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국민의힘이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여당이 선거에 패하거나 정권 말기에 비대위로 전환하는 경우는 있지만 정권 초기에 당 내부의 문제로 인해 비상상황을 선포하고 비대위를 발족시키는 것은 전례가 없다. 이준석 대표에 대한 당원권 정지가 사태의 발단이고 여기에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상황은 꼬여 가고 있다. 이번에는 당 지도부의 일괄사퇴에 이은 비대위 구성이라는 최소한의 모양새도 챙기지 못하고 있다. 최고위원 몇몇은 사퇴 여부를 두고 설왕설래 중이다.

더불어민주당도 비대위가 당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3월 대선에서 패한 직후 송영길 대표가 사퇴하고 ‘윤호중 비대위’를 꾸렸지만 6월 지방선거에서 대패하자 다시 새로운 비대위를 구성해 현재 우상호 위원장이 당을 이끌고 있다. 작년 보궐선거부터 연이은 선거 패배로 계속 새로운 비대위가 당을 이끌고 있다. 흥미롭게도 대선 패배 책임의 한 축인 이재명 후보는 보궐선거에서 의원으로 당선되고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고 있다.

정의당 역시 지난 지방선거에서 한 명의 단체장도 당선시키지 못하고 당이 존폐 위기에 빠지게 되자 비대위를 출범시켰다. 심상정 대표 시절에 여의도 정치 문법에 빠져 정의당의 정체성을 잊었던 것이 문제라는 자기반성 끝에 노동과 지역 현장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처럼 주요 정당들이 모두 비대위 체제로 당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비대위는 비상대책위원회를 줄인 말로, 예기치 못한 비상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잠정적 기구다. 그런데 거대 양당에서는 당내 권력이동의 과도기마다 비대위가 등장한다. 비대위가 시대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당내 기득권을 물리치고 정책 노선의 변화나 과감한 정당 역량 확대를 이룬 적이 없다. 그런데도 주요 정당들 모두가 비대위를 구성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은 총선을 대비해 주도권을 잡으려는 당권투쟁이고 민주당의 친문과 친이의 대립 역시 차기 총선과 다음 대선을 향한 갈등이 본질이다. 공통적으로 차기 선거의 공천권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 할 수 있다. 비대위가 일상화한 이유는 정당이 정책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공고한 지지자 집단을 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당은 이념적 정체성과 정책적 차별성을 통해 유권자의 지지를 얻어야 하지만 한국 정당은 정책지향 정당으로 발전하지 못한 결과다.

정당들은 선거 때를 제외하곤 유권자와 유리돼 있다. 권력다툼과 공천권을 두고 당내 파벌 간 갈등이 일상화하고 선거에 지면 그 책임을 당 지도부에 묻고 비대위로 전환하는 것이 관례가 돼버렸다. 대선에서 승리한 경우에는 대통령의 의중이 당 지도부 선정에 영향을 미쳐 집권당으로서 쇄신을 명분으로 비대위를 구성한다.

정당이 정상적인 지도부에 의해 운영되지 못하다 보니 국회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이번 국회 후반기 원 구성이 53일이나 지연된 것도 따지고 보면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모두 비대위 체제에서 당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정상화하지 못한다면 야당과의 타협정치가 효율적으로 이뤄지길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정당 내부의 갈등으로 정국이 경색돼 국민에게 손해를 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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