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우 논설고문

美는 한국 공업화 불가능 인식
박정희의 중화학공업화도 반대
일본 위한 배후 소비시장 취급

러·우 전쟁, 한국 방위산업 주목
탱크·미사일 등 러서 기술 습득
누리호 성공 러 역할 무시 못 해


프랑스가 핵무기를 개발한 배경에는 동맹국 미국의 비협조가 있었다.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자국의 핵 개발을 반대하는 미국 정부에 물었다.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나.” 미국이 이에 대해 침묵하자 프랑스는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다. 우리도 똑같은 형식의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서울을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나.” 우리는 프랑스보다 더 명확한 역사적 배경에서 이런 질문을 할 자격이 있다.

미국은 애초 한국이 공업국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없다고 치부했다. 그래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 시절 미국은 자국이 제공한 원조를 한국 정부가 산업화의 재원으로 돌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승만 정부가 원조액을 소비재와 공업화 재원으로 배분하는 과정에서 3 대 7을 주장했으나 미국은 7 대 3 이상을 허용치 않았다. 농업 생산에 주력해 식량 부족이나 해결하라는 투였다. 공산품 부족은 일본에서의 수입으로 해결하라는 것이 기본 입장이었다. 공산 체제에 대한 ‘불침항모’인 일본의 산업화를 적극 지원하면서 한국과 대만을 소비 시장으로 제공하자는 것이 미국의 복안이었다.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후에도 미국의 정책은 달라지지 않았다. 케네디 정부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이나 포항제철 등 국가 기간산업 육성을 끝까지 반대했다. 그럴 돈이 있으면 기존 공장들이나 수리하고 소비재 중심의 공업을 발전시켜 비교우위 상품을 수출하는 것이 낫다는 답변이었다. 세계은행(IBRD)이 개발 자금을 거절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이런 환경에서 박 대통령은 중화학공업화를 밀어붙였다. 미국 정부의 권고 내지 명령을 충실히 따른 것은 오히려 대만이었다. ‘공업국 일본과 그 배후 시장인 한국·대만’이라는 미국의 구도에 따라 중소기업 중심 국가로 만들어 나갔다.

한국은 최근 군수산업 육성에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글로벌 사회가 한국이 그동안 쌓아 올린 방위산업 경쟁력에 눈부셔 하고 있다. 남들이 모르는 사이에 이룩해낸 빛나는 성과다. 그럼 한국과 군사동맹 관계인 미국은 한국의 무기산업 육성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을까. 불행히도 한국의 방위산업사를 돌아보기 위해서는 미국보다 러시아의 역할을 재조명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노태우 정부는 1990년 당시 구(舊)소련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30억 달러의 경제협력 차관을 제공했다. 그러나 소련 붕괴 후 러시아는 오랜 기간 경제 혼란을 겪어야 했으며, 차관을 상환할 능력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두 나라 간의 오랜 협상 끝에 나온 대안이 차관을 러시아산 무기로 돌려받는 것이었다. 이른바 ‘불곰사업’이다. 한동안은 러시아에 당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이 방산물자 상환 방식이 우리나라 방위산업 육성에 ‘신의 한 수’가 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당시 미국이나 유럽 어느 곳도 한국에 기술을 전수해주지 않았던 T-80U 전차, BMP-3 장갑차, 메티스-M 대전차 미사일 발사기, 대공 미사일 발사기, 카모프 헬리콥터 등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한국의 무기 개발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최근 한국은 독자 기술로 개발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발사에 성공했다. 로켓 발사체 개발에 도움을 준 곳도 역설적으로 미국과 냉전을 벌여 온 러시아였다. 미국은 1987년 미사일 기술통제체제(MTCR)를 창설한 이래 미사일 완성품은 물론 관련 기술의 국가 간 거래를 철저히 통제해 왔다. 한국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 속에서 한국은 러시아 켈디시 연구소 등을 찾아가 기술을 자문하거나 국내서 제작한 엔진을 그곳으로 싣고 가 연소실험 등을 실시했다. 지난달 발사한 누리호의 75t짜리 로켓 엔진은 러시아제 액체 로켓을 사실상 리버스 엔지니어링(역공학)한 결과라는 것이 한국 과학계의 솔직한 회고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나토(NATO) 정상회의 참석과 관련해 “한국은 나토의 중요한 파트너”라며 중국 등 공공의 도전에 함께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중요한 파트너’에는 숨겨진 함정이 있다. 나토 회원국들은 미국과 핵공유 협정을 맺고 전술핵을 전진 배치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한국 내 전술핵 배치에 고개를 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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