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환기의 일본 - 4. 日사회에 스며드는 K-컬처

일본 오사카에 위치한 코리아 국제학원의 ‘K-팝 엔터테인먼트’ 과정에 등록한 학생들이 지난 5월 27일 춤을 연습하고 있다.  코리아 국제학원 제공
일본 오사카에 위치한 코리아 국제학원의 ‘K-팝 엔터테인먼트’ 과정에 등록한 학생들이 지난 5월 27일 춤을 연습하고 있다. 코리아 국제학원 제공

■ 韓아이돌 학원에 몰리는 10대

J-팝 아이돌과 실력차이 실감
K-팝 전문학과 만들어지기도
“철저한 시스템·프로의식 동경”


도쿄=김선영 기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한국 아이돌 연습생 학원에 등록했어요. 일본 아이돌은 한국 아이돌보다 연습시간이 적고, 실력도 떨어지니 저도 한국 아이돌을 목표로 목숨 걸고 연습할 거예요. 전 18세라 나이가 많아 불안하지만, 대학도 포기한 만큼 열심히 해서 아이돌이 되겠어요.”

일본 요코하마(橫浜)의 YKA댄스스튜디오에 다니는 18세 스미모토 아야메(住本 瞳). 지난 6월 27일 한국 아이돌 연습생 전문학원인 이곳에서 만난 스미모토는 “BTS 지민의 팬인데, 지민이 팬들의 인생을 지지해주는 게 대단하다고 느꼈다”며 결의를 다졌다. 스미모토는 “부모님은 ‘아이돌이 안 되면 취직도 힘들 텐데 나중에 뭐 하고 살 거냐’며 불안해하시지만, 저는 정말 절실한 만큼 꼭 데뷔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스미모토처럼 ‘한국형’ 아이돌을 꿈꾸는 청소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 아이돌 양성 전문학원이 생긴 것도 이 같은 수요 때문이다. 이 학원의 최직수 대표는 “한국식으로 노래와 춤을 가르치는 학원을 일본에서 연 것은 우리가 처음”이라면서 “한국 기획사들도 일본인 멤버 발탁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아이돌 지망생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이 학원에서 한국식 춤·노래를 배우는 학생은 총 300여 명. 이 중 90%가 여성이고 10%가 남성이다.

일본 10대들은 왜 학원까지 다니면서 ‘한국형’ 아이돌을 꿈꾸는 것일까. 최 대표는 “J-팝 아이돌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한국 아이돌 콘텐츠를 접한 뒤에 실력 차를 실감하면서 한국을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실제 이날 YKA댄스스튜디오 연습실에서 만난 14세 다케조에 에레나(竹添 英怜奈)는 “그룹 트와이스의 일본 멤버들이 활약하는 것을 보면서 한국 아이돌을 꿈꿨다”고 말했다. “한국 아이돌의 프로 의식을 동경한다”는 다케조에는 최근 한국의 아이돌 기획사에 연습생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1단계 꿈을 이뤘다.

일본에는 K-팝 전문 코스까지 생겼다. 일본 오사카(大阪)의 한국계 학교 코리아 국제학원이 지난해 ‘K-팝 엔터테인먼트’ 과정을 신설한 것. 한국어·일본어·영어 3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과정인데, 여기에 일본인들이 몰려들었다. 이 학교의 김순차 이사장은 6월 30일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지난해 K-팝 입학자 13명이 전부 일본인이었고, 올해 입학자도 30명 중 28명이 일본인”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학생들은 대부분 한국 유학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아 대학에서 한류 전문 강사를 초대해 전문성 있는 교육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의 부모 세대는 한국형 아이돌을 꿈꾸는 청소년들을 어떻게 바라볼까. 학업을 포기해야 하고, 살인적 훈련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데다 부모를 떠나 낯선 한국으로 떠나는 것을 반기기는 쉽지 않다. “한국에 갔다가 아이돌이 안 되면 돌아와 뭘 할 수 있냐”면서 만류하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하지만 젊은 시절부터 한국 드라마 및 영화를 즐겨온 일부 어머니 세대는 다르다. “K-팝이나 한국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좋으니 도전해봐도 괜찮지 않냐”며 격려하는 것. 2000년대 초반 ‘욘사마’ 열풍을 시작으로 일본에서 차근차근 축적돼온 한류의 힘이 지금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4차 한류의 가장 든든한 지원자가 된 셈이다.


지난 1일 도쿄 진보초에 위치한 한국 전문서점 ‘책거리’에서 한국문학 번역가이자 서점 스태프인 시미즈 지사코가 직접 번역한 박경리의 ‘토지’ 일본어판을 펼쳐보고 있다. 도쿄=김선영 기자
지난 1일 도쿄 진보초에 위치한 한국 전문서점 ‘책거리’에서 한국문학 번역가이자 서점 스태프인 시미즈 지사코가 직접 번역한 박경리의 ‘토지’ 일본어판을 펼쳐보고 있다. 도쿄=김선영 기자

■ 日서점들 한국 코너 잇따라

‘김지영’·‘채식주의자’등 인기
책 읽고 한국으로 문학기행도
“직설적 메시지로 속 후련해져”


“처음에는 ‘한국 마니아’들만 서점을 찾았지만, 지금은 ‘한국 문학 팬’들이 찾아오세요. 일본에서 28만 부가 팔린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분들이 ‘다음엔 어떤 책을 읽어야 하냐’고 많이 물어보시곤 합니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비롯해 대안 가족 담론을 다룬 에세이까지 다양한 책이 일본 시장에서 호응을 얻고 있어요.”

지난 1일 일본 도쿄(東京) 진보초(神保町)에 위치한 한국 책방 ‘책거리’에서 만난 한국 문학 번역가이자 책방 지기인 시미즈 지사코(淸水知佐子)는 “소설 형식을 파괴하고 ‘개인 서사’를 들려주는 한국 문학에 빠진 이가 많다”고 밝혔다. 책방은 개점 시간 전부터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김애란 작가의 ‘달려라 아비’(창비)부터 한국 전통 설화를 그린 그림책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하지만 서점 스태프 시미즈가 가장 아끼는 한국 문학작품은 박경리의 ‘토지’다. 시미즈가 바로 일본어판 ‘토지’의 번역가로, 총 20권 중 16권까지 요시카와 나기(吉川)씨와 같이 번역을 마친 상태다. 시미즈는 “소설에 종종 토속적인 언어가 나오면 한국에 있는 ‘토지 학회’에 자문하기도 하고, 한국 현지인들에게 직접 물어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미즈는 소설의 배경이 일제강점기인 점을 언급하면서 “일본에도 전쟁 속에서 가난하고 힘든 시기를 살았던 이들이 있다. 소설을 한 시대를 살았던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서 마음이 아프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많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서점에서 만난 고객 오쓰카 게이코(大塚慶子·52)는 “소설을 읽으며 일본이 한국을 착취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면서 괴롭기도 했다”며 “몇 년 전에는 경남 통영으로 ‘토지 문학 기행’을 가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장 인기 있는 한국문학은 ‘82년생 김지영’을 포함한 페미니즘 관련 소설이나 에세이다. 대안 가족 담론을 다룬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번역하기도 한 시미즈는 “일본도 한국만큼 ‘정상 주기’에 대한 압박이 심한 만큼 사회적 강박을 느끼는 여성들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같은 책을 읽으며 ‘아,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라는 안도감을 얻고 강박에서 벗어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인내하고 참기를 은연중 강요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 문학을 읽고 ‘역시 한국 문학의 에너지는 강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며 “마음속의 불편하고 응어리진 것들을 언어화해주기 때문에 후련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국 문학을 찾는 30대 남성이 늘고 있는 것도 새로운 현상이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 빠진 뒤 한국 문학에까지 관심을 갖게 된 이들로, 최승범의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생각의힘) 같은 책이나 김연수 같은 남성작가의 책을 즐겨 찾는다고 한다. 이날 서점에서 만난 30대 남성 무라타(村田)는 “일본 문학은 돌려서 말하는 표현을 쓰는 편인데 한국 문학은 직설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재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어떤 한국 문학이 향후 일본 출판시장에서 인기를 얻을까. 시미즈의 예측은 시(詩)다. 시미즈는 “일본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시집과 소수자 담론을 담은 인문서가 일본 문학 시장에 스며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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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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