리고 있다.
자신의 취미를 독서라고 강조해온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어린 시절 감명 깊게 읽었던 책으로 어머니가 읽어주던 악비의 전기를 꼽았다. 시 주석은 특히 “악비의 모친이 등에 글자를 새기는 부분에서 어머니께 ‘얼마나 아플까요?’라고 물었다”며 “그 이후 네 글자를 등 대신 마음에 새기고 평생에 걸쳐 이를 추구해 왔다”고 강조했다. 이후 그는 공교롭게도 악비가 묻혀 있는 저장성 당서기로 재직했고, 이후 그의 파벌로 일컬어지는 시자쥔(習家軍) 등을 이끌고 당권과 권력을 장악했다. 지난 1일에 그는 홍콩을 방문해 “애국심을 핵심으로 서로 다름을 포용하고 강해질 것”을 주문했고 그에 앞서도 여러 차례에 걸쳐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강조해 왔다. 7일 중·일 전쟁의 시발점이었던 7·7사건 85주년을 맞자 중국 관영언론은 일제히 “침략의 역사를 잊으면 안 되고 이를 부정하는 모든 발언은 잘못된 것”이라는 시 주석의 과거 발언을 인용하며 그의 투철한 애국심을 다시 한번 부각시켰다.
그러나 시 주석이 이끄는 중국 당국은 민심을 따르고 백성을 존중하던 악비 부대의 정신에는 다소 못 미치는 행동이 나오면서 많은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악가군이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항전했던 이싱과 인접한 우시(武錫)에선 주민들에게 코로나19 유전자증폭(PCR) 검사결과 음성 도장을 몸에 찍고 다니라는 당국의 지침이 내려와 중국 내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 결연한 의지로 아들의 몸에 글을 새겼던 악비의 모친과 달리 사람의 몸에 돼지고기처럼 검역 도장을 찍는 당국의 행태는 중국 내에서 정부에 대한 반감만을 키워가고 있다. 당국은 제로 코로나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하지만, 주민들의 불편과 정신적 피해를 줬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악비가 지금까지 중국의 명장이자 영웅으로 칭송받는 것은 그가 단순히 몸에 글자를 새기고 국가에 충성했기 때문이 아니다. 악비 사후 지금까지 약 1000년간 많은 대중이 그를 사랑했던 것은 그가 마지막까지 부귀를 탐하지 않고 백성에 피해를 입히지 않으려 한 정신 때문이다. 시 주석과 중국 관료들이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은 액면 그대로의 정충보국이 아닌,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악비와 악가군이 걸었던 험난한 길과 각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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