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열린 방한 기자 간담회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이민진 작가. 연합뉴스.
8일 열린 방한 기자 간담회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이민진 작가. 연합뉴스.


“찰스 디킨스를 읽을 때는 영국인이, 헤밍웨이를 읽을 때엔 미국인의 마음을 경험한다. 우린 항상 책 속 주인공의 마음이 되곤 하지 않나. 나는 전 세계 독자들이 ‘파친코’를 읽으며 한국인이 되어 봤으면 좋겠다.”

재일교포 가족 4대의 이야기를 다룬 애플TV 드라마의 원작 소설 ‘파친코’(인플루엔셜)의 이민진 작가가 8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가 쓴 소설 파친코는 미국 평단과 독자들에게 먼저 인정을 받았다. 전미 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 추천하면서 화제가 됐고, 특히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 작가는 이 소설 한국어판의 개정판 출간을 기해 방한했다. 출판사를 바꾼 후 번역을 완전히 새롭게 했는데, 출간 즉시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이날 이 작가는 “새 출판사를 결정할 때 번역이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였다. 원작의 의도를 충실히 살린 개정판이 무척 마음에 든다”며 흡족해 했다. 이 작가는 “2017년 처음 책을 출간했을 때에는 백인과 흑인 등 거의 대부분 미국 독자들 뿐이었다”면서 “북토크를 하면 한국인은커녕 아시아계도 잘 보이질 않아 내가 뭘 잘못했나’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현재 ‘파친코’는 33개국에 번역, 출간된 상태다. 이 작가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책이 읽히고 있지만, 최근 한국 독자들이 늘었다는 게 내겐 가장 중요하다”면서 “새 번역으로 더 많은 독자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소설 ‘파친코’의 이민진 작가. 연합뉴스
소설 ‘파친코’의 이민진 작가. 연합뉴스
이 작가는 이날 간담회에서 소설 집필 동기와 차기작을 비롯해 현장에서 갑작스럽게 쏟아진 질문에 “좋은 질문이다” “중요한 질문이다” 라고 평하면서 하나하나 성의있게 답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간담회 전 먼저 진행된 사진 촬영 때에는 밝게 웃으면서 한국어로 “못생겨서 미안합니다”라고 취재진을 향해 농담을 했다. 또, 90도로 인사한 후 “한국말을 잘 못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몸을 낮추기도 했다.

다음은 주요 질문과 답을 정리했다.

-한국계 일본 소년의 실제 이야기를 듣고 소설을 쓰게 됐다고 알려져 있다.

“따돌림 당하다 자살한 재일교포 소년 이야기를 대학생 때 한 특강에서 들었다. 그때 나는 19살 대학생이었는데, 너무 슬프고 충격적이고 화가 났다. 이 소년의 중학교 졸업 앨범에 ”네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 ”너한테 김치 냄새가 난다“ ”난 네가 너무 싫다“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나도 엄마고 아들이 있는데, 내 자식이 10대에 죽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후로 이 사건이 오랜 시간 뇌리에 박혀 있었고, 그걸 떨쳐낼 수 없었다.”

-작가가 되기로 하고 변호사를 그만뒀다. 언제부터 그런 꿈을 가졌나.

“내가 고등학생, 대학생 때엔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 미국사회에서 작가가 된다는 건 이상하게 여겨지던 시대였다. 그래서 그렇게 작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변호사가 된 후 간 질환에 시달렸는데, 의사가 20~30대에 간암에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 그때, 내게 시간이 얼마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앞만 보고 달리던 삶을 정리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파친코’의 초고를 일본에 방문한 뒤 폐기하고 전부 다시 썼다고 했다.

“처음 ‘마더랜드’라는 제목으로 책 한 권을 다 쓴 상태였다. 너무 못 썼고 재미가 없었다. 심지어 내 남편도 재미가 없다고 했다. 그 중 한 챕터만 살아남아 지금의 ‘파친코’에 실렸다. 당시 소설이 지루했던 이유를 안다. 주인공이 ‘솔로몬’이었는데, 너무 착하고 너무 편한 인생을 사는 재미없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또한, 초고에는 지금의 주인공인 ‘선자’도 없었다.”

-차기작 ‘아메리칸 학원’에 대해 설명해 달라. ‘학원’을 한국어로 쓴 이유는.

“차기작은 교육에 대한 것인데, 나는 교육에 관심이 많다.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한국에선 교육이 신분, 계급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리고 사람을 억압할 수 있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제목 ‘학원’을 한국어 그대로 쓴 것은 ‘파친코’를 일본어 그대로 쓴 것과 비슷한 이유다. 파친코는 재일 한국인을 이해하기 위한 아주 중요한 일본어 단어다. 전 세계 사람들이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학원’도 그렇다. 한국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학원’은 아주 중요하고, 나는 이것은 전 세계인이 알아야 할 한국어 단어라고 생각한다.”

-재출간을 인플루엔셜 출판사를 통해 하게 된 이유는.

“나는 54세고 이제 겨우 2권의 책을 냈다. 관심도 돈 때문도 아니다. 새 출판사는 무엇보다 번역에 있어서 내게 많은 권한을 줬다. 평생에 걸쳐 쓴 작품이고 단어 하나하나가 너무 중요하다. 오디오북 출간도 주요 이유다. 세상이 변하고 있고 출판도 변하고 있으니까. 쓴다는 건 저항이고 혁명의 행동이기에, 작가는 위험한 삶이다. 그리고 ‘파친코’도 위험한 책이다. 위험한 책이 되길 바라며 썼다. ‘파친코’를 읽은 사람들이 나 같은 한국인을 만날 때, 조금 우스운 얼굴을 하고 있더라고 그 뒤에 5000년의 역사가 있다는 걸 알기를 바란다. 이런 생각들을 이해하고 진지하게 출간해 줄 회사를 선택했다.”

-소설이 특히 미국 주류 사회에서 관심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나는 19세기 영미 문학을 좋아하고 그런 책을 읽으며 소설 쓰기를 훈련했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사회적 사실주의를 표방한다. 이런 스타일적인 측면이 영미 문학과 가깝고, 그래서 미국 독자들의 호응을 먼저 얻은 것 같다. 처음 출간하고 북토크를 하면 99%가 미국인들이었다. 한국인, 아시아인은 보이지 않았다. 한국인들이 날 싫어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최근 3년 사이에 많은 한국인들이 찾아오고 편지도 보낸다. ‘이제야 엄마를 이해할 수 있다’ 거나 ‘아빠와 이야기를 하게 됐다’ 거나 심지어 ‘한국인이라서 자랑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기쁘고 감사하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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