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 2050’, AI 데이터 기반해
서울의 황량한 미래 예측·작곡
내달 6일 롯데콘서트홀서 공연
‘미니멀리즘 대가’ 막스 리히터
70년대 무그 신시사이저 사용
원곡 25%만 남긴 새음반 출시
비발디 ‘사계’만큼 후대에 다양하게 응용된 곡이 있을까. 클래식 내 다양한 편곡 버전은 물론, 가요와 영화음악 등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있다. 풍요로운 사계절의 풍경이 생명력 넘치는 멜로디로 다가와 대중에게도 친숙한 곡이다.
그런데‘사계’의 분위기와 전혀 다른 을씨년스럽고 앙상한 ‘사계’가 다음 달 관객을 찾는다. 인공지능(AI)이 환경오염과 기후 위기를 맞은 2050년 서울 풍경을 예측해 작곡한 디스토피아적 ‘사계’다. 음반 시장에선 막스 리히터의 ‘새로운 사계: 비발디 리컴포즈드(재구성)’ 음반이 지난 6월 출시돼 화제다. 2012년 각종 세계 클래식 음반 차트 1위를 석권한 ‘리컴포즈드 바이 막스 리히터: 사계’의 새 버전이다. 원곡인 비발디 ‘사계’의 75%를 덜어내 새로 만들다시피 했지만, 바로크 시대의 풍부한 화성을 더 극적으로 구현하며 원곡의 느낌을 살렸다.
◇AI가 구현한 2050년 서울의 황량한 ‘사계’
AI가 현재 추세로 온실가스를 배출할 경우에 따른 기후변화 시나리오 데이터에 기반해 비발디 ‘사계’를 편곡한 ‘사계 2050-잃어버린 계절’이 내달 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된다. AI가 예측한 2050년 서울의 풍경은 비발디가 ‘사계’를 작곡한 1723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와는 확연히 다르다. 작은 새들의 지저귐으로 시작해 만물이 깨어나는 봄의 세계로 이끌었던 원곡과 달리 처연하고 음산한 음조가 이어지고 불협화음은 반복된다. 여름의 시원한 빗줄기는 사납고 과격한 태풍으로 바뀌었고, 이후엔 메마른 폭염이 부각된다. 새 대신 해충 떼가 범람하고, 끊길 듯 거친 현의 떨림은 황량한 느낌을 준다. 환경 악화로 생물 일부가 멸종되거나 개체 수가 적어진 상황이 반영됐다.
이 작품은 당초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글로벌 프로젝트의 하나로 기획됐다. 영국 디지털 마케팅 회사인 아카(AKQA)의 주도로 모나시 기후변화 커뮤니케이션 연구 허브와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이 손잡고 60년간의 기상 관측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든 기후변화 시나리오 ‘RCP 8.5’를 AI에 결합했다. 여기에 작곡가 휴 크로스웨이트의 마스터링 작업을 거쳤다. 지난해 독일 함부르크와 서울 등 6개 대륙 14개 도시에서 연주됐는데, 도시별로 기후변화 예측치가 달라 도시별로 다른 버전의 작품이 만들어졌다.
공연을 기획한 뮤직앤아트컴퍼니는 이 작품을 “음표로 쓰인 기후변화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미래 전망 보고서”라고 설명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지난해 초연에 이어 또 한 번 ‘사계 2050’ 프로젝트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한다. 공연은 1부와 2부로 나뉜다. ‘사계 2050’을 연주하는 2부에 앞서 1부에선 원곡 ‘사계’와 AI 버전 ‘사계’가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는 음악극이 펼쳐진다. 비발디 ‘사계’엔 각 계절 풍경에 맞는 ‘소네트’(짧은 시)가 붙여져 있는데, ‘사계 2050’에선 이 소네트가 제시하는 풍경이 사라졌다는 식이다. 배우 강석우가 내레이션을 맡고, 달라진 기후 환경을 보여주는 영상도 나와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원곡 25%만 남긴 리히터의 ‘사계’
후기 미니멀리즘의 대가로 현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 중 한 명인 막스 리히터는 ‘새로운 사계: 비발디 리컴포즈드’에서 원곡 ‘사계’의 25%만 남긴 채 75%를 새롭게 썼다. 리모델링보다는 해체와 재건축에 가깝지만, 만물이 생동하는 원곡의 질감이 살아 있다. 전자음이란 새 옷을 입었어도, 자연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를 정밀하게 표현해 사계절의 큰 그림을 완성한다는 점에서 원작과 궤를 같이한다. 리히터는 “비발디의 ‘사계’는 패턴에 기반을 두고 있고, 대조적인 종류의 재료를 병치함으로써 효과를 창출한다”며 “후기 미니멀리즘 음악과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이 작동하는 방식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이번 앨범은 엄청난 성공을 거둔 10년 전 작품 ‘리컴포즈드 바이 막스 리히터: 사계’와 달리 비발디 시대에 사용했을 법한 고악기를 활용했다. 리히터 본인도 1970년대에 만들어진 초기의 무그 신시사이저를 사용했다. 이에 따라 디지털적인 느낌이 강했던 이전 작품에 비해 바로크 시대의 오래된 포근함이 선명한 현대의 디지털 사운드와 공명하며 보다 다채로운 느낌을 준다.
이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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