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암 대한기록정보경영포럼 고문, 前 국가기록관리위원회 위원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정숙 여사 옷값’과 ‘북에 피살된 공무원 사건’에 관련된 대통령기록물을 시민단체와 유가족의 공개 요청과 법원의 공개 판결에도 불구하고 최장 30년간 열람할 수 없도록 봉인하였다. 대통령기록물법에서 대통령에게 부여한 열람 제한 특권에 따른 행위이다. 이 특권은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미국의 대통령기록법(Presidential Records Act)을 본떠 우리나라 법을 제정할 때 받아들였다. 그런데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정권교체 때마다 봉인된 대통령지정기록물의 공개 여부를 놓고 정치·사회적 갈등을 반복하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미국법을 잘못 받아들여 민주주의와 기록관리 원칙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법은 열람제한 조항을 모호하고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미국법에 없는 ‘정치적 혼란을 불러일으킬 우려’와 같은 자의적 판단이 가능한 정치적 조항까지 추가했다. 미국법은 사생활을 ‘명백하고 부당하게’ 침해할 소지가 있는 기록물로 한정하지만, 우리법은 단순히 ‘침해가 발생할 우려’로 서술하고, 그 대상도 개인뿐만 아니라 관계인까지 포함시켜 범위를 확대했다. 의사소통 기록물도 미국법은 ‘비밀’ 의사소통으로 한정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법은 ‘공개가 부적절한’으로 모호하게 규정하고 있다.

둘째, 미국법은 대통령에게 ‘열람제한 특권’을 부여하는 동시에 국회, 법원 및 후임 대통령에게는 상응하는 ‘열람 특권’을 부여한다. 그런데, 우리법은 국회와 후임 대통령의 열람 특권을 없애 민주주의 권력분립의 균형을 훼손하였다. 반면에 헌법 개정과 동일한 강력한 조건인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열람 조건으로 신설하여 국회의 권한을 제한하고 있다.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남긴 기록물 열람이 국정의 연속성을 위해 후임 대통령과 국회에서 꼭 필요한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그런 기록물이 봉인되고 정부 내 다른 기관에도 없는 경우는 국정의 차질을 방지하기 위해 해당 기록물을 열람하여야 하는데 ‘열람 특권’이 없으면 공개 여부를 놓고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상황이 바로 이런 경우이다.

게다가, 문 전 대통령 시기에 국가기록원 산하에 있던 ‘대통령기록관’을 국가기록원과 동등한 별도 조직으로 분리하도록 법을 개정하였는데, 이런 식으로 이원화한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같이 큰 나라에서도 대통령기록관을 총괄기관인 국가기록관리처 산하에 두고 있다.

이처럼 우리법은 과도하게 열람제한 특권과 조직을 강화하여 대통령지정기록물을 보호하고자 한다. 이는 대통령들이 정치보복을 불러올 행위를 할 것이란 것을 전제로 한 잘못된 접근이다. 헌법과 법률에 따른 적법한 직무수행에 대한 기록이 정치보복의 대상이 될 우려는 없다. 오히려 과도한 보호는 국정수행 과정의 위법 행위를 장기간 합법적으로 숨겨줄 수 있기에 불법을 유혹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2007년 법 시행의 결과, 강력한 보호 장치에도 불구하고 국회 의결이 성사되고, 고등법원장의 영장발부로 봉인된 대통령지정기록물이 수차례 공개되었다. 사실상 열람제한 특권의 실효성이 상실된 것이다. 이런 현실은 현재 대통령기록물법이 잘못되었음을 방증한다. 이젠 실효성도 없이 갈등을 일으키며 국민의 알 권리를 막는 대통령기록물법의 존재가치를 물을 때이다. 대통령기록물법을 폐지하고 공공기록물법에 통합하거나 아니면 환골탈태 수준의 개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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