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야당 의원들이 중심이 돼 과거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희생된 분들의 배우자·자녀에 대한 지원을 골자로 하는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재추진키로 했다. 이와 유사한 법안이 2년 전에도 발의됐었지만, 대입 특별전형과 공무원 임용 가산점 등을 둘러싸고 ‘셀프 특혜’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좌초됐다. 그런데 이번에도 거대 야당은 국회의원 175명의 입법 동의를 내세워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어 상당한 충돌이 예상된다.

이 법안은 유신 반대나 6월 민주항쟁 관련 희생자들 중에서 사망하거나 상이(傷痍)를 본 이들 및 행방불명된 이들을 유공자로 지정하고, 그 배우자와 자녀에게 의료비와 교육비, 장기저리 대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대체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문제는, 이처럼 민주화 관련 희생자에 대해서는 이미 명예회복과 보상이 상당 부분 이뤄졌는데도 이들 배우자·자녀들의 입시나 취업에서까지 특혜를 주는 게 과연 국민 정서에 맞는지 여부다.

일각에서는 4·19나 5·18 희생자들의 배우자·자녀에 대해서는 교육·취업에서 지원하면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의 배우자·자녀에 대해서는 지원하지 않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다시 말해, 민주화운동 관련자들도 4·19나 5·18 희생자 못지않게 민주화에 기여했으며, 그 대상도 소수에 불과하므로 지원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몇 가지 점에서 국민적 공감을 얻기 어렵다.

우선, 586세대로 일컬어지는 이른바 민주화운동권의 경우에는 4·19나 5·16 관련 피해자들과는 달리 그 경력으로 국회의원이나 장·차관, 심지어는 국회의장까지 지내는 등 권력 실세로 충분히 대우를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들이 중심이 돼 입법을 재추진한다니 ‘셀프 특혜’니 ‘현대판 음서제도’니 하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이러한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다수의 힘으로 입법을 밀어붙이기만 할 게 아니라, 그 전에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하나는, 민주유공자의 배우자·자녀에 대한 보상을 굳이 입시나 취업에서 특별전형이나 가산점을 주는 방식을 택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여기서 유공자 자녀들에 대한 수업료 면제나 장기저리 대출 등 경제적 지원에는 논란 소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유공자의 배우자·자녀들에게 취업이나 입시 등에 특혜를 주는 데 대해서는 국민의 시선이 그다지 곱지 않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대학 입시, 채용 시험이나 병역의무에서 가장 공정성이 요구되는 만큼 유공자의 배우자·자녀에 대한 특혜는 자칫 입시나 취업 준비 청년들에게 상실감을 줄 수 있으며 국민 정서에도 맞지 않는다.

민주유공자법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으려면 유공자에 대한 예우 못지않게 대상자의 선정 과정이 명확하고 투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 5·18 유공자의 경우처럼 대상자 선정을 둘러싸고 잡음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유공자의 대상과 선정 기준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히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야당이 다수의 위력으로 입법을 강행할 게 아니라, 유공자에 대해 존경심과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올 수 있도록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 정치의 역할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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