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누구나 사랑했던 캐릭터가 있다. 이들은 일생 동안 기억의 어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고단하거나 외로울 때마다 깜박이며 마음의 온도를 유지해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도 곰돌이 푸처럼 세계적인 캐릭터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을 때 가능성이 보이는 인물이 있다. ‘두더지의 고민’ ‘두더지의 소원’의 주인공인 김상근 작가의 두더지다. 그리고 세 번째 책 ‘두더지의 여름’이 나왔다.
책을 펼치면 “얘야, 여름이 왔구나!”라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이야기를 연다. 그림은 없이 글이 그 자리를 채우며 시작하는 대위법이다. 잠에서 깨어나기 싫어 이불 속에서 눈을 감고 있을 두더지를 생각하면 소리만 들려오는 것이 맞다. 오늘은 땅파기 연습이 있는 날이지만 두더지는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두더지는 “두더지라고 다 땅파기를 잘하는 건 아니야”라고 중얼거리면서 여름방학을 맞아 놀러 간 친구들을 생각한다.
하나, 둘, 셋의 박자로 이루어진 타이틀 시퀀스의 이미지 리듬을 지나 ‘두더지의 여름’이라는 제목이 등장하면 독자는 “두더지가 또 어디 간다!”고 외치면서 뒤를 졸졸 따라가게 된다. 전작들의 한겨울 눈밭 속 두더지를 기억하는 독자들에게 이번에는 여름의 두더지를 소개한다.
땅파기에 서툰 두더지가 땅파기를 조금 더 잘하게 되는 이야기로 읽으면 이 책은 안전한 성장 서사다. 겨울의 분투만 겪던 두더지가 여름 신록과 바다의 광활함을 알게 되는 것으로 보면 휴가철에 읽기 좋은 모험 서사다. 우연한 만남이 견고한 우정으로 연결되는 점에서 전작 친구 사귀기의 이야기를 잇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서툴지만 친구를 사랑하고 자신을 믿으며 전진하는 두더지의 캐릭터가 더욱 강력하게 구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름의 지하 모험은 그 분기점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 두더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에 들어섰다. 캐릭터의 성장을 말하려면 앞으로 이 책을 지켜보아야 한다. 56쪽, 1만4000원.